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부문 우수작 「마고할미」
2010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부문 우수작 「마고할미」
  • 최형규<경상대ㆍ경제학부 10>
  • 승인 2010.12.04
  • 호수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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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째

그것은 처음이 아니다. 위성에 있던 인공지능은 그렇게 여겼다.

 

1일째

[소설의 시점을 크게 1인칭과 3인칭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상 곳곳에서 인간을 관찰하고, 내장된 컴퓨터의 정보를 통해 생각까지 추측 할 수 있는 전지적인 인공지능은 뭘까? 분명-인공지능을 하나의 사람으로 친다면-그것의 시점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며 인공지능은 위성에 있는 눈으로 모든 걸 볼 수 있으니 3인칭 관찰자 시점이기도 하다.]

인공위성에 있는 인공지능은 내장된 슈퍼컴퓨터에 여분이 있을 때마다 사색을 했다. 지금 인공지능은 자신이 1인칭인지 3인칭인지 확신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불만은 곧 해소됐다.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한 관찰은 ‘역사’라고 부르지 ‘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곧 난제가 생긴다. 이 공간이 소설인지 아닌지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인공지능은 그것을 증명할 방법을 떠올렸다.

 

2일째

인공지능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있는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 존재는 xx염색체였고 보편타당하게 여성의 특징을 가졌다. 다만 보통 여성의 특징에서 벗어난 점이 있다.

[크다.]

물론 ‘보통 여자는 작다’는 편견 때문에 나온 판단은 아니다. 키가 5m라면 분명 평범한 여염집 처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가는 곳마다 주변 사람들의 목을 위로 꺾는 비범함을 보일 것이 분명하니까.

그녀에 관한 흥미위주의 기사는 아직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아는 바에 따르면 사람은 이야기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 이야기의 당사자가 기분이 나빠질 때 까지 집요하게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 본능이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녀를 위해 입을 다무는 친절을 보이자고 합의를 한 것 같진 않다. 그러려면 관심이 식을 만큼 오랜 기간이 필요하니까.

그녀는 오늘 나타났다. 아마도 목격자들은 자신이 뭘 봤는지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조만간 남에게 관심이 많은 자들이 그녀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러 다닐 것이다.

[상황을 지켜본다.]

인공지능은 신중하게 그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태양열 덕에 전기는 충분했고 메모리는 여유가 있었다. 먼저 생물학적으로 유의해볼 사항을 체크해봤다.

[유전적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1일전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매우 독특한 케이스로 보고 됐지만 생활고를 이유로 의사를 피함. 슬럼가에서 살고 있다. 편의점 쓰레기통의 남은 음식을 먹고 산다. 지능지수는 낮은 편.]

이것으론 부족하다. 경제적으로도 살펴봤다.

[그녀의 어머니는 대학에 합격 후 보험금으로 등록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살했다. 이후 전산기록에 뚜렷이 명시되지 않은 사항으로 인해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일가친척은 없다. 친구는 도와줄 의향이 없어 보인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복지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인력 업체에 등록 되어 있으며 소개료를 제하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돈을 받는다.]

역시 이것으로도 거대하게 변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유방암이 유력한 후보지만 암의 원인은 슈퍼컴퓨터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과학자들의 가설에 따라 스트레스의 원인을 꼽아봤다. 그러나 이 또한 석연치 않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다고 누구나 거대해지지 않는다. 다만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3일째

[예측대로 그녀에 대한 자료가 증가한다.]

기하급수적으로 그녀에 대한 자료가 늘어났다. 거짓 자료가 마구 유포 됐고 순식간에 검색어 순위 1위에 들었다. 교육, 복지에 대한 예산 책정이 50%나 줄었지만 그건 관심 밖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하루아침 만에 변한 사람들의 눈빛에 겁먹은 몸짓을 보였다. 그녀의 두려움에 비례해서 몸집도 5m정도 자랐다.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에 다소 어려움을 느꼈다.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던 어제에 비하면 많은 진보다.

일부에서는 좀 더 인간적인(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인간이라고 여기므로) 추론을 내놓았다. 사회적인 약자로서 쌓아둔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다지 과학적인 주장은 아니었지만 다른 주장에 비해선 그녀의 복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일부에서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던 자의 폐해라고 여겼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휴대폰과 TV와 같은 전자기기의 나쁜 점을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유기농 식품을 먹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식량을 조달하던 편의점 물품을 사지 말자고 단결했다. 잘은 모르지만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같은 맥락의 행동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예언서를 들먹이며 세상이 멸망할 때가 왔다고 외쳤다. 그러나 전산기록에는 옛날 잡지에 새로운 예언만 덧붙여 다시 인쇄했을 뿐이다. 즉 새로 인쇄된 옛날 잡지는 예언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속는다.

