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다
일은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다
  • 하동완 기자
  • 승인 2010.11.20
  • 호수 13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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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대신 일하는 장학생, 근로계약서 못 쓰는 조교

사례 1: 서울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A씨는 학생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식당에서 식자재를 옮기는 일과 음식 배분 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하루 5시간정도 일한다. 하루하루 고되지만 임금은 넉넉한 편이다.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해 쓴다. “일은 힘들지만 돈은 넉넉하게 받으니까 그거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사례 2: 대학원에 다니는 B씨는 어느 교수 밑에서 조교로 일한다. 시험지를 채점하거나 강의보조 일을 한다. 가끔은 짐을 옮기고 간단한 사무보조 일을 하는 등 교수의 잔심부름도 해야 한다. “그나마 저는 교수님을 잘 만난 편이죠 그렇지 않은 경우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현황조차 파악 안 되는 학생 비정규직
학내 아르바이트, 조교는 청소용역, 시간강사와 함께 대학비정규직의 주축을 이룬다. 하지만 김일곤<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실장은 “많은 학생들이 학내 아르바이트 혹은 근로장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실상 그들이 받는 대접은 최저 수준”이라고 전했다.

학내에서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대 박종은<기획예산처ㆍ기획평가팀> 팀장은 “학교본부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고 기관별로 각자 모집하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나 예산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 중앙대, 서강대, 성균관대 기획예산팀과 인사팀에서도 이와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때문에 학내 학생 아르바이트, 조교들이 임금을 얼마나 받고 몇 시간이나 일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통계자료가 없어 학내 학생 근로자의 현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례별 파악은 가능하다. 각 대학 홈페이지에 매일같이 공지되는 학내 아르바이트, 국가근로 장학생, 조교 모집채용 공고는 단편적으로나마 학내 학생 근로자들의 실상을 알려준다.

학내 아르바이트 시급, 제 점수는요?
서울소재 대학별 학생 근로자들의 실상을 알아본 결과 중앙대ㆍ성균관대의 임금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대학교 학칙에는 학내 국가근로장학생의 임금에 관한 부칙이 게재돼 있다. 재학생 중 가계가 곤란한 자를 선별하며 근로시간은 한 달 50시간 정도다. 시급은 4천원으로 못 박았다. 최저 임금 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학내 아르바이트 시급도 대부분 4천원대 초반으로 맞춰져 있다. 유상용<중앙대ㆍ전자전기공학부 10> 군은 “양측의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시급이 최저임금 보다 못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성균관대학교 학내 아르바이트 시급은 4천200원이다. 현행 4천110원인 최저임금 수준을 겨우 맞췄다. 대학원생 행정조교는 시급 6천원이다. 하지만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서울소재 대학들의 학내 아르바이트는 양호한 편이다. 우리학교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모두 학내 아르바이트 시급을 4천500원으로 맞췄다. 하지만 내년에 최저임금이 4천320원으로 인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지방 대학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수원대에 다니는 C씨는 “학교 안에서 모집하는 아르바이트 대부분이 일은 힘들고 임금은 적다”며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학내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지방 사립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제대, 청운대 등 많은 지방 사립대학들의 학내 아르바이트 시급은 4천원을 밑돈다.

일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장학금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일할 경우 받는 시급은 6천원에서 8천원 사이다. 적지 않은 임금에 학교 안에서 근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많은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손동환<인문대ㆍ영어영문학과 10> 군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급도 높고 일도 그리 힘들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학교 안에서 공간시간에 맞춰 할 수 도 있고 여러모로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국가근로장학  제도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한 해 국가근로장학 사업을 위해 수백여 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그 예산을 차상위계층 장학사업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가계가 곤란한 학생들에게 일을 시켜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김직수<한국 비정규 노동센터> 정책부장은 “국가근로장학생 제도는 ‘공짜는 없다’는 식의 시장주의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그 제도 아래 학생들은 복지예산 안에 포함 돼 당연히 받아야할 장학금을 대학에 노동력을 팔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학내 근로의 경우 당연히 학교에서 부담해야 하는 돈인데 그것을 국가에서 지원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전했다. 다른 장학 예산에 쓰여야 할 돈이 대학의 인건비 지원에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김 정책부장은 또 “북유럽 복지국가의 경우 공부조차도 노동으로 인정해 학생들에게 학업수당을 지원한다”며 “한 쪽에서는 공부조차도 노동으로 인정하는데 국가근로장학생, 조교들을 장학생이라는 이유로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장학생이라서 못 받는 근로자 대우
학내 대학원생 조교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과 전국대학노동조합이 2005년 국정감사에 제출한 「대학조교 실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사립대 조교 평균 연봉은 1천444만원이다. 대졸자 초임 연봉평균 1천800만원에 못 미친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원생 조교의 경우 4대 보험 적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로서 인정되지 않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연히 학교에서 일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 임에도 변변한 근로계약서 하나 쓰지 않는다. 교수가 개인적으로 일정한 형식 없이 만든 조교 서약서를 쓰고 임용된다.

김 정책부장은 “기관ㆍ개인별로 임용되고, 근로자 인정도 안 되다 보니 고용주 마음대로”라고 말했다. 조교로 일하고 있는 대학원생 D씨는 “간혹 막무가내로 부리는 교수 밑에서 일하게 되면 하인 같이 일할 때도 있다”며 “윗 분들 모시는 일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주변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에 전국대학노동조합은 “조교라는 명칭을 변경해 보조자가 아닌 근로자로서의 개념을 세워야 한다”며 “대학내 임용 규정을 구체화해 학내 근로 학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법에 따라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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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7-30 19:28:50
이 글을 읽으며 좋은 점은 학내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도 노력하며 근로를 하고 있는 열정과 노력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국가근로장학생 제도가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면에서 긍정적인 점을 느꼈습니다.

반면에 학생들의 근로조건과 시급이 공정하지 않고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경우가 있어서 안타깝고 문제로 느꼈습니다. 근로자로서의 권리와 보호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대학 생활의 어려움과 대학 근로자들의 실상을 알게 되어, 이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대학 근로자들의 권익을 존중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