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의 위력, 인간의 상상력을 잠식하다
재해의 위력, 인간의 상상력을 잠식하다
  • 김미영<사범대ㆍ국어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1.04.04
  • 호수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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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으로 자기세계를 구축한다. 상상력은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낯설게 하기’를 구체화시키는 힘이다. 때때로 이 상상력은 기업체의 이윤을 능가하는 경제적 수치로 나타난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창작한 조앤 K. 롤링 같은 경우가 그렇고, 한국 사회에서 천 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감독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인간의 상상력이 자연 재해의 위력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지는 상황을 목도하였다. 일본에서 일어난 강도 9.0의 지진과 쓰나미는 영화 「해운대」를 가볍게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이었다. 센다이 지역의 대지진과 해일은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었다. 「해운대」를 만든 윤제균 감독은 한 일간지에서 ‘충격과 공포’, ‘이유없는 자책감’ 때문에 ‘복잡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나도 윤제균 감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현대소설이 전공이라는 이유로 나는 어린이 대상의 동화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공동연구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최근에 동화를 읽게 되었다. 3월 10일까지 급히 마친 초고 작업은 동화에 나타난 전쟁, 생태계 보호, 평화 등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때 충격을 안긴 동화가 한 편 있다. 체코 출신의 작가 구드룬 파우제방이 쓴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다. 이 작품은 초고 마감에 쫓기는 나의 글쓰기를 잠시 중단시킬 만큼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계 명작동화를 읽었던 유년 시절 이후는 동화를 제대로 읽은 기억도 없고, 동화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고 느낀 적도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고 마음을 울리는 감동과 함께 심한 전율을 느꼈다. 동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가 너무나 생생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동화의 내용은 이렇다. 독일 풀다에서 일어난 핵폭발로 쉐베보른에 사는 주인공 롤란트의 다섯 식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풀다는 이미 잿더미로 변하였고, 주민들이 기대했던 국내외의 모든 원조는 차단되었다. 쉐베보른은 굶주림과 약탈, 원자병과 전염병이 횡행하는 참극의 현장이다. 오직 나의 생존을 위해 너의 생명을 앗아야만 하는 생존경쟁의 각축장으로 변하였다. 핵 폭발 이후 4년이 지난 쉐베보른은 원시적인 생활공간이 되었다. 그래도 롤란트의 아빠는 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였을 때 원자병으로 얼굴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남자 아이가 아빠 얼굴에 분필을 던지며 “당신은 살인자야!”라고 외친다. 소년의 그 말은 주인공의 아빠를 심한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동화 속 아이들은 어른들을 원망하고 있다. 아이들은 전쟁이 일어날 조짐을 눈치챘으면서도 이를 막지 못한 어른들의 이기적이고도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제대로 생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원자병으로 죽어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소년의 절규는 이러한 상황을 압축한 것이다.

일본의 대지진 참사를 보면서 이 동화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도 극복하기 힘든데 여기에 인재까지 겹쳤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선 확산이 인재의 맹렬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문을 해본다. 참 잘 살고 싶은데, 그 방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후손들에게 ‘살인자’라는 말은 듣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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