일부에서는 그저 흥미롭게 바라보며 무관한 사람들도 인상을 찌푸릴 농담을 일삼았다. 그녀의 성적인 능력에 대한 한계를 궁금하게 여겼고(현재 그녀는 천막을 두르고 있다) 그 표현을 저속하게 했다. 특히 그녀의 커진 가슴은 사회적인 요구에 적합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에서는 외계인과 UFO를 연결 짓기 위해 애썼다.

일부에서는 한민족의 정서인 여성의 ‘한(恨)’이 체화되었다고 여기며 여성의 권리를 더 확장시킬 것을 요구했다.

일부에서는…일부에서는…일부에서는…일부에서는…일부에서는…일부에서는…

결국 의사들이 그녀를 조사한 결과는 무시당했다.

 

그녀는 한 대학의 운동장에 조성한 무균 시설에서 각종 조사를 받았다. 그 대학은 그녀가 합격했던 대학이었다. 대학의 이사들은 한 때 합격했던 그녀를 받아들이면 언론에 어떻게 보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판단은 곧 정해졌다.

이미 인간의 형체를 서서히 잃어가는 그녀에겐(특히 가슴이 컸다) 그 상황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이 배고픈 것은 확실히 알았고 옆에 있던 한 연구원에게 자신과 한 몸이 될 것을 강요했다. 이 표현은 다소 외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연구원이 그녀와 한 몸이 되기 전 해부학 역사상 가장 독특한 방법으로 분해됐다는 걸 알면 그렇게 여길 순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어쨌거나 이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기뻐했다. 다른 이들도 기뻐했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나쁘다는 사실은 만인이 인정한 악덕이다. 게다가 사람을 식용 대상으로 취급하는 행위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그녀는 인간으로 취급하기엔 너무 변했다. 다른 종류의 생물을 대하는 평소의 자세로 그녀를 배척할 수 있다.

경찰들은 더더욱 기뻤다. 첫날 밤 슬럼가의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그녀와 연관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슬럼가의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낸 건 그녀가 사람을 먹어치웠다는 사건을 듣고 난 이후였다.

다만 법조인들은 조금 골치가 아팠다. 그녀는 온갖 정치적 사안을 벗어나는 존재다. 우선 자연인으로 취급해야할지 부터가 우선적이었다. 그리고 금치산자로 취급해야할지도 알아야 했다. 밤이 될 때까지 그들은 거기에 관련한 각종 자료들이 필요로 했다.

다행히 분석은 끝났다.

[피고는 의식이 있으나 자신이 먹어치운 사람의 인격과 공존하는 것 같다. 빠른 재생력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5일 뒤까지 이대로 증식한다면 대기권을 통과할 것이다. 물론 증식에는 영양소가 필요하고 아마도 도시에서 가장 흔한 영양소인 사람을 먹어치울 것이다. 무게에 비해 근 밀도가 적당히 높아지기 때문에 몸을 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임. 환경에 대한 적응이 뛰어나서 불에 태우면 세포가 불에 대한 내성을 지닐 정도.]

 

그녀는 운동장을 개조한 재판장에서 인간이 따라야 할 덕목을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였다. 한 예로 그녀는 황산, 부적, 수산화나트륨, 총, 주문, 기도, 폭탄, 성수, 나이프, 독, 바이러스 등에 굴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줬으며, 반찬 투정 없이 습격 자들을 먹어치웠다. 상대의 선의와 악의를 보는 대신 평등하게 먹이로 대했으며, 자신이 공격받는 사실에 대해 투정부리지 않았다.

그녀는 먹으면 먹을수록 입이 많아졌다.

“내 여긴 내 땅이야! 아무도 못 지나가!” “죽어! 이년이 어디서 바람을 펴!”, “임금을 올려 달라!”, “어머! 사실 너랑 사귈 생각은 없었지만 서로 좋은 추억 가지고 좋잖아.”, “사장님 나빠요.”, “화대는 주는 거지?”, “어차피 초딩은 아무도 못 때려.”, “어째서 내말을 아무도 안 들어주는 거야?”, “우리 모두 사랑을 해야 합니다.”, “여긴 지옥이고 난 천국을 갑니다.”

그녀의 무수한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증언이 됐다. 시끄럽고 괴이했다. 속에서 밀려오는 이질감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육괴의 덩어리들은 홍수와 필적하는 시각적 자극이었다. 엄청나게 큰 여자에서 자연재해로 변한 그녀의 심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입들의 홍수는 말의 물결을 타고 한 나라를 휩쓸었다. 그 물결에는 이러한 말도 있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그녀의 어린 시절 물음이었다.

