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르피아, 하느님 앞에서 보자"
"스카르피아, 하느님 앞에서 보자"
  • 유지수 기자
  • 승인 2011.04.30
  • 호수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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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사랑과 정열로 만들어진 강렬한 오페라 「토스카」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비운의 여인 토스카는 성벽에서 뛰어내린다. 그녀가 뛰어내리기 하루 전,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 카바라도시는 정치범을 숨겨준 죄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 토스카는 그를 살리기 위해 사형 집행권을 갖고 있는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를 찾아가 애원하게 된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자신과 하룻밤을 함께 하면 가짜 총으로 사형을 집행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토스카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다가 끝내 스카르피아를 칼로 찔러 죽인다.

스카르피아가 죽은 뒤 토스카는 가짜 사형 집행 후 카바라도시와 도망갈 생각에 들뜨지만 카바라도시는 진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악독한 스카르피아가 토스카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살인자가 된 토스카는 스카르피아를 저주하며 자살한다.

실제 같은 가상의 이야기 「토스카」
「토스카」가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드라마틱한 전개 때문이다. 푸치니의 작품은 대부분 달콤하고 낭만적인 음악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토스카」의 경우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낭만적인 선율에 불협화음도 더했다. 이런 푸치니 음악의 특성과 ‘베리스모 오페라’라는 유행이 결합돼 진실성 있고 생명력 넘치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이나 실제 일어난 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오페라를 뜻한다. 오페라 「토스카」의 배경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실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토스카」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당시 시대상 충분히 있었을 법한 이야기였다. 관객들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며 극에 몰입할 수 있다.

숨겨줄 수밖에,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
오페라 「토스카」는 18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정치적 혼란 상태에 있었다. 179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를 침공해 로마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곧 나폴레옹의 군대가 영토 확장을 위해 이탈리아를 잠시 떠나자 오스트리아 중심의 연합군은 옛 땅을 되찾는다며 로마 공화국을 침공했다. 이후 나폴리의 전제군주였던 페르디난트 4세가 이탈리아로 돌아와 다시 군주제를 시행하는데 「토스카」는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토스카의 비극은 카바라도시가 탈옥범 안젤로티를 성당에 숨겨주면서 시작된다. 극 중 안젤로티는 로마공화국 시절 집정관이었다. 그는 로마 공화국이 무너지고 이탈리아가 군주국으로 회귀하자 반역죄로 수감돼 있다가 탈옥을 감행한다. 계몽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카바라도시 역시 공화정을 지지하는 사람이었고 이 때문에 정치적 동지인 안젤로티를 숨겨주게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성당지기는 군주제를 옹호하는 인물이다. 그는 계몽적 사상을 가진 카바라도시를 곱게 보지 않으며 카바라도시의 벽화를 비난하기도 한다.

1막 중반부에 “나폴레옹의 군대가 마렌고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성당지기와 성당의 신도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춤춘다. 마렌고 전투는 실제로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떠난 뒤 벌어졌던 전투다. 이용숙 음악평론가는 “마렌고 전투가 작품에 등장하므로 「토스카」의 시간적 배경은 1800년 6월 17일에서 다음날 새벽 사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 중 카바라도시는 탈옥범을 숨겨준 죄로 고문을 당한 뒤 기절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처럼 “나폴레옹 군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운을 차린다. 그는 나폴레옹이 세운 공화정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의식을 찾은 카바라도시는 나폴레옹이 곧 돌아올 것이라며 자유와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스카르피아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군주국가에서 경찰청장을 맡고 있는 스카르피아는 공화국을 찬양하는 카바라도시를 반역자로 몰아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는 실제로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패했다”는 잘못된 소식이 전해진 뒤 그 다음날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다시 정정된 일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열적인 내용과 무대
오페라 「토스카」의 대표 아리아는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죽이기 전에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다. 이 곡은 깊은 신앙심을 가진 이탈리아 여성 토스카의 기도를 내용으로 한다. 가톨릭적인 선행을 베풀며 살았음에도  연인을 위해 몸을 바쳐야하는 비극적 상황에 절망하는 토스카의 감정이 드러나는 곡이다. 서울오페라단이 공연한 오페라 「토스카」에서 ‘토스카’역을 연기한 소프라노 임세경<성악과 94> 동문은 “많은 기교가 필요해 그 자체가 어려운 아리아인데 스카르피아와 몸싸움을 한 뒤 불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격한 감정을 추스른 뒤에 호흡을 가다듬어 불러야 하는 힘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195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콜론극장 공연 중 일어난 일이다. 토스카 역의 소프라노 마리아 예리짜가 스카르피아와 몸싸움을 한 후 크게 넘어져 무대에 엎어졌다. 토스카 역의 소프라노는 당황하지 않고 엎드린 채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불렀다. 다행히 극의 진행은 순조롭게 흘러갔으나 콜론극장의 무대가 너무 넓어 조명감독이 소프라노를 찾지 못해 아리아가 다 끝난 뒤 소프라노를 비추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소프라노 마리아 예리짜는 192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공연에서 극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실제로 스카르피아역을 맡은 배우의 배에 칼을 꽂아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또 2005년 이탈리아 마체라타 극장 공연에선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3막의 총살 장면에서 공포탄에 다리를 맞아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오페라 「토스카」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작품으로 관객은 물론 연기하는 배우들조차 배역에 지나치게 이입해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가장 재미있는 사건은 1961년 샌프란시스코 가극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연출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대학생들을 사형집행부 역할로 뽑았다. 대학생들에게 역할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주인공을 쏘고 주인공이 퇴장할 때 함께 퇴장해라’라고만 지시한 것이 문제의 화근이었다. 연출자가 말한 주인공은 카바라도시였으나 대학생들은 토스카를 쏘았다.

카바라도시는 총을 맞지 않았지만 극의 흐름상 쓰러지는 연기를 했다. 이어 스카르피아의 부하들이 카바라도시를 끌고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대학생들은 여전히 토스카가 주인공인 줄 알고 토스카가 성벽에서 뛰어내리자 따라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도움: 저서 「내 마음의 아리아」, 「이탈리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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