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기울이며 터놓는 세 가지 사랑 이야기
술잔을 기울이며 터놓는 세 가지 사랑 이야기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2.27
  • 호수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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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 미소 짓듯이 취한 이 마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삽입된 한 2중창의 도입부다. 연신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곡이지만 영화 속 두 남녀의 사랑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이 곡은 아름다운 도라에게 첫 눈에 반한 귀도가 그녀를 따라 들어선 오페라 극장에서 나오던 음악이다. 동시에 나치 체제 아래 험난한 유대인 수용소 생활 속에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상기시켜준 음악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한 2중창은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2막에 등장하는 ‘호프만의 뱃노래’다. 평평한 유람선인 곤돌라 위에서 울려 퍼지는 황홀한 2중창은 호프만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여인 줄리에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한다. ‘호프만의 뱃노래’뿐만 아니라 ‘비둘기는 날아갔네’, ‘빛나는 다이아몬드’ 등 오페라 속에는 귀에 익은 아리아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단연 ‘호프만의 뱃노래’다.

2중창으로서 이 곡이 가지는 특성은 부르는 이가 남성과 여성일 수도 있고 여성만 두 명일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성인 줄리에타는 고정적으로 출연하되 나머지 한 자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여장남자 니클라우스와 악인 다페르투토 중 한 명이 차지하게 된다. 박수길<음대ㆍ성악과> 명예교수는 “줄리에타가 여성의 메조소프라노 역할을 하는 니클라우스와 함께 하면 여성 2중창이 되고, 다페르투토와 함께 하면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혼성 2중창이 된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줄거리나 음악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연출하는 이에 따라 독특하게 각색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각색은 「호프만의 이야기」의 ‘오페레타’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페레타는 형식이 고정된 그랜드 오페라와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각색이 가능하다. 오페레타의 구체적 정의에 대해 박 교수는 “극 내용 자체의 가벼움보다는 소규모의 공연에 무용 등 뮤지컬적 요소와 같은 대중성을 가미한 것”이라고 전했다. 연이은 오페레타의 흥행 성공으로 명성을 얻은 오펜바흐는 결국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된 호프만의 이야기를 제작하며 이번에야말로 오페라 작곡자로서 인정받길 원했지만 결국 초연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렇다면 오펜바흐 자신이 그렇게나 고대하고 서둘렀으나 끝내는 볼 수 없었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술에 취한 호프만이 자신이 만난 세 여인들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며 본격적으로 막이 시작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그 사이에 담긴 3막의 이야기 속엔 올림피아, 줄리에타, 안토니아를 향한 호프만의 사랑과 좌절이 담겨있다.

1막에서 호프만은 인형인 올림피아를 사랑한다. 스팔란차니의 감쪽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올림피아는 호프만에게 항상 “네”라고 긍정적인 대답만 하며 완벽한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허무하게 부서지고 만다. 2막에서 호프만이 만나는 여인은 창녀 줄리에타다. 2막의 초반에 줄리에타는 앞서 설명한 ‘호프만의 뱃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녀는 호프만을 유혹해 그의 그림자를 빼앗고는 또 다른 남자와 떠나버린다. 마지막으로 3막에서 호프만이 만나는 여인은 안토니아다. 그녀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지만 병으로 인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악한 의사 미라클이 그녀에게 노래 부를 것을 종용하고 불가항력적인 힘에 이끌린 안토니아는 결국 아름다운 목소리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다 죽는다. 박 교수는 “「호프만의 이야기」처럼 독립적인 몇 개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큰 흐름 속에 녹아드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구성”이라고 전했다.

이 독특한 오페라의 원천 이야기는 원작자인 E.T.A 호프만의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낭만주의 시대를 이끈 작가 E.T.A 호프만의 원래 직업은 법관이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꿈을 안고 큰 공연에서 지휘를 맡았으나 첫 공연에서 실패해 악장직을 잃는다. 결국 그는 낮엔 법관으로서 일하고 밤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예술 활동을 하며 이중적 생활을 이어나갔다.

호프만의 작품들은 대부분 환상적이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현실적인 측면도 다분하다. 최민숙<이화여대ㆍ독어독문학전공> 교수는 “계몽주의, 합리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예술의 사조가 바뀐다 해도 모든 예술이 낭만성에만 집중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호프만의 작품 속엔 환상적 이야기뿐만 아니라 현실적 세계가 철저하게 반영돼 있다”고 전했다. 이런 E.T.A 호프만의 세계관이 빅토르 위고, 도스토예프스키, 모파상 등의 작가뿐만 아니라 바그너, 특히 오펜바흐와 같은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시 오페라 본연의 이야기로 돌아와 오펜바흐 사후 미완성의 유작으로 남은 「호프만의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도 작품은 오펜바흐의 동료이자 관현악자인 에르네스트 기로에 의해 완성된다. 그리고 비로소 1881년 2월 10일, 베를린의 ‘코미시 오퍼’ 극장에서 성공적으로 초연을 치른다. 같은 해 12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링’ 극장에서도 공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그곳에서의 두 번째 공연을 앞둔 어느 날 엄청난 화재가 발생하고 만다. 사람들은 오페라 의 3막에 등장하는 악한 의사 미라클을 떠올리며 “미라클이 이 작품에 저주를 퍼부었다”고 공포에 떨었다. 결국 이 작품은 20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1905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다시 한 번 코미시 오퍼 극장에서 치른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나서야 「호프만의 이야기」는 누명을 벗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공연 상황은 어떨까. 국내에서 「호프만의 이야기」가 가장 최근에 공연된 때는 2009년이다.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 등과 같이 활발히 공연되는 작품들에 비해 공연 빈도가 낮은 편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몇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첫째, 중심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둘째,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다. 셋째, 극적인 경향이 덜 한 삽입음악들이 한국인들의 음악 취향과 다를 수 있다. 최 교수 역시 “오페라를 보기 전에 미리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호프만의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한국의 관중들과 만나 호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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