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신입사원공장이 아니잖아요
대학은 신입사원공장이 아니잖아요
  • 하동완 기자
  • 승인 2010.12.31
  • 호수 13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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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위한 스펙, 졸업요건으로 둬야 하나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청년 체감실업률은 23%이다. 대한민국 청년 4명 중 1명이 실질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백수라는 말이다. 힘들게 대학 나와도 취업 하기 힘든 현실에 대학생들은 각자 살아남을 길을 찾아 발버둥 치고 있다. 영어능력시험은 물론이고 제 2외국어까지 준비하는 것이 대세다. 학교는 한 술 더 떠 졸업조건으로 ‘스펙’을 요구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토익, 토플 점수는 양반이다. 고려대는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까지 필수 졸업요건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취업이 대학평가의 기준이 돼버린 시대, 하지만 이것이 학문의 기조에 맞는 것일까. 대학에서 스펙을 강요하는 것이 올바른 것 일까. 꽁꽁 얼어붙은 청년 실업률만큼이나 추웠던 지난 28일,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재구성했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얼마 전 군대를 제대한 김수용(27)씨는 고려대에 다닌다. 이제 졸업까지 2학기가 남았지만 졸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졸업학점도 거의 채웠고 점수도 준수한 편인 그의 걱정은 다름 아닌 한자능력검정시험이다.

6년 전부터 학교에서 한자능력시험을 졸업조건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나중에 취업할 때 한자가 필수인데 요즘 고려대 학생들 한자 교양이 너무 없다”는 총장의 말 한마디에 만들어진 학칙이다. 졸업을 코앞에 둔 김 씨는 아직 한자능력검정시험을 보지 않았다.

“제가 이과 출신이다 보니 한자에 대한 기본지식이 거의 없어요. 또 그동안 학과공부 따라가느라 한자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과에서 항상 한두 명 씩 졸업요건 때문에 졸업을 유보하는 선배들이 생긴다.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을 따고 학교에 제출하기위해 수백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또 내야한다. 이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김 씨는 방학동안 한자자격증에 매진할 생각이다.

박승우(23)씨는 서강대 학생이다. 이제 3학년인 박 씨는 1학년 때 8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 쓰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독서커리큘럼 스펙을 위해서다’, ‘독서교양 증진을 위해서다’ 학생들 사이에 추측은 많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교수님마다 각기 다른 책을 한 권씩 던져주며 학기말까지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분량과 평가기준도 제각기 달랐다. 어떤 교수는 2000자 이내로, 어떤 교수는 자유분량으로 내는가 하면 분량을 채워오더라도 받아주지 않는 엄격한 교수도 있었다. 독후감 8개를 채우지 않으면 졸업장이 나오지 않는다. 졸업하기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후감을 제출해야 한다.

“1학년 때는 불평불만이 많았죠. 수업마다 과제도 많고 또 1학년 때는 사람들 사귀고 하느라 학과 수업 외에 할 일이 많잖아요. 하지만 일단 하지 않으면 졸업을 안 시켜 준다니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사이 독후감을 사고파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박 씨도 그렇게 독후감 2개를 채웠다. 학교 인터넷 자유게시판에는 이따금씩 독후감 을 산다는 글이 올라온다.

이외에도 영어전용수업을 들어야 하는 고충에 모두 공감했다. 교양 혹은 전공수업까지 영어전용으로 채워져 있어 수업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잇따랐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취업하려면 스펙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걸 왜 졸업요건으로까지 지정해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하죠.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에 맡겨둬야 하는 건데. 대학은 학문을 말하고 묻는 곳이지 신입사원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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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7-30 19:27:02
이 글은 현대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을 강요받고, 졸업 조건으로 필요없는 시험을 보고 힘든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인데 실질적인 취업에 영향을 미치도록 정책을 관리하는 것이 올바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