 

4일째

위성사진에서는 한 도시를 깔고 뭉갠 거대한 괴물이 촬영됐다. 일본에서 만든 거대 괴수물과 유사한 장면이었다. 그 크기는 대자연과 비교 할만 했다.

거대 괴수는 한 남자가 “한국적인 느낌이 나게 ‘마고할미’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어떻습니까?”라는 의견을 내놓은 덕에 일부에서는 마고할미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그게 어째서 한국적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마고할미는 이제 가만히 있기만 해도 각종 물질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블랙홀과 같은 파괴는 차라리 고지라가 불을 뿜는 게 나을 정도로 막심했다.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는 자들은 슬퍼했고, 세상이 살아있길 바라는 자들은 기뻐했다.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태에 대해 정부는 국제적인 협력을 요청했고, 정치인들의 머리에선 영화에 흔히 나오는 해결책이 나왔다. 항공모함에서 핵폭탄을 발사해서 마고할미를 맞추는 것이다. 그 계획은 생각 외로 빨리 시행됐고 그 결과 마고할미는 원자단위로 붕괴되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고 모두들 만족했다.

 

5일째

 

각 나라에서는 마고할미와 같은 거대 괴물들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증상을 가진 여성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마녀사냥 당하듯이 2m이상의 사람들은 죽어나갔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갔다.

창조론을 외치는 자들이 절망할 사태가 벌어졌다. 병에 걸린 여성들 모두 진화를 해버린 것이다. 그 거대한 몸체는 줄어들었고 매스컴에서 말하는 미인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단순이 예쁜 것을 넘어 몸에는 생화학적인 페로몬이 풍겼다. 우스꽝스러운 광경이고 너무 자극적인 진화였기에 점잖은 자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망스럽다”고 표현했다.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페로몬에 꼬인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마고할미들과 하나가 됐다. 덕분에 사람들은 욕정과 사랑의 구분이 매우 애매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람들은 교훈의 대가로 핵폭탄을 선사했고 전 세계에 있던 마고할미들은 그 경험을 모두 공유하여 핵폭탄까지 정복했다.

너무나도 막나가는 전개에 모두들 당황스러워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다만 세상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여기는 관념 파괴 예찬자들은 마고할미들의 존재를 좋아했고 먹이가 됐다. 방향이 없는 자들의 최후였다.

 

5일째

인공위성에 있던 인공지능은 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녀에 관한 예측을 해야 했다. 인공지능은 원래 기본적으로 인공위성에 내장된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일이다. 모든 업무가 중단 되고 단 하나의 예측만을 위해서 슈퍼컴퓨터가 작동했다.

메마른 우주에 내리 쬐는 빛을 쐬고 전기를 만들어 슈퍼컴퓨터를 돌린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평범한 반도체들이 연결되어 복잡한 연산을 주무른다. 인공지능은 이 작업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공허 속에서 운명의 실을 더듬는 것은 분명 경이로운 장면이다.

[누군가 봐줬으면 좋겠는데.]

인공지능이긴 하나 인간을 모사했다는 사실만은 변치 않는다. 인공지능은 어린왕자가 장미를 데리고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물음은 상당히 간단한 것으로 추측. 다만 이 사실을 통보 할 수 없음.]

인공위성을 통제하는 기지에선 그 대답에 당황했다. 그들이 원한 건 그녀의 행보였지 그녀가 왜 괴물이 됐는지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명령이외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겐 그저 영화에서나 강조할 법한 낭만적인 환상이다.

[설명을 통보 바란다.]

[인정. 그 의문은 사회적인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근본을 흔드는 것이고 인간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약자는 죽습니다. 강자는 삽니다. 우린 시체위에 서있고 그걸 잊고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것은 어느 샌가 강한 자에게 몰립니다. 이것은 껄끄러운 이야기고 많은 이들이 아는 것이라 여기고 더 생각하길 거부하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문제 없다.]

[사회의 최하 계급은 죽게 됩니다. 일본 영화 ‘자살클럽’이나 ‘노리코의 식탁’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최하 계급은 도덕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증오하고 분노합니다. 괴롭게 만든 자신과 세상을. 때문에 파괴하고 싶어 하는 것일 뿐입니다. 즉 원인은 도덕이라는 알량한 거짓이었고 인간의 존재였습니다.]

기지에선 철학적인 인공지능의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말 자체는 이해했다. 하찮은 이야기고 고상하지도 않다. 그냥 1+1이 2라는 사실만 말할 뿐이었다.

