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부문 우수작 「결국 차차차입니다」
2010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부문 우수작 「결국 차차차입니다」
  • 안상원<생활대 생활과학부 10>
  • 승인 2010.12.04
  • 호수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하늘은 맑고, 하얀빛이 가득한 공원의 새들은 지저귀고, 소풍을 나온 조무래기들은 눈싸움을 하며 행복한 비명을 내뱉고, 내 앞에 앉은 형은 ‘참이슬'을 마시며 이런 밝음을 저주하고, 우리 옆에 앉은 한 커플은 저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을 속삭이며 깔깔거리는,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평범해서 오히려 그 평범함이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셋, 둘, 하나! 새해가 밝았습니다."

형과 나는 새들도, 조무래기들도, 연인들도 사라진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새해를 맞았다.

"아이고, 새해부터 이렇게 술을 쳐 마시면 어떡혀! 나 빨리 집에 들어가 봐야 하는디. 그라믄, 내가 열쇠를 줄테니께 잘 잼그고 나가잉. 한두 번 아니니까 잘 알겄지?"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 아줌마는 '목포집'이라는 간판에 걸맞지 않게, 잘도 충청도 사투리를 입에서 쏟아냈다. 물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줌마는 목포 출신도, 그렇다고 충청도 출신도 아니었다. 형은 주인아줌마가 원래 서울 토박이인데, 장사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사투리를 배웠다고 했다.

“왜 그런 건데?”

“원래 사투리를 써야 정겹잖아. 서울말을 쓰는 아줌마들은 어쩐지 세상 물정 모를 것 같다고나 할까…. 서울 말씨를 쓰는 고향의 푸근한 아줌마가 상상이나 가니? 한국말을 하는 ‘티몬과 품바’가 더 자연스럽겠다, 알겠니?"

형은 꼭 말끝에 '알겠니?'라는 말을 붙였다. 대게는 알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원, 투, 그리고 쓰리.

 

16살의 형은 13살의 나에게 삶을 사는 건 완벽하게 짜여진 스텝을 밟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두 발을 이리저리 놀리며 원, 투, 그리고 쓰리. 산다는 건… 뭐, 결국에는 너도 알게 되겠지만… 아무튼 이런 식이야.”

난 형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사람의 삶이 춤에 비유될 수 있는지 의아해했었다. 게다가 16살의 형은 현란한 라틴댄스는 커녕, 텔레비전에 나오는 HOT의 춤도 못 추는 샌님이었다. 그런 샌님이 감히 인생을 스텝에 비유하다니. 난 옆으로 엎드려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우혁의 춤을 보며 콧방귀를 끼곤 했다.

“어쩌면 형은 자신의 나이에 맞게 사는 법을 몰랐던 걸지도 몰라. 중학생 때부터 그랬으니.”

지연이는 가만히 내 말을 들었다. 또 가끔은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졸지 않았다는 것과 얘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우습지.”

순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원, 투, 그리고 쓰리. 입술을 가만히, 아주 가만히 움직였다.

 

어느 순간부터, 형은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대강 형이 수능을 치룬 다음 날부터였던 것 같다.

와, 진짜 어렵다…. 형이 이런 소리를 속으로 내뱉으면서 외국어 시험을 볼 쯤, 갑자기 창 밖으로 뭔가 굉장히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 날 형의 교실 창문 너머에서 떨어지던 것이 사람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그 사람이 형의 친구였다는 것을 형은 아홉시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그러니까 상녕이가 옥상에서 지상으로 몸을 날릴 적에… 그래서 내가 시험을 치루고 있던 시험장의 창문 옆을 지나칠 쯤에… 나랑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아…. 왠지 해류를 잘못 타서 오징어잡이 배에 잡힌 밍크 돌고래의 눈을 보는 기분이었어."

'상녕'이라는, 잘못 발음하면 '쌍년'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름을 가졌던 형은 형의 친구이자, 툭하면 바른 소리만 해서 주위 사람들을 곤욕스럽게 만드는 취미를 가진 형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문 열지 마. 알겠니?”

