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예술이다
이것은 예술이다
  • 유지수 기자
  • 승인 2011.04.30
  • 호수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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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5월 6일 에펠탑 개관

오늘 드디어 파리를 대표할 구조물이 개관했다. 이 높고 아름다운 구조물은 설계자인 내 이름 ‘구스타프 에펠’에서 가져와 ‘에펠탑’으로 불릴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혁명 백주년과 파리 만국 박람회에 맞춰 프랑스만의 상징적인 건물을 지으려 계획했다. 박람회 기념 철탑 설계안은 16일이라는 짧은 공모기간에도 100개가 넘는 지원서가 접수됐다. 그 중 내 설계안이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설계한 구조물이 파리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짜릿했다.

모든 일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프랑스 정부와 공사 계약을 체결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건축비용은 150프랑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건축물이 충분한 경제성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접 공사비용을 조달하기로 했다. 공사를 끝내니 예산보다 더 많은 800프랑이 소모됐다. 대신 나는 향후 20년 동안 에펠탑이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을 양도 받기로 했다. 오늘 탑이 개관하자마자 파리 시민들이 표한 뜨거운 관심을 보니 머지않아 큰 수익을 얻게 될 것이란 자신이 생긴다.

사실 예산문제보다 탑에 대한 주위의 우려와 비난이 건설을 힘들게 했다. 많은 건축 기술자들은 에펠탑이 건축 도중에 하중을 견디지 못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펠탑이 일반적인 건축물의 두 배가 넘는 높이로 설계됐으니 이 어마어마한 높이에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낄 만도 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샹 드 마르 지역 주민들은 정부에 에펠탑 건축을 중단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모든 위험을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건설을 강행했다. 설계안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설계도면을 몇 백 장 다시 그렸고 그 결과 공사기간 동안 인명사고 한 건 없이 안전하게 완공할 수 있었다.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파리의 지식인, 예술인들의 탄원서였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에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탄원을 했으며 매일같이 언론을 통해 나의 건축물을 비난했다.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구조물을 보고서 말이다. 그들이 비난하는 점은 탑의 재료가 ‘철’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철을 야만스럽고 삭막한 것이라며 파리를 대표하는 구조물로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을 ‘철제 사다리로 만든 비쩍 마른 피라미드’라며 후세에 부끄러운 건축물이 될 것이라 단언했다. 유명 예술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역시 ‘전 유럽과 미국 등을 통틀어 가장 멍청한 무위도식자조차 한탄을 불러올 구조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어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그들은 한 시대와 파리의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자만심에 젖어 자신들의 상식만이 가장 세련됐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철은 어떤 재료보다 세련되고 깔끔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수많은 철교들을 지으며 철이 건축에 쓰일 때 드러나는 선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자신이 있어 사비를 들여 건설을 진행했고 이 탑의 안정성에 자신이 있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건설을 강행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오늘 이 탑은 파리 시민들에게 공개 됐다. 나는 이 탑이 파리 시민들의 자부심이 될 것이며 현대 예술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도움: 태성호<공학대ㆍ건축공학과> 교수, 저서 「건축사의 대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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