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난봉꾼의 최후를 배웅하며, 오페라 「돈 조반니」
바람둥이 난봉꾼의 최후를 배웅하며, 오페라 「돈 조반니」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4.03
  • 호수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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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떨어지는 돈 후안을 바라보는 양날의 시선

지옥으로 떨어지는 돈 후안을 바라보는 양날의 시선
스페인식 발음으로는 ‘돈 후안’, 이탈리아식 발음으로는 ‘돈 조반니’, 프랑스식 발음으로는 ‘동 쥬앙’. 부르는 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리키는 사람은 하나다. 세빌리아를 호령한 유명한 난봉꾼에 대한 이 이야기는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원작 희곡은 스페인 사람에 의해 쓰인 것이고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씌어져 이탈리아 오페라가 됐다. 이후 프랑스에서도 이를 많이 응용해 동 쥬앙이란 이름으로 여러 작품들을 재생산해냈다. 이처럼 유럽 각지에 근본을 두고 있는 오페라 「돈 조반니」. 심지어는 주인공 역시 유럽 각지에 자신의 연인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

얄미운 주인공에게서 아리아를 뺏어라?

『부인, 이걸 보십시오. 이탈리아에서 640, 독일에서 231, 프랑스에서 100, 터키에서 91,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벌써 1천 하고도 셋입니다. 이제 그분이 하는 짓을 아시겠죠?』

자신의 주인이자 천하의 바람둥이인 돈 후안의 행적을 낱낱이 고하는 하인 레포렐로의 아리아다. 「카탈로그의 노래」란 제목을 가진 이 곡은 바람둥이 돈 후안이 각국 도처를 돌아다니며 여성들을 유혹하고 다닌 행적을 보여준다. 여성들을 카탈로그처럼 줄줄이 꿰고 다닌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 아리아는 앞으로 이어질 돈 후안의 충격적 행적의 시작일 뿐이다.

돈 후안에게 버림받고 그를 원망하면서도 결국 회의를 느끼며 한탄하는 엘비라의 아리아인 「저 악당은 나를 배신했지만」도 있다. 돈 후안은 스페인에서 엘비라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는 그녀를 농락하지만 이내 사라져버린다. 엘비라는 세빌리아에서 가까스로 그를 찾지만 「카탈로그의 노래」를 듣고는 그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이 곡은 돈 후안의 실체를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는 엘비라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부정적인 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 후안이 시골 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며 함께 부르는 2중창 「거기서 그대 손을 잡고」의 낭만적 분위기는 낭만주의 시대에까지 극찬을 받으며 쇼팽 등의 여러 음악가들에 의해 응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돈 후안은 주인공답지 않게 단독으로 부르는 서정적 노래인 아리아가 적다. 남주인공으로서는 흔치않게 ‘테너’(고음역대)가 아닌 ‘바리톤’(중간음역대) 가수가 역할을 해내는 것도 특징적이다. 주인공 돈 후안은 여성들을 유혹하고 그녀들을 버림으로써 이기적인 연애행각을 벌이는 인물이다. 이런 돈 후안의 성격을 음악적 분량과 연관지어 “오페라 대본가나 작곡가가 돈 후안을 얄밉게 여겨 그랬던 것은 아닌가”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황장원<풍월당> 음악칼럼니스트는 “전적으로 돈 후안의 캐릭터 특성 때문일 뿐 제작자 개인이 바람둥이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실제로 극이 진행되는 내내 돈 후안은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캐릭터들의 활동을 멀찍이 관조한다. 중얼거리기, 말 보태기 등 막후조종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게다가 돈 후안은 여타 오페라처럼 한 여성에게 깊이 빠져드는 법이 없다. 남성의 고음 음역대를 담당하는 테너는 남녀 간의 열정적 사랑을 표현하기엔 좋으나 돈 후안과 같은 냉소적 캐릭터를 나타내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황 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무엇이 「돈 조반니」를 주목하게 하나

김선욱<고려대ㆍ스페인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는 이 이야기가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었던 요인들 중 하나로 ‘성적 코드’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의 치정관계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힘이 있다”며 바람기 많은 돈 후안의 행적이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이용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돈 후안에게 당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또한 관람객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황 칼럼니스트는 “돈 후안과 함께하는 세 여성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가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빛나는 조연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처절한 세 여인과 괴기스런 기사장, 그러나 그 중에서도 돈 후안 못지않게 많은 주목을 받는 인물은 그의 하인 레포렐로다. 레포렐로는 광대 같은 캐릭터로서 주인인 돈 후안의 행적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한편 아첨하며 그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한다.