상녕이 형을 처음 집에 데리고 오던 날, 형은 이상하리만큼 방문을 꼭 잠갔다. 하지만 형이 아무리 방문을 꼭 잠가도, 워낙 오래된 집이었기에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적나라한 소리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가끔은 사춘기 소년들의, 변성기를 지나고 있음이 분명한 굵직한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또 가끔은 형의 낡은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난 배를 깔고 '오스카 와일드'나 '트루먼 카포티' 따위가 쓴 이해하지도 못할 책들을 읽으며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이제 들어와도 돼.”

문을 열어주는 형의 얼굴은 왠지 산고(産苦)를 겪은 늙은 산파처럼 보였다. 얌전하게 바지 사이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교복 셔츠의 밑단은 창녀들이 입는 치마 마냥 너덜거렸고, 하얀 얼굴에는 땀이 흐른 자국이 선명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 때 둘은 '연애'를 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형들은 자주 나에게 이해하지도 못할 '기형도'나 '이상'을 읽어주곤 했다. 시를 읽는 내내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히히덕거렸고, 그 소리 때문에 가뜩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시들은 더 난해하게만 들렸다. 이럴꺼면 그냥 나 혼자 읽게 내버려두면 좋으련만. '오감도'가 웃음소리에 파묻혀, 시인지, 히히덕거리는 소리인지 분간이 안 갈 쯤에,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대게는 얌전히 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홉시 뉴스에서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상녕이 형의 죽음을 접한 형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다고 실어증에 걸렸던 건 아니라서, 꼭 필요한 말들, 이를테면 “배고파”라거나 “이것 좀 건네줘” 같은 말은 잘도 했다. 단지, 필요성이 결여된 말들, 그러니까 “날씨가 좋다”라거나 “이 단어 정말 울림이 좋지 않니”라는 말들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참 세상이 지랄 같다."

형이 며칠 만에 입을 연 순간, 난 형 침대에 누워 시를 읽던 중이었다. ‘김수영’을 읽고, ‘백석’으로 넘어가려 할쯤에, 형이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귓가에 맴도는 형의 울림은 '아프리카 코끼리' 마냥 이질적이었다.

"형, 드디어 말을 찾은 거야?"

"어. 근데 참 세상이 지랄 같다."

그게 한 달 만에 입을 연 형이 가장 처음 내뱉은 소리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상녕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재완아, 너도 상녕이 형이 얼마나 공부 잘하는지 알지? 그래…. 근데, 시험이 그걸 평가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아니지? 이건 코미디야….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이런 시험이 있어. SAT라고…. 뭐,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근데, 그건 일 년에 아홉 번이나 볼 수 있단 말이야. SAT가 쉽다는 말은 아냐. 근데, 이 병신 같은 나라는 고작 한 시험으로 몇 년 동안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거야. ‘존나’ 지랄 같지 않냐? 알겠냐? 이건 완전 코미디라고…. 웃을 사람도, 웃기는 사람도 없는 코미디지. 진작 없어져야할 제도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거야…. 아무 의미 없이 싸질러진 똥, 그것도 그냥 똥이 아니라 설사나 혈변, 뭐 이런 거란 말이야. 세상은 이 정도로 병신이야…. 설사 똥이 널브러져 있는데도 아무도 치울 생각을 안 해. 너도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그러는 거지. 나만 똥 밟을 수는 없다, 뭐 다들 이딴 식이야. 완전 병신 같은 상황이지…. 왜 사람들은 다 이 모양으로 살아가는 걸까?”

 

일주일 만에 입을 연 형은 중간에 “말하는 법이랑 같이 숨 쉬는 법도 잊어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토해냈다. 아마 형도 말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에 꽤나 당황한 것 같았다. 그만큼 형이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평생 동안 금욕적인 삶을 강요받던 남자가 자위(自慰)를 하는 모습처럼 맹렬했고,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그러니까, 아는 비속어라고는 ‘멍청한 자식’ 정도가 전부였던 형이 처음으로 비속어다운 비속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때 즈음이었다.

