사랑을 갈망하는 집시의 춤 오페라 카르멘
사랑을 갈망하는 집시의 춤 오페라 카르멘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5.28
  • 호수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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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보다 사랑했기에, 그러나 자유를 원했기에

그녀는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한 불러 봐도 소용없지. 협박도 애원도 소용없는 일.』무곡 「하바네라」 중
한 마리 새처럼 원하는 곳을 찾아 날고 싶었던 카르멘, 그러나 결국 그녀의 치맛단엔 열정의 장미꽃물이 아닌 최후의 피만이 물들고 말았다.


집시의, 집시를 향한 사랑


정열적인 사랑을 하는 돈 호세, 돈 호세의 지고지순한 약혼녀 미카엘라, 활력 넘치는 투우사 에스카미요 등 쟁쟁한 주연들 속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여주인공 카르멘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집시 카르멘은 남성적이고 보수적인 군인 돈 호세와의 첫 만남에서 그의 마음을 빼앗는다. 곽신형<음대ㆍ성악과> 교수는 “카르멘은 사랑에 빠졌을 때 누구보다도 정열적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마음이 변하면 거침없이 태도를 바꾼다”고 평했다. 여타 오페라 속의 여주인공들과 달리 카르멘이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 역할을 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관능적인 매력을 표현해야 하는 카르멘에겐 메조소프라노 역할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다.

극의 초반, 카르멘은 여느 집시들과 마찬가지로 세빌랴의 열악한 담배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울한 생활 속에서 돈 호세를 만난 카르멘은 무곡 ‘하바네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그를 유혹한다. 카르멘에게 매료된 돈 호세는 자신의 책무까지 유기하며 폭력사건에 휘말린 카르멘을 놓아준다. 결국 돈 호세는 카르멘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르멘은 투우사 에스카미요와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돈 호세는 그녀에게 분노하면서도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구애를 멈추지 못한다.

카르멘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으로 인해 범법자로 전락하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돈 호세지만 그녀의 마음은 결코 그에게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카르멘을 소유할 수 없었던 돈 호세는 결국 그녀를 죽이고 만다.

카르멘과 미카엘라 사이에서 결국 카르멘을 택한 돈 호세의 인물형이 눈여겨 볼만하다. 돈 호세는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고 순박한 고향 처녀인 미카엘라 대신 도덕적으로 문란한 여성상인 카르멘에게 자신의 순정을 다 바치고 결국 그로 인해 카르멘과 자신을 파멸시키는 인물이다. 곽 교수는 돈 호세에 대해 “본능에 충실한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카르멘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돈 호세와 카르멘의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야했던 돈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라는 카르멘과 전혀 다른 매력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미카엘라에 대해 곽 교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돈 호세를 바라보는 미카엘라의 처지가 관객들의 동정심과 애틋한 마음을 자아낸다”고 전했다. 특히 3막에서 아리아 ‘두렵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을 부르며 돈 호세에게 어머니의 위독함을 알리는 장면이 그 매력을 극대화하는 부분이라고 곽 교수는 설명했다.


무대 위의 카르멘, 춤을 추다

오페라 「카르멘」은 작곡자 비제의 극음악적 천재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라고 평해진다. 특히 서곡은 비극성과 화려함이 동시에 드러난 걸작이었다. 비제는 이 작품을 끝으로 얼마 못가 생을 마감한다.

평론가들의 극찬과는 반대로 초연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여기엔 주인공인 카르멘의 특성이 부분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곽 교수는 “카르멘은 당시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도덕적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유럽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집시 특유의 성향이 카르멘을 비도덕한 여성으로 정의 내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카르멘은 점차 관객들에게도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현재 세계적인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카르멘은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 중 하나다. 무대 위 「카르멘」의 주역들은 여타 오페라와 차별되는 능력을 요구받는데 그것은 바로 ‘춤’이다. 카르멘과 카르멘 주변 집시 여인들의 등장에 춤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춤과 오페라의 노래를 동시에 소화하면서 관능적인 집시의 매력을 뽐내기까지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삶의 영원한 과제, 사랑과 자유의 불일치

오페라 「카르멘」은 프랑스의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원작으로 한다. 1830년 처음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메리메는 “떠날 당시 사랑에 빠져든 상태였다”며 “내 생애 가장 멋진 선택이었다”고 자찬했다. 특히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세빌랴는 안달루시아주의 중심도시로서 집시족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곳이다. 이후로도 종종 스페인 여행을 즐겼던 메리메는 어느날 몬티호 부인으로부터 몸을 파는 정부를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이것이 바로 소설 「카르멘」의 모티브가 된다.

메리메의 작품은 개인적인 스페인에 대한 호기심과 낭만주의적인 사회 분위기가 함께 적용돼 탄생했다. 김도훈<이화여대ㆍ불어불문학전공> 교수는 “낭만주의로 인해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유행처럼 번졌다”고 설명했다. 낭만주의는 남녀의 사랑에서 상대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특징이 있다. 실상이 아닌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낭만주의는 「카르멘」뿐만 아니라 「마농레스코」 등 프랑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여러 문학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서도 카르멘과 돈 호세는 삶의 영원한 과제인 사랑과 자유의 불일치에 괴로워한다. 카르멘은 정열적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인이었다. 돈 호세의 사랑은 카르멘의 자유를 구속하고자 했고 카르멘은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돈 호세는 이성의 반대인 ‘정념’에 완전히 지배받게 된 인물”이라며 “돈 호세의 이상적 사랑 추구와 카르멘의 광기어린 애정관의 충돌이 작품의 주제의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사랑의 정형화를 거부한 카르멘은 보헤미안의 자유로움과 도시의 변두리를 떠도는 도덕적 문란함이란 논란 속에 돈 호세의 칼을 맞고 눈을 감는다.     

일러스트 이민아 기자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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