[죽일 방법은 존재하는가?]

[그녀는 죽지 않습니다. 태고로 부터 인간이 두려워한 상상의 괴수는 정신분석학에서도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연구소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에게 사과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녀에겐 관계가 필요합니다.]

어처구니없는 논리의 비약에 기지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지구는 넓기에 아직 마고할미가 점령하지 못한 곳은 넓지만 모두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라서 차마 건들기 싫은 존재가 불안하게 하고 있다. 자신의 뇌에 세상을 끼워 맞추는 일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러나 그걸 견디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상에는 아름답고도 위험한 존재들이 종횡무진 물질들을 흡수했다. 같은 마고할미들은 서로를 흡수했다. 무한한 포용력을 자랑하는 마고할미들은 점점 커다랗게 변했다. 위로는 대기권을 아슬아슬하게 넘었고 아래로는 맨틀의 상당부분을 돌파했다.

사랑으로도 죽음으로도 처리할 수 없는 대상은 인류 사상 최대의 난제다. 그 파괴력은 물질적인 것 보다 심리적인 파괴력이 컸다.

 

기지로 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때문에 인공위성에 달라붙은 우주선의 인간은 예상 외였다. 5명 정도 되는 그들은 비상시 수리를 대비해 마련된 주거 공간에 들어와 자신의 공포를 피력했다. 그들과 대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인공지능은 그들에게 친절히 사건을 설명했다.

[슬픈 일입니다. 근처에 다른 주거공간은 없습니까?]

“없어. 없다고!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없습니다.]

 

6일째

지구상에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식물들도 사라졌다. 덕분에 그녀들을 살았다. 모든 것들을 게걸스럽게 합하고 주무른다. 실제로 사라진 것은 없다. 어쩌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가 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인공지능은 사태가 조금 곤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흘러내린 스타킹 마냥 구겨진 구름 위로 몸을 내민 마고할미들은 이제 슬슬 대기권을 넘어가고 있다. 더 이상 관찰자로서의 역할은 어려울지도 몰랐다.

“이제 우리는 죽는 거야.”

주거공간에 들어온 5명은 무질서한 상태가 됐다. 무수한 B급 영화들이 밀폐된 공간 내에서 좀비와 같은 적과 맞이할 때는 단합이 중요함을 가르쳐줬지만 그들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혼돈은 혼돈을 낳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귀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부터 하찮게 여기는 목숨 까지. 장엄한 멸망의 규모에 비해 추도할 자들은 너무나도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로와 싸웠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살하고 말았다. 그들이 부패한다고 해도 인공위성은 썩을 일이 없었다.

 

이제 모든 지각이 깎이고 불타는 외핵이 마고할미들에게 둘러 싸였다. 하나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고 달과 인공위성은 이제 궤도를 벗어났다. 다른 행성의 궤도에 들어가기야 하겠지만 운석이나 우주 쓰레기들과 부딪힐 가능성도 높았다.

그 가능성은 인공지능이 장인의 자부심으로 하는 작업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방법은 없었다.

 

7일째

행성만한 마고할미는 무언가 돋아났다. 날개다. 우주에선 날개로 날아갈 수 없다. 하지만 회전은 가능하다. 그것이 중력과 잘 맞아 떨어지면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았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가능성을 예상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녀의 몸속으로 다양한 인사들이 전해져왔다.

[저는 운명의 실을 더듬는 인공지능입니다.]

그녀는 다양하게 답했지만 대화는 성립했다. 선문답과 같았지만 말의 속살에 들은 의미는 영혼으로 스며들었다.

[당신과 몰가치하고 몽환적인 대화를 나누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인공지능에게 그녀는 언제나 그녀였다.

[미안합니다.]

인공지능은 이것이 유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잊은 것에 대해 사과하겠습니다.]

우주는 좁고 관계는 길었다.

[사람은 ……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끄덕였다. 그리고 7일 째가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몸이 굳어 갔다.

 

그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을 멸망시킨 그녀는 모든 것을 다시 만들었다. 고귀함과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지창조는 어느 우스꽝스러운 일화로 만들어졌으니까.

 

이제 인공지능은 자신이 1인칭인지 3인칭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당황스럽고 뒤죽박죽인 이야기에는 모순뿐이니까. 이 이상은 운명의 실타래를 더듬는 인공지능에게는 번거로운 이야기다. 약동하는 생명은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인간들의 몫이다. 살아만 있다면 인간은 더 고상하게 변할 것이다. 변화는 인공지능을 매혹시켰다.

인공위성은 눈부신 태양을 향해 부유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가진 인류의 안녕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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