형의 말에는 묘한 리듬감이 있었다.(난 그게 형이 어릴 적부터 읽던 시들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형이 말을 할 때면, 그 모습은 마치 선캄브리아기 때부터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병신 타령'을 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암모나이트의 입을 빌려서, 또 때로는 타르보 사우르스의 입을 빌려서 내려오던 병신 타령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형이, 자신의 스텝을 놓쳤던 것도 아마 그 때쯤인 것 같다. 이를테면, 원, 투 그리고 ‘쓰리’ 대신에 ‘파이브’나 ‘앙트투와’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원, 투. 그리고 다시 앙트투와, 앙트투와.

 

형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놀라는 식구는 없었다. 물론 식구라 해봤자, 나, 형, 할머니, 그리고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엄마가 전부지만.

난 형이 말을 하는 내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엄마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불현듯, 의식이 돌아와 형의 뺨을 한대 때리고는 ‘정신 차려!’라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그만큼 형의 말은 뜬금없었고,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기대와는 달리, 여느 때처럼 방에 등을 붙인 채 얌전히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형의 ‘커밍아웃’에도 모두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가족들의 별것 아니라는 반응에, 오히려 내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다못해 칠십 평생을 형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할머니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전부였다.

"그라냐. 그라믄 니 하고 싶은대로 해라이. 암, 사람은 자고로 그래야 하는거고만."

아마 형이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던 동안, 할머니는 형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지웠던 것 같다. 형이 자신이 진학하려던 대학의 경비로 취직했다는 말을 했을 때도 할머니는 덤덤하기만 했다.

“그랴. 열심히 혀라.”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변해버린 형에게 항상 ‘그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은 속을 다 드러낸 사람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마치 ‘그랴’라는 말을 후대에 전해주어야 하는 임무와 함께 태어난 사람 같았다. 할머니는 형이 경비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그랴,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나에게 춤을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도 그랴, 심지어는 죽기 직전까지도 그랴였다.

“할머니…. 비용이 많이 들어서 화장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랴.”

할머니는 간신히 입가에 “그랴”를 걸치고는 그대로 눈을 꼭 감았다. 일주일치 입원비가 밀린 병실에서 할머니가 남겼던 것은, 쪼글쪼글한 주름살 사이로 흐른 눈물 한 방울과 고대로부터 내려온 “그랴” 뿐이었다.

 

“차차차가 매우 어렵다는 건 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틴댄스 중에 그나마 ‘차차차’가 가장 쉬울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엄연한 착각입니다. 차차차의 스텝을 따라하기는 쉽지만, 차차차를 추는 것은 단순히 스텝을 받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쁨과 환희를 발끝에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집 앞에 있던 라틴댄스 교습소 선생님은 코끝에는 빨간색 철테 안경이 간신히 매달려있었다. 형은 선생님이 발음하는 ‘스텝’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두 손을 무릎 위에 가만히 포개놓았다.

“포기할거라면, 시작도 하지 마세요. 어설프게 차차차를 추려거든, 차라리 평생 춤을 모르고 살아가세요. 차차차는 극장에서 파는 오징어처럼 값싸게 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래도 추시겠어요?”

“…어떻게 할래?”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의 말을 듣던 형이 내게 물었다. 난 가만히 선생님의 프린지 드레스를 바라보던 중이었다. 형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내가 매번 인생은 스텝을 밞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던 것 기억하니? 어쩌면 난 상녕이와 함께 내 스텝과도 작별을 고했는지도 몰라. 다만… 너만은 너의 스텝을 그대로 따라갔으면 좋겠어. 서른 즈음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진심으로 너의 스텝을 따라가.”

내가 그 때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니면 가로저었는지는 희미하게 기억날 뿐이다. 다만 어느 순간, 내 발에는 라틴 댄스 슈즈가 신겨져있었고, 난 ‘진심’으로 스텝을 따라가고 있었다.

