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기사는 쓰기 싫습니다
똑같은 기사는 쓰기 싫습니다
  • 김규범 편집국장
  • 승인 2010.11.13
  • 호수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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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서 보도를 사전에 준비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신속한 보도를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고 완성 본을 만들기도 합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이런 준비를 했었다고 합니다. 고인의 죽음을 예견해서 조금 씁쓸하지만 당시 워낙 고령이셨고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 지셨으니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요. 온 국민이 슬퍼했던 일을 허둥대지 않고 보도할 수 있었으며 고인을 기릴 수 있었으니 한편으론 보도 준비가 더 적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성 언론만이 아니라 대학 언론에서도 존재합니다. 한대신문에서는 이를 ‘달력기사’라고 부릅니다. 마치 달력처럼 1년 주기로 비슷한 시기에 반복되는 일들을 보도하는 기사를 칭합니다. 주로 입학ㆍ졸업식 같은 학사 일정 관련 기사가 이에 해당합니다. 곧 있을 총학생회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발 변수가 없는 이상 반드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사전 보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달력기사를 준비하더라도 매년 기사의 방향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해마다 조금씩 모습이 변하니까요. 예상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지금껏 해왔던 준비가 모두 엎어지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럴 때마다 실망하곤 하지만 때론 ‘부디 엎어지면 좋겠다’라고 되뇌며 준비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등록금 투쟁 기사입니다. 열심히 등록금 투쟁하시는 분들께서는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습니다. 허나 현재 대학의 등록금 투쟁은 일정한 패턴을 띄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기사들을 보면 투쟁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나 이에 대응하는 학교 측의 답변은 마치 복사를 한 것처럼 비슷합니다.

왜 일까요. 대체 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해마다 투쟁하는 학생들과 학교 당국은 물론이고 사회도 변하는데 등록금 투쟁은 여전합니다. 혹시 시스템의 문제는 아닐까요. 등록금을 비롯한 학교 예산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에 어떤 결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등록금이 언제 책정되는지 아시나요. 바로 연말입니다. 총학생회 선거와 인수인계로 정신없는 때에 추경예산이 책정되기 시작합니다. 즉 본격적인 등록금 협의가 시작될 때 총학생회는 이를 준비할 여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어느 정도 예산안이 확정되고 등록금이 책정될 때 시작하는 협의는 그저 절차를 위한 절차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생총회 개최 등 본격적인 등록금 투쟁을 실시하는 시기는 3월입니다. 이미 대다수 학생들이 등록을 마친 상태인데 이 때 투쟁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리 없습니다.

이젠 바꿔야 합니다. 학교의 회계 일정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 학생들이라도 바뀌어야 합니다. 학생회칙 개정을 해서라도 등록금 협의를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합니다. 우선 총학생회의 선거일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일정은 이미 정해졌지만 내년 선거부터는 선거일정을 바꿔 등록금 협의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 등록금 협의를 위한 상설기구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모든 학생회는 총학생회에 맞춰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울캠퍼스의 교육대책위원회처럼 총학생회와 별개로 운영하는 기구도 있지만 등록금 투쟁은 본래 총학생회에서 전담했던 터라 활동에 제약이 있던 점도 사실입니다. 지금보다 더 독립적인 등록금 관련 학생 기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제 곧 선거가 시작되고 차기 총학생회가 선출되겠지요. 당장 닥친 등록금 투쟁보다 등록금 협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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