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신문,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한대신문,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1.03.12
  • 호수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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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산곶매에서는 좀 더 진솔한 얘길 해보려 합니다. 제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편히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 성대신문 1500호 발간 축사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담당기자는 저에게 현 대학언론이 대면하고 있는 위기에 대한 제언을 부탁했습니다. 대학언론의 위기는 수많은 선배들과 얘기했고 매 술자리마다 놓이는 안주였습니다. 적당히 들은 풍월로 써 내려가면 될 것이라 얕잡아봤습니다. 몇 자 끼적대다 보니 더 이상 쓸 수 없었습니다.

‘변화해라, 세련돼져라, 어쭙잖은 자존심을 버려라’ 저에게 쏟아지는 숱한 말들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었습니다. 귀로 듣기만 했습니다. 알고 있다는 변명으로 묻어두기만 했습니다. 학보사 일을 3년째 하면서 어느 새 관성적인 사고에 굳어져버렸습니다.

후배들에게 ‘면 채우는 기사는 쓰지 마라’라고 매일 같이 얘기하면서도 제 스스로가 한 주 한 주 발행을 위한 발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대학신문은 이미 빠르게 변하는 학생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대학신문은 독자를 잃었고 정체성 또한 사라졌습니다. 과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던 것과 달리 학보사 기자들은 인력난에 시달리며 매일 고된 일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재 한대신문을 비롯한 대다수 대학의 학보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 또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신문을 위한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운동 이후 대학 언론이 잃어버렸던 정체성 또한 여전히 찾지 못한 채 헤매고만 있었습니다. 대학 언론 스스로가 대학사회를 변화해 나아가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잃어버렸습니다. 한대신문은 학생과 학교가 함께하는 공간임에도 현재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관심에 지쳐 또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관성에 이끌려 한 호, 한 호를 발행했습니다.

이제 대학 언론의 소명을 다시 떠올리려 합니다. 학생들에게 교조적인 태도를 버리고 어설픈 급진성으로 도덕적 만족감을 얻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다양한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유연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 합니다. 새로운 시각의 제시로 학내 담론을 형성하겠습니다. 고민에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신문사가 되려고 합니다. 고민의 끝에 많은 학보사가 찾지 못한 대학 언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독자와 함께하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발행하는 신문 중 수천 부는 비 가림개로 노천극장의 깔개로 쓰여 한 번도 읽히지 못한 채 버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또 고민하고 또 시도하고 또 실패하려합니다. ‘신문의 미래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학 언론은 고사 직전이다’라고 단언하는 사람들 앞에서 계속해서 실패하고 변화하는 한대신문이 되려합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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