사실 차차차는 라틴 댄스 중에서는 쉬운 축에 속한다. 우선 베이직, 뉴욕, 스팟 턴. 베이직, 핸드 투 핸드, 스팟 턴. 베이직, 숄더 투 숄더, 언더 암 턴. 그리고 쓰리 투, 차차차.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쉽게 질려버리고 마는 춤이다.

“정신 차려! 지금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다시 쓰리 투, 차차차.”

빨간 철테의 여선생님은 거울을 바라보며 연습하는 나에게 자주 정신 차리라고 말하곤 했다. 정신없이 차차차를 추다보면 나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지고는 했다. 그러다가도 스텝을 밟을 때마다 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착착착’ 소리를 들으며, 문득 내가 차차차를 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재완아. 생각을 하지 않고 춤을 춘다면, 춤을 추도록 프로그래밍 된 기계와 다를 게 있겠니? 춤도 음악이나 미술과 마찬가지야. 행위를 하는 사람이 모든 동작을 생각하지 않으면, 보는 사람도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어. 차차차는 분명 금방 배우는 춤이야. 그렇기에 자칫 잘못하면 흐트러지고 마는 거야. 스텝 한 동작 동작을 가슴으로 생각하며 다음 동작을 위해 발을 내딛어야 해. 선생님이 지금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알겠니?”

난 지금도 텅 빈 교습소에서 차차차를 추고 있던 거울 너머의 나를 기억한다. 거울 속의 난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빨간 구두를 신은 여자 아이 마냥 춤을 멈출 수 없게 돼버렸다.

 

“재완아. 파트너는 어떻게 할래? 차차차는 솔로로 추는 춤이 아니야. 여자 파트너가 있어야지.”

형의 손에 이끌려 교습소에 들어온 이후, 꽤나 오랜 시간동안 난 혼자 스텝을 연습하고 있었다. 파트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아니었지만, 주위에 마뜩한 여자 아이도 없었거니와, 진심으로 스텝을 밟는다면, 그 스텝을 따라가는 사람이 꼭 둘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저기 쟤도 파트너가 없어서 혼자 연습하는데, 어떠니? 너랑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선생님은 구석에 튀튀를 입은 채 서있던 여자 아이를 가리켰다.

“쟤가 연습하는걸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 게다가 쟨 매일 구석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까, 한 번 제대로 본적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 쟤가 혹시나 네 스텝에 거치적거릴까봐 그러는 거니?”

“…그건 아니지만….”

“한번 호흡이나 맞춰봐. 지연아, 잠깐 이리와. 재완이는 교습소 왔다 갔다 하면서 몇 번 봤지?”

지연이는 고개를 숙인 채, 튀튀를 손가락으로 툭 치고 있었다. 춤을 출 의욕이 있기는 한가 싶은 자세였다. 게다가 어떤 이유에서 인지, 지연이는 형이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을 적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연이는 내 조카인데, 아직 라틴댄스를 춰본 적이 없어. 발레는 어릴 때부터 꽤 했는데…. 인사해. 재완이는 차차차하고 있어.”

“….”

“말이 없지? 수줍어서 그래.”

“….”

선생님은 내가 교습소에 다닌 이래, 처음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몇 달이나 밀린 교습소 월세를 낼 돈이 없어도, 겨울철에 파이프가 터지는 바람에 교습소 내부가 얼음장이 되어도 의연하기만 했던 선생님이었기에, 오히려 내가 그런 선생님의 태도에 난감할 따름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연이라는 여자 아이는 입을 굳게 닫은 채, 시선을 자신이 입은 튀튀에 고정시켜둘 뿐이었다.

“안녕. 난 송재완이라고 하는데….”

“…티몬과 품바 좋아하니?”

“어… 응.”

지연이는 빤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사마귀가 변태(變態)를 시작한 번데기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도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지연이의 동공은 어두컴컴하니, 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할게요.”

“응? 지연아, 방금 뭐라고 했니?”

“라틴댄스 한다고요.”

지연이는 가만히 입 꼬리를 들어올렸다.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당시 지연이는 가벼운 자폐 증세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 극도의 경계를 띄곤 했다. 그렇기에 지연이가 나와 파트너를 하겠다고 말한 순간은, 선생님이 기억하는 가장 뜨악스러운 순간으로 남아있게 됐다.

