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규범과 개성
말의 규범과 개성
  • 유성호<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1.05.15
  • 호수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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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인문대ㆍ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말과 글은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데 필수적인 기초 수단이다. 그런데 말과 글은 의사 전달에 필요한 기호라는 의미에서 보면 가치중립적이지만, 그 안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주관적으로 반영된다는 의미에서 보면 꼭 중립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말과 글은 그 안에 중요한 가치 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과 글의 사용법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인식 수준이나 인격에 대한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올바르고 규범에 맞는, 그러면서도 개성이 담뿍 담긴 언어생활(말글살이)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과 글의 ‘규범’과 ‘개성’은 언뜻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규범’에 얽매이다 보면 상투적이고 개성이 없는 말(글)이 될 것이고, 또 지나치게 ‘개성’을 추구하다 보면 규범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규범으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난 언어적 개성을 존중할 필요를 느끼면서도, 올바른 언어 규범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 지혜를 가지고 우리 언어에서의 불충분한 점이나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말의 순화는 여전히 올바른 말글살이를 위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말의 순화는 비속한 말 대신 우아한 말을 사용하고 외래어나 까다로운 한자어를 되도록 제한하여 우리 말을 순수하게 하는 일을 말한다. 모든 유기체가 그러하듯이 말 역시 생성, 성장, 소멸의 흐름을 가진다. 하지만 그 흐름의 주기나 형식은 말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주체인 인간의 지혜에 의해 조절되고 개선될 수 있다. 특히 말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현저히 짧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으로 잘 운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람직한 말글살이를 위해서 잘못된 발음이나 신경을 자극하는 발음 같은 것에서부터 비문법적 표현, 외래어의 영향이 뚜렷한 표현, 남발되는 비윤리적 비속어, 파괴된 존대법 등의 문제들을 반성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군(群)은 모두 언어 순화의 문제가 어휘나 발음 차원에 국한될 수 없는 까닭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언어공동체에서 단일 문자만을 고집할 수 없는 복합적인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말이란 근본적으로 사용 방식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말 자체를 ‘내 것/남의 것’ 하면서 배타적으로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말글살이를 위하여 우리는, 말의 ‘신토불이(身土不二)’만 심정적으로 옹호하는 이른바 ‘언어 국수주의’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리고 말이 민족적 세계상의 반영이라고 하는 해묵은 진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말의 ‘규범’이라는 원칙과 ‘개성’이라는 새로움 사이의 긴장과 중용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은 지속될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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