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쫓는 추격자, 코흐
세균 쫓는 추격자, 코흐
  • 유지수 기자
  • 승인 2011.03.21
  • 호수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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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3월 24일 로베르트 코흐 결핵균 발견
나는 결핵균이다. 얇은 뱀처럼 생긴 나는 9천만 년 전부터 사람의 몸속에 침투해 병을 일으켰다. 나는 인내심이 강한 균이기 때문에 몸에 침투한 뒤 면역력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병한다. 내가 아무 기관에나 기생해 있으면 면역 시스템이 나를 없애기 위해 다른 세포들까지 공격한다. 이렇게 조직이 광범위하게 파괴되면 폐출혈이나 각혈이 찾아오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나는 공기 중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거지든 부자든 상관없이 모두 나의 표적이다. 내 세상이던 17세기에 예술인과 부자들도 많이 걸린 병이었기 때문에 ‘미인과 천재의 병’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거와 같은 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9천만 년 동안이나 숨어있었던 나를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의 조용한 의사였다. 그가 의사 업무에 조금이나마 흥미를 느꼈다면 나의 등장은 좀 더 미뤄질 수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진료를 매우 따분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선물해준 현미경은 코흐와 나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나보다 앞서 코흐에게 정체가 들통난건 ‘탄저균’이었다. 코흐는 인내심이 없는 탄저균을 금방 찾아냈지만 이 은색 실 막대가 살아서 증식하는 세균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탄저균을 증식시키기 위해선 탄저균만 따로 배양시킬 배지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바로 고체배지다. 당시 사용하던 액체배지는 균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섞여있어 특정 균만 관찰하기 어려웠다. 그는 삶은 감자에서 세균들이 섞여있지 않고 각각의 군락을 이뤄 증식하는 것을 보고 처음 고체배지를 도입했는데 감자를 계속 사용할 경우 많은 양의 미생물을 배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 뒤 많은 시행착오를 겪던 코흐는 아내가 만든 푸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푸딩의 질감을 만들어주는 ‘한천’을 넣어 고체배지를 만들었는데 이는 나와 다른 세균들이 배양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탄저균 발표 뒤 코흐는 다음 표적으로 나를 삼았다. 그러나 나는 아주 얇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탄저균처럼 쉽게 발견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염료를 내게 갖다 댈 때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염료가 박테리아의 특정 부위만 염색한다는 것을 응용해 죽은 폐 조직 사이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지 않은 생명체에서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고체배지만으로는 나를 배양하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 서식 취향까지 알아내 혈액에서 혈장을 추출해 혈장배지를 만들어 냈다. 난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기 위해 5주 동안이나 잠복해 있었지만 인내심이 더 강했던 코흐는 그 시간을 기다려 결국 나를 발견해내고 말았다. 이렇게 나와의 전투에서 코흐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 번 좌절이 찾아왔었다. 그가 결핵의 치료약을 찾았다며 공개한 것은 ‘투베르쿨린’이라는 단백질이었다. 그러나 투베르쿨린은 결핵 감염여부를 알려줄 뿐 결핵병을 치료하진 못했다. 이후 코흐는 인도까지 달려가 콜레라균을 밝혀낸다. 그는 나와의 전투에서 개발한 혈장배지와 세포염색법을 통해 노벨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에서 발행된 우표 중 가장 많이 얼굴이 실린 의학자가 됐다. 하지만 난 그에게 실체가 드러난 뒤 치료약까지 등장했으니 전성기는 막을 내린 셈이다.

도움: 반홍석<생명공학과 박사과정 4기> 씨, 이상경<공대ㆍ생명공학전공> 교수
저서 「소설처럼 읽는 미생물 사냥꾼 이야기」
유지수 기자 kelsey214@hanyang.ac.kr
일러스트 심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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