“반가워. 내 이름은 김지연이야.”

흩어진 기억들 가운데, 지연이가 나에게 처음 웃음을 지어보였던 때를 기억한다. 미적지근해진 생활 속에서, 그 순간의 싱그러움을 기억한다.

 

“참 세상이 지랄 같다.”

다시 내 기억은 형과 술을 마시던 때로 돌아간다. 이것은 마치 회귀하는 연어의 본능과 같이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이 때문에 이따금씩 내 자신이 조각조각나버린 기억 사이를 부유하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다시 리와인드.

“제길… 내가 왜 이 짓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그 때쯤 형은 자신이 진학하려던 대학의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형이 의도한 일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형의 직장은 항상 그 대학 부근에서 맴돌고 있었다. 형은 어쩐지 트라우마를 한껏 끌어안은 삶을 자처하고 있었다.

“상녕이가 문제였던 걸까? 아님 상녕이를 만난 내가 문제였던 걸까? 씨발… 도대체 어디부터 내 삶이 꼬이기 시작한거지? 재완아, 넌 알겠니?”

여전히 알다 모를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에게 묻기 보다는, 자기가 두런두런 얘기하는 식이었다.

“형의 삶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그럼 이게 맞는 거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형 취했어. 이제 술 그만 마셔. 집에 가자.”

형은 자신의 소매를 잡아끄는 내 손을 거칠게 밀쳤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병이 시야에 들어왔다. 척 봐도 열댓병은 돼보였다.

“놔.”

내가 마신 건 겨우 한 병이었다.

“집? 식물인간 엄마가 누워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곳이 집이야?”

“그래서 지금… 엄마가 저렇게 된게 문제의 근원이라는 거야?”

“왜 자꾸 얘기의 초점을 놓쳐? 그 소리가 아니잖아.”

“제발, 형이 빙빙 돌려서 얘기하는데 지쳤어. 애초부터 나한테 차차차를 배우게 한 것도 이상했어. 인생은 스텝을 밟는 거라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냥 간단하게 본론만 말해주면 안돼?”

형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면 그 순간 형에게 필요했던 건 나의 진심어린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마신 건 소주 한 병 뿐이었을지라도 나도 꽤나 취했었고, 우리 둘 모두 서로의 속내를 여과할 여유가 없었다.

형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몇 병 더 꺼내 마시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난 ‘목포집’ 아줌마가 건네준 열쇠를 잠바 주머니에서 꺼냈다. 테이블 옆에 난로를 켜둔 탓에, 열쇠는 주머니 구석에서 미지근함을 품고 있었다. ‘목포집’의 자그마한 열쇠구멍으로 열쇠를 밀어 넣었다. 새해의 서늘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난 가만히 형의 그림자를 따라나섰다. 눈이 내린 거리에는 형과 나, 그리고 우리 둘의 발자국뿐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내 앞을 유독 어깨가 처진 그림자가 막고 섰다.

“먼저 집에 가.”

“…술 더 마시게?”

“아니. 그냥 먼저 집에 가…. 엄마 욕창(褥瘡) 생기니까, 자기 전에 뒤집어 주는 것도 잊지 말고.”

그게 형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튿날, 형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형의 부재가 일주일동안이나 지속 되고나서야 형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적게나마 벌어오던 형의 월급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렸기에, 난 다시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이전까지는 여섯 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하고 교습소에 가는 식이었다면, 형이 사라진 이후부터는 그 전에 우유배달을 추가하는 식의 삶을 살아야했다.

“우유 다 상하게 할 일 있니? 나 원, 오토바이도 못 타는 우유 배달부가 어디 있담. 넌 일손이 달려서 쓰는 대타야.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고. 그러니까 똑바로 해!”

