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돌아올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기다리겠어요
그대 돌아올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기다리겠어요
  • 유지수 기자
  • 승인 2011.03.12
  • 호수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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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과 믿음에 대한 여인의 이야기 오페라 「나비부인」

어두운 병풍 뒤. 일본 여인 쵸쵸상은 몸에 지니고 있던 아버지의 유품, 단도를 꺼내든다. 15살의 어린 소녀는 한 미군을 사랑했고 친척과 종교를 버리며 일본 땅에서 미국인의 아내로 살아왔다. 그는 떠났지만 여인은 돌아온다는 말을 믿은 채 3년의 세월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미국인 아내와 함께 돌아왔고 여인의 피붙이인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자도 자신의 아이도   모두 잃은 쵸쵸상은 그렇게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1막 나비부인, 날개를 펴다
19세기 유럽에선 동양 세계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미국의 소설가 롱이 쓴 실화소설 「나비부인」은 많은 인기를 얻어 연극으로 제작됐다. 15살의 어린 게이샤와 미군 장교의 사랑과 이별, 죽음을 담은 이야기는 연극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연극을 본 푸치니를 매료시켰다.

게다가 당시 관객들은 그리스 신화나 영웅담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의 낭만주의 오페라에 싫증을 느껴 실화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는 ‘베리스모 오페라’를 선호했다. 이러한 유행은 푸치니의 나비부인 오페라 제작에 힘을 보태는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푸치니는 오페라 「토스카」, 「라보엠」으로 호흡을 맞춰온 대본가 일리카, 주세페와 함께 오페라 제작에 나섰다. 자신의 작품 중 그 어떤 여주인공보다도 「나비부인」의 쵸쵸상을 아낀다고 할 만큼 푸치니는 「나비부인」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이 작품은 초연 하루 만에 실패해 막을 내렸다. 이유는 ‘2막이 지루해서’ 였다. 2막은 핑커톤이 미국으로 떠난 지 3년이 흐른 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가 떠난 뒤 항구만 바라보던 쵸쵸상은 드디어 핑커톤이 탄 배가 정박하는 것을 보고 그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운다. 지금은 「나비부인」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어느 갠 날’을 부르는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당시의 길고 지루한 전개는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렸다. 또 일본이라는 배경을 표현하고자 푸치니가 시도했던 동양풍의 음악은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줄거리, 음악에 모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관객들이 등을 돌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박정원<음대ㆍ성악과> 교수는 “푸치니는 작곡 당시 동양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본의 전통악기 ‘샤미센’을 넣고 동양 음악에서 사용하는 ‘5음음계’를 사용해 곡을 썼다”며 “기존 서양음악에서 사용해온 12음계에 익숙하던 관객들은 이런 색다른 시도에 낯설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푸치니는 절친한 친구이자 유명 지휘자인 토스카니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2장을 전면 수정했고 남 주인공 핑커톤의 아리아도 넣었다. 이렇게 수정된 작품은 초연의 냉담한 반응과 다르게 대성공을 이뤘다.

2막 진짜 나비부인의 이야기

「나비부인」이 서양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베일에 싸여있던 동양세계를 생동적으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극의 배경부터 등장인물 간 갈등까지 당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의 과도기를 지나던 일본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극의 배경인 청일전쟁 당시의 나가사키는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항구였다. 미일화친조약과 통상조약으로 일본 내 미국인의 거주가 가능해 요코하마나 나가사키 항구엔 많은 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때문에 핑커톤같은 미군도 주택을 구입하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경제적 활동도 가능했으며 범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일본법이 아닌 모국의 법을 따르는 치외법권이 적용됐다.

개방 초기엔 외국인들과 거래에서 일본인들이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보는 일본인의 시선이 우호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개방 역사가 오래 될수록 외국인에 대한 반감도 거의 사라져갔다.

그러나 서양인의 눈으로 써진 줄거리인 만큼 일부 부분이 왜곡되기도 했다. 주로 일본을 식민지로 생각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모습이다. 극 중 쵸쵸상이 결혼 뒤 핑커톤에게 걸맞는 부인이 되고자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 사실을 안 주위 친척들은 그녀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일본은 1860년대 도교를 국교로 정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오고 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쵸쵸상이 친척들과 그녀의 삼촌에게 비난받는 장면은 단지 삼촌이 승려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핑커톤은 중매인에게 100엔을 지불하고 쵸쵸상을 신부로 맞이한다. 핑커톤은 자신의 친구에게 일본인 아내와의 결혼은 주택 계약처럼 달마다 재계약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쵸쵸상이 ‘게이샤’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지 모든 일본 여성이 돈을 받고 외국인과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구태훈<성균관대ㆍ사학과> 교수는 “고급 기생 게이샤는 좋은 상대를 만나면 돈을 받고 결혼을 할 수 있었지만 돈 때문에 사랑도 없이 결혼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구 교수는 “게이샤는 상대에 대한 강한 의리와 믿음을 가진다”며 “그 때문에 쵸쵸상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핑커톤의 말 한마디를 믿고 3년의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3막 되살아난 나비부인
뮤지컬 작곡가 미셸 쇤버그는 어느 날 신문에서 베트남 전쟁 종전 후 딸을 미국으로 떠나보내는 베트남 어머니의 사진을 보게된다. 이 아이는 ‘아메라시안’으로 미군과 아시아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엔 자식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길 바라는 모성애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은 그를 감동시켰다.

때마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현대화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 뮤지컬화를 결심하게 된다. 그가 만든 베트남 판 「나비부인」은 1989년 런던에서 초연돼 전대미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탄생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6번째로 장기 공연한 작품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술집 작부가 된 베트남 여성 킴은 술집에서 미군 크리스를 만나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그 후 크리스는 부대에 복귀해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크리스의 아이를 낳은 킴은 어렵게 크리스에게 연락을 한다. 킴이 죽은 줄 알고 미국여자와 결혼한 크리스는 부인 엘렌과 함께 킴을 찾아온다. 그러나 엘렌은 킴의 아들 탬을 미국으로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한다. 킴은 탬 만큼은 좋은 환경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탬을 미국에 보내기 위해 자살한다.

아시아 여인과 미군 사이의 사랑과 이별,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줄거리는 두 작품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또 두 작품 모두 동양을 배경으로 해 서양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내 성공했다. 원종원<순천향대ㆍ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스 사이공」의 성공에 대해 “이국적 정취에 대한 서양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점이 흥행의 요인”이라고 전했다. 또한 원 교수는 “단지 멜로 드라마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비극적 역사 사건인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해 관객들에게 색다른 체험과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두 작품 사이엔 내용 상의 차이가 있다. 「나비부인」은 쵸쵸상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믿음을 주로 다루는 반면 「미스 사이공」은 ‘아메라시안’과 ‘라이 따이한’ 같은 혼혈아에 대해 사회와 관객들에게 비판과 풍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런 메시지 전달의 연장선으로 뮤지컬 제작진은 종전 후 베트남에 남아있는 혼혈아 ‘부이 도이’들을 돕기 위해 ‘부이 도이 재단’을 설립해 공연마다 수익금을 기부하고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러스트 심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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