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여 방황하라
젊음이여 방황하라
  • 송도영<국문대ㆍ문화인류학과> 교수
  • 승인 2011.04.10
  • 호수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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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도영<국문대ㆍ문화인류학과> 교수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었지만 결국 산과 들에 그리고 캠퍼스에 봄꽃이 만발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몸을 내밀고 나오는 꽃들을 둘러싼 공기는 새삼 녹록치 않다. 누런 먼지바람이 수시로 오가며 하늘을 덮는다. 생명을 축복하는 음악이어야 할  빗방울 소리에 방사능 공포의 울음이 섞여있다. 사실 우리는 겨울 내내 언 땅을 파고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을 생매장해왔다. 우리가 사는 생태계의 하늘과 땅을 무겁게 조이는 음습함에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이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기운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둠을 헤치고 기어이 새싹들이 뚫고 올라오며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생명은 위대하다.

신입생들을 면담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물어본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친구가 많다. 대답을 하더라도 어떤 ‘직업’의 이름들을 겨우 어색하게 더듬는다. 예를 들면 공무원이라든가, 모 대기업 사원이라든가, 뭐 그런 것 말이다. 아니 직업 이름 말고, 그냥 자네가 10년 혹은 20년 후에 하고 싶은 활동의 내용, 또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하고 묻는다. 표면의 제목이 아니라 삶의 진짜 ‘내용’이 어떤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느낌의 덩어리 같은 것 말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진짜 ‘꿈다운 꿈’ 말이다. 불경기의 세계 경제 환경에 불안해하며 오로지 취업률 숫자를 강조하고 스펙 갖추기의 공식을 따라 달리며 또 달려야 한다는 요즘 세상의 분위기를 내가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이다. 정말 당신이 원하는 삶, 삶의 느낌, 그 느낌의 덩어리 뭉쳐 이뤄지는 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모든 것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생명력의 고향인 꿈.

대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나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구제역 파동,재스민 혁명, 신종 플루 같은 ‘비상사태’들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환경이 되었다. 내년 겨울에도 또 어떤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다.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단순히 경제 환경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생태계 전체가 이행의 진통을 앓고 있다. 예외적 상황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반복 확대되며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는 눈과 귀를 손으로 가린 채 달팽이 껍질 안으로 들어간다. 방어적인 스펙 숫자의 벽을 쌓고 그 안에 숨어 안전할 것이라 착각한다.

세계 경제위기를 비교적 ‘현명하게’ 극복한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다. 그리고 자살률과 이혼율이 벌써 여러 해째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출산율은 10여 년째 여전히 세계 최하위다. 1인당 GDP가 4만 불이 된다 해도 목숨을 끊는 이가 그렇게 많고 생명을 낳아 키울 의지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회라면 그 사회는 뭔가 심각한 상태에 있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심각하게 문제를 찾지 않고 대충 묻어두려는 분위기다. 진짜 숙제인 비전 찾기를 미뤄둔 채 허둥지둥 다시 익히는 복잡한 매뉴얼들은 결국 무너져버리게 될 자아상실의 망연한 쭉정이들을 쌓아올릴 뿐이다.

우리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사춘기의 방황’을 제대로 겪지 못한 채 대학에 왔음을 발견한다. 정말 궁금했던 것을 과감히 질문해보고, 활화산같이 사랑하고, 불안한 미래의 꿈으로 밤을 밝히고, 그리고 처절히 헤매며 길을 묻지 못했다. 그런데, 온 우주와 생태계가 위기의 일상성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이행기의 폭풍우 속에서는 구태의연한 성공의 매뉴얼을 무작정 따라가는 길이 오히려 죽음에 먼저 이르는 길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미안하다. 이제는 삶의 길을 찾아라. 삶의 길을 찾은 다음에야 비로소 공부든 뭐든 그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아직 생명의 더운 심장이 뜨거운 김을 뿜고 있는 동안, 젊음이여 이제 방황의 길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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