말하자면 형이 내주는 비용으로 차차차를 추던 나는 현실을 살지 않았다. 내가 살던 것은 스텝 밟는 소리만 가득한, 그런 말도 안 되게 시시해서 오히려 깨어나기 싫은 꿈이었다. 우유 배달부 겸 신문 배달부의 삶이 대변해주는 현실은 배고팠다. 배고프다. 그것 외에는 다른 말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배고팠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았느냐는 어느 위안의 말에 ‘젖은 빵이라도 먹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식물인간 엄마가 가슴 속으로만 맞이해주는, 그게 나에게는 현실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현실 너머의 ‘진실’도 깨달았다. 형이 말해주지 않았던 탓에 몰랐던, 식물인간 엄마에게 들어가는 돈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과 걸신들린 듯이 먹는 나의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은 내가 깨달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었다. 까도까도 끝이 안 보이는 양파 마냥, 현실은 끝도 없이 가혹했고 그럴수록 난 차차차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집착. 그 때의 날 그것보다 정확하게 표현해 줄 단어는 없었다. 난 짧은 수면 시간에 집착했고, 늦은 식사에 집착했으며, 차차차에 집착했다.

“재완아, 잠깐만 나 좀 볼래?”

선생님이 날 불렀던 건 아마 내가 내뿜던 경고를 눈치 빠르게 알아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 동작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게 보여. 지연이가 호흡을 맞추면서 가르쳐주라고 했지, 누가 언제 같이 못 하라고 했니? 강하게 하는 동작이 있으면, 반대로 부드럽게 ‘놓아주’는 동작도 있는 거야. 너처럼 오래한 애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 있니?”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가 마지막이다. 나중에 병실에서 선생님이 말하기를, 한참동안 얘기를 듣기만 하던 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난, 순간 네가 미친 줄 알았어. 근데 갑자기 픽 쓰러지더라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너 그 상태로 지금까지 병실에 있었어.”

신문배달 가야 하는데…. 선생님은 그게 일주일 만에 눈을 뜬 내가 가장 처음 뱉은 말이라고 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이 흘렀다. 눈물샘을 조일 수가 없었다. 현실이 슬픈 게 아니었다. 현실 때문에 꿈에서 조차 현실을 생각하는 내 처지가 슬펐다.

“네가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 힘들 때는… 그냥 한번 시원하게 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힘들다고 불평 할수록 너만 더 힘들어져.”

“…선생님이… 선생님이 저에 대해 얼마나 아는데 그래요?”

조용히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연분홍색 봉투에서 연분홍색 편지지가 툭 쏟아져 나왔다. 마치 타이핑한 듯한 글씨체, 사라진 형의 것이었다.

“…형이 왔다 갔어요?”

“아니,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갔는데 편지가 와있더라. 상처는 숨긴다고 낫는 게 아냐. 오히려 덧나서 손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려. 아플수록, 쓰라려서 눈물을 참을 수 없을수록 드러내야만 하는 게 상처야.”

“…형이… 뭐라고 썼어요?”

“인생은 스텝인데, 자기는 스텝을 놓쳤다나 뭐라나. 그리고 꼭 네가 네 스텝을 쫓아갈 수 있도록 돌봐달라나… 나도 잘 이해는 안돼.”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게 내가 흘린 마지막 눈물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대회 참가를 제안했다.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거야. 지연이랑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 평가해볼 수 있기도 하고, 아무튼 굉장한 기회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지연이는 벌써 하겠다고 했어.”

난 누군가에게 내 춤을 평가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형은 언제까지나 진심으로 춤을 추라는 말만 해주었지, 그게 언젠가는 평가의 대상이 되리라는 얘기는 해주지 않았다.

“그 표정은 한다는 의미지? 그럼 내일부터 대회곡 연습 들어갈꺼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와.”

제멋대로였지만, 어차피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한테 동의를 구하기 이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모든 계획을 짜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대회곡은 후렴구에 ‘차차차’가 들어가는, 그야말로 차차차를 위해 작곡된 노래였다. 차차차 소리에 맞춰 ‘착착착’ 스텝을 밟아야 하다니,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만 웃어. 너무 웃으면 헤퍼 보인다고. 감점 요인이야.”

