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인색한 한국인
기록에 인색한 한국인
  • 한대신문
  • 승인 2006.02.26
  • 호수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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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김재정 <공대·기계공학부> 교수

사람의 두뇌 능력은 여러 가지이다. 단순히 모든 것을 잘 기억하는 암기력,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창의력, 복잡한 연관 관계를 명확히 풀어내는 분석력, 혹은 추리력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따라서 그냥 머리가 좋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종합적으로 모든 두뇌의 능력이 우수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어느 한 가지 두뇌 능력에 치우친다. 즉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창의력이 우수한 사람이 있다. 추리 소설의 주인공인 셜록 홈즈의 경우는 분석력이 탁월한 것이다.

그런데 두뇌의 이런 능력들은 여러 가지 방법들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 기록하고, 관리한다면, 보통 사람들도 창의력이 풍부한 위대한 발명가나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순간순간 아이디어들을 떠올리지만 그것을 집요하게 끄집어내어 현실화, 즉 형상화시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쓴 괴테의 경우를 보자. 그 자신의 일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메모 습관과 비서 활용이다. 괴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메모를 중시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리저리 메모한 내용들이 일정한 분량이 되면, 그의 비서가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다시 필사하여 괴테에게 돌려주었다. 괴테는 여기에 약간의 첨삭을 통하여 그토록 위대한 불후의 걸작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괴테의 훌륭한 창의력도 이런 메모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불후의 명작 탄생으로 연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산업의 경우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일본을 모델로 삼는다. 그래서 일본 회사를 방문하여,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국제조회사의 엔지니어들이 일본 제조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어렵게 주선이 되어 열린 미팅이었다. 한데 여러 가지를 묻고 하는 한국방문객에게 미팅 도중 일본인 기술자가 투덜거리며 하는 말인즉 “지금 요청하신 내용은 이미 당신네들 회사의 다른 세 부서가 얼마 전에 각기 방문했을 때 다 설명해준 내용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메모수첩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지난 번에 있었던 미팅 날짜와 한국 방문객 이름까지 거명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꼭 필요하다고 해서, 어렵게 외국의 회사까지 방문하지만 듣기만 할 뿐, 기록으로 남기거나 같은 회사의 관련 부서끼리 공유하지도 않는 것이다. 배우는 우리의 자세가 이러하니 기록이 습관화 되어있는 일본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짜증만 날 뿐이다.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들에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하고 있다. 당신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 것은 비밀이라 아무 자료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당신네들 자료가 필요하다’식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또 한국이야?” 이다.

창의력이 넘치는 대학생은 활기가 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꿈속에서도 떠오를 수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찻집에서도, 전철을 기다리는 전철역에서도 떠오른다. 오히려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자투리 시간 속에서 더욱 잘 떠오른다. 문제는 이것들을 붙잡는 습관에 있다. 창의력 넘치는 대학생은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 항상 자신의 메모수첩이나 PDA 또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메모하는 학생이 멋지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새학기의 오리엔테이션이나 자주 있는 학과 세미나에서 메모하는 우리 대학생들의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다. 우리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 한국회사들의 문화뿐만 아니라 미래에 이들 회사들의 역군이 될 대학생들이 학생 때부터 메모하는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기술경쟁에서 ‘다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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