연기 중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주인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등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도 레포렐로의 역할이다. 실제 레포렐로를 연기한 바 있는 신금호<반포아트센터M> 연출가는 “굉장히 빠른 템포에 맞춰 말을 내뱉듯이 하는 ‘레치타티보’가 많다”며 “게다가 신분 상 돈 후안에 비해 몸을 많이 움직이며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체력적 어려움도 있었다”고 전했다. 신 연출가는 여주인공 중 하나인 엘비라의 대사가 너무 길어지니 “완전 소설책이네”라며 관객을 향해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한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무대 위의 「돈 조반니」

작곡가 모차르트와 유명 오페라 극작가였던 다 폰테는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 1년 만에 또 다른 합작품인 「돈 조반니」를 내놓는다. 그리하여 1887년 「돈 조반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초연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순탄치는 않았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여동생 부부가 극장을 방문하기로 예정한 날이 우연히 초연 날짜와 겹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초연은 10일 가량 미뤄지게 된다. 황제 여동생 부부의 극장 방문일과 오페라 상연을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한 극장 측의 대처였다.

극장 측에서 설명한 초연 날짜 연기의 이유는 “너무 파격적이어서”였다. 극 초반부터 자극적인 장면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돈 후안은 어떤 여인을 농락했다가 여인의 아버지인 기사장과 싸우게 되고 급기야 그를 죽이고 만다. 극의 마지막에서도 돈 후안는 죽은 기사장의 석상에게 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다. 이와 같은 충격적 장면 외에도 극 속에서는 귀족과 황족 등에 대한 풍자가 계속된다. 황족을 맞아야 하는 극장 측에선 이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비엔나에서의 초연은 그런대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아주 흡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 번째 공연을 치르게 된 체코 프라하는 달랐다. 우선 1년 전인 1886년 프라하에서 모차르트와 다 폰테의 합작 「피가로의 결혼」이 크게 성공했었기에 프라하 국립극장에서는 “새로운 오페라가 나온다면 이곳에서 초연을 하게 해달라”고 직접 의뢰를 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프라하에서 치러진 모차르트ㆍ다 폰테의 두 번째 「돈 조반니」 공연은 비엔나에서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상황은 당시 프라하의 상황과 밀접히 연관된다. 신 연출가는 “종교혁명이 여타 유럽에 비해 빠르게 일어나는 등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프라하의 분위기가 이런 반귀족적인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연 이후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 온 「돈 조반니」의 현재는 어떨까. 비교적 자주 공연되긴 하지만 아쉬움은 남아있다. 황 칼럼니스트는 “군소오페라단에 의해 종종 공연되긴 하지만 국립오페라단이나 외국 오페라단에 의해 대규모로 공연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돈 후안의 바람기로 인해 너무 다양하게 등장하는 여주인공들, 어설픈 연출에 대한 우려, 비용 등이 문제라는 것이 황 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돈 조반니의 새로운 단장은 계속된다. 최근 신 연출가는 오페라 공연에 해설을 함께 삽입해 극 자체 외에도 배경이 되는 도시, 당시의 사회적 흐름 등을 함께 설명하는 시도를 했다. 그가 뉴욕에서 연출한 공연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주인공으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신 연출가는 “정형화된 오페라를 각색해 만드는 일이기에 어느 부분까지 바꾸느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한편 “그러나 재밌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엘비라를 힘이 센 여자로 만드는 등의 시도를 계속 하려는 중”이라고 전했다.

일러스트 심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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