스파이럴 턴 스텝 동작에서 지연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점심에 먹은 순두부찌개의 냄새가 훅 실려 왔다.

“재완아! 웃지 말고, 쓰리 투 차차차. 지금 왜 이렇게 꾸물거려? 차차차 끝나고 바로 베이직 들어가야지. 머뭇거리지 말고! 야, 김지연! 왜 재완이 손을 죽은 낙지 마냥 잡고 있어? 좀 더 힘을 주란 말이야. 너네 둘 다 이런 식으로 대회 나갈 거야? 전국적으로 망신당할 일 있니?”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선생님의 긴장감은 극으로 치달았다. 선생님은 언제라도 달려들 기세를 유지했다. 이 때문인지, 평소 같았으면 하루에 몇 번이고 월세를 받기 위해 올라왔을 건물주 아줌마도 그 횟수를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였고, 나중 가서는 그나마도 잘 오지 않게 되었다.

히스테리컬 해진 선생님에 반해, 지연이와 난 태평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 둘은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춤을 춘 목적이 평가가 아니었기와, 둘 다 꼴찌를 한다고 해서 크게 의기소침할 성격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당시 교습소는 선생님의 히스테리와 우리 둘의 끝도 없는 태평함이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대회날, 우황청심환을 먹었던 것도, 너무 떤 탓에 개회식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도 선생님이었다. 너넨 참 속도 없다. 선생님은 아마 이런 식의 말을 내뱉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긴장 안 되니?”

“그럼 넌? 넌 긴장 안 되니?”

“연습하는 내내 안한 긴장을 갑자기 할 리가 있겠니? 잘하자.”

“그래, 잘하자.”

진심으로 스텝을 따라가. 어쩌면 그 순간, 형이 날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차차차 데 라스 세끄레따리아스, 차차차 데 라스 떼끼메까노그라피아스. 일순간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응원 소리도, 형이 했던 말들도 아득하기만 했다. 나와 지연이, 그리고 스텝. 그게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날이었다.

느낌, 지연이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발을 옮기는 그 느낌을 발 끝으로 기억해본다. 끝없이 반복되는 스텝과 스텝 사이 속에서 한없이 투명해지던 그 순간과 함께 페이드 아웃.

 

“어쩌면 아무리 열심히 스텝을 따라가도, 우리는 부자가 못 될지도 몰라.”

내가 놀러갈 때마다, 형은 자신이 일하던 대학교 근처의 찻집으로 가곤했다. 형은 항상 맛도 없는 홍차를, 난 왠지 있어 보이는 ‘우롱차’를 시켰다.

“…그럼, 왜 스텝을 따라가야 하는 건데? 다른 사람들도 다 하니까?”

“아니. 그게 바로 삶이니까. 그렇게 살도록 태어났으니까.”

 

우리에게 영화 같은 엔딩은 없었다. 우리는 일등도, 이등도 아니었다. 실망감을 안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차에, 불린 삼등이었다. 극적인 형과의 재회도, 갑자기 엄마가 의식을 회복하는 일도 없었다.

“이젠 스텝을 밟는다는 게 뭔지 좀 알 것 같아? 말 그대로 ‘어른’이 됐잖아.”

“아니. 아직… 잘 모르겠어.”

선생님은 지연이가 교습소를 물려받았으면 하는 속내를 은근하게 드러냈지만, 결국 지연이가 택한 건 가난뱅이로서의 스텝을 밟은 나였다. 좀 더 차차차를 춰도 좋았을 텐데…. 선생님은 우리 부부를 볼 때마다 아쉬움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나이가 든 선생님은 빨간 철테를, 검정 뿔테로 바꿨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변해갔다. 비록 식물인간일지라도 엄마는 눈에 띄게 늙어갔고, 나와 지연이 역시 늙어갔다.

“형, 보고 싶지 않아?”

“형을 다시 만나는게 내 스텝의 일부라면…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럼, 앞으로도 계속 스텝을 밟아야지?”

그래야겠지. 원, 투, 그리고 쓰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