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을 내세운 세벌식 자판 VS 국가 표준으로 정립된 두벌식 자판
효율을 내세운 세벌식 자판 VS 국가 표준으로 정립된 두벌식 자판
  • 주상호 기자
  • 승인 2011.05.28
  • 호수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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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한컴타자연습을 기억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타자시험을 보기도 했고 타자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두벌식으로 된 자판이었다. 당시에도 세벌식 자판이 존재했지만 압도적으로 두벌식 자판이 많이 이용됐다. 현재도 두벌식 자판이 국가 표준으로 돼있어 거의 모든 키보드가 두벌식으로 나오고 있다. 세벌식 자판에 숨겨진 아쉬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두 자판의 장단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키보드는 두벌식 자판이다. 두벌식 자판은 1982년에 제정된 ‘정보처리용 건반 배열’로 표준화돼 있다. 이 자판은 왼손에는 자음, 오른손에는 모음을 배치해 자음ㆍ모음 또는 자음ㆍ모음ㆍ자음의 순서대로 한글을 입력하도록 한 자판이다.

대한민국 표준으로 제정된 두벌식 자판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된소리(ㄲ, ㄸ, ㅃ, ㅆ, ㅉ)와 모음 ㅒ, ㅖ는 쉬프트키와 같이 눌러서 입력한다. 이 때문에 자판 입력 속도가 느려지며 양 손 부담률의 불균형이 생긴다. 그리고 모음 중 ‘ㅠ’자가 왼쪽에 와 있어 좌우 균형에도 벗어나 있다.

두벌식 자판에는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타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어려움을 준다. 도깨비불 현상은 초성이 될 자음이 종성에 먼저 붙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란 글자를 입력한다고 하자. ‘사’를 먼저 입력한 후 다음 ‘ㄹ’을 입력하면 ‘살’로 먼저 입력이 된 후 나머지 글자를 입력해야 ‘사람’이란 글자로 된다. 이 과정에서 초성이 될 ‘ㄹ’이 먼저 살로 입력되기 때문에 타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실제로 글을 쓰는 방식과 달라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세벌식 자판은 공병우 박사가 만든 글자판으로서 한글의 구성 원리에 맞게 첫소리(초성), 가운뎃소리(중성), 끝소리(종성)가 서로 다른 글쇠에 배열돼 있는 방식을 말한다.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세벌식 자판으로는 세벌식 최종, 세벌식 390이 있다. 세벌식 자판은 초ㆍ중ㆍ종성을 따로 입력하기 때문에 자판의 효율을 높이기에 더 용이하며, 두벌식 자판에서 발생하는 도깨비불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세벌식 최종은 글자판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계에서 같은 입력방식을 사용할 수 있으며, 처음으로 한글 타자기를 개발한 공병우 박사에 의하면 타자 속도 또한 두벌식 자판에 비해 30% 정도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컴퓨터에서는 두벌식과 세벌식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한글과 윈도우, 리눅스, 매킨토시 등에서 세벌식 자판을 지원하고 있지만, 국가 표준 규격으로 채택되지 않아 두벌식 입력 방식에 비해 사용자의 수가 크게 적은 편이다. 세벌식 전용 키보드가 출시돼 있으며 세벌식 최종 스티커가 있다.

하지만 세벌식 자판을 쓰기 위해 꼭 세벌식 키보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 세벌식 자판은 두벌식 자판에 비해 왼손이 혹사되는 가중치가 적다. 초성 입력 부분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세벌식 최종 자판은 공 박사가 타자기, 컴퓨터 등 기종 간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가능하면 효율적인 타이핑을 가능하기 위해 오랜 기간을 연구해 1991년에 발표한 것이다.

하단의 그림은 세벌식 자판 형식인데 키보드 우측 자음을 통해 초성을 입력하고 가운데 모음이 중성, 좌측 자음을 통해 종성을 나타내고 있다.


세벌식 자판의 핵심, 쌍초점 원리가 나오기까지

기존의 모든 타자기는 하나의 가이드를 가지고 타자기를 만들었다. 이는 자음과 모음 하나당 한 키를 가지고 있는 키보드 형식을 말한다. 그러나 세벌식 자판은 이를 과감히 탈피해 한글 원리에 더욱 가깝게 다가갔다. 세벌식 자판은 쌍초점 원리를 사용했는데 초성을 입력하는 자음 칸, 종성을 입력하는 자음 칸을 각각 나눠놓은 자판이다. 이로 인해 하나의 자음이 두 칸을 차지하는 경우가 생겼지만 한글의 받침을 갖는 원리를 잘 설명해 놨다.

이 세벌식 자판은 공 박사가 최초로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한글의 원리에 적합한 타자기를 만들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타자기를 분해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를 시작한지 약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공 박사는 세벌식 자판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에 대해 연구를 지속하게 된다. 공 박사는 본격적으로 세벌식 한글타자기를 개발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중적으로 세벌식 연구를 한지 거의 40일쯤 지나 쌍초점 방식을 선보일 수 있었다.

공 박사는 이때의 심정을 밝혔는데 “이것은 이상적인 타자기로 곧바로 순조롭게 발전한 것은 물론 아니다. 망치로 두들겨 가며 줄 칼질을 하고 땜질도구 등을 이용해 시제품을 겨우 만들었다. 자판은 손으로 한글을 쓰는 순서대로 초성은 왼편 그리고 모음과 받침은 오른편에 배치한 자판으로 2주가량 걸렸다.”

그러나 문제가 드러났다. 글쇠를 치는데 활자대의 충돌이 심해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칠 수 없었다. 공 박사는 자판의 위치를 반대로 바꾸기로 했다. 초성 자음을 오른쪽에, 모음과 받침을 왼쪽에 놓기로 하고 또 다시 며칠 동안 줄질, 땜질을 하며 두 번째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제야 타자가 순조롭게 미끄러져 나가듯 아주 간편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공 박사는 글자판을 필순과 정반대의 위치에 자모를 놓는 실험으로 실용적인 한글타자기를 발명할 수 있었다.

“어떤 발명이든 발명된 후에는 쉬운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발명이란 많은 정력과 시간, 그리고 끈질긴 의지와 많은 돈이 소비되는 것임을 체험하게도 됐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하는 나의 신념을 스스로 입증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공 박사의 말이었다.

드디어 1949년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공 박사가 한글타자기 쌍초점의 원리로 미국 특허를 받았다. 이를 미국 제품 제작업체 언더우드 회사가 알아채 한글 타자기 견본을 만들어 한국에 보내줬다. 이렇게 세벌식 자판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일러스트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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