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외치는 삶의 소리
대학로에서 외치는 삶의 소리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0.10.30
  • 호수 1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극장에서 곱씹어보는 연극의 추억

한 블록 한 블록 거닐 때마다 새로운 소극장들을 만난다. 그 주변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혜화역 주변에선 극단 관계자들이 관객들을 조금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고 있다. ‘공연문화지도’까지 따로 있을 정도로 혜화역 주변 대학로는 공연 문화가 활성화돼있다. 얼마 전 서울시는 제5회 서울 연극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학로를 연극 특구로 선언하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대체 문화가 유입됐지만 대학로는 여전히 연극과 소극장들의 메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시간의 빈자리를 채우며 생긴 곳

과거 성균관이 입지해있던 혜화-명륜동 일대는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고 이후 서울대학교로 명칭이 변경되며 대학과 관련성 깊은 지역으로서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서울대학교의 빈자리가 쇠퇴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주변 지역에는 여러 공간적 변화가 일어난다.

논문 「문화 관광거리 대학로의 장소마케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로는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보다는 정책적 차원에서 생겨났다.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고 종로구청은 혜화동 부근 1km 가량의 길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한다. 이에 따라 대학로는 마로니에 공원 앞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각종 공연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다음은 1981년 10월 1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다.

『대학촌은 이제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원과 미술회관, 문예회관이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가 된 것. 문예회관에서는 대한민국 연극제 등을 비롯, 수준 높은 연극을 연중 계속 선보이고 있고…(후략)』

공연기획사 ‘아티스탄’의 윤지원 팀장은 “대학로 공연 성행의 기폭제가 된 문예회관(현 아르코 예술극장)이 들어섬과 함께 대학로의 연극은 대학생들의 공연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권용<예술학부ㆍ연극학전공> 교수 또한 “대학생들의 접근성이 좋았던 대학로는 단일 극장의 집합소로서는 국내 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홍대를 비롯한 신촌 주변에 분포돼있던 연극단들이 점차 대학로로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드시 대학로여야만 했던 이유

일반적으로 299석 이하를 소극장, 300석에서 999석 사이를 중극장, 1000석 이상을 대극장이라 부른다. 대학로에서 중극장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고 대극장은 한 곳도 없다. 즉 대학로는 소극장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이 애초부터 극장이 아닌 창고, 카페 등의 형태로 지어진 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낮은 천장과 상연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내부 구조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특성은 약점이 아닌 대학로만의 문화로 특화됐다. 우선 좁은 공간과 적은 관객 수로 인해 관객들의 현장감이 극대화된다. 윤 팀장은 “공연을 하는 배우들의 미세한 숨소리마저 웃음 코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소극장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온 한 관객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좁은 공간에서의 현장감 넘치는 공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더불어 윤 팀장은 “상연 활동의 영세함이 연극 제작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제약을 벗어나기 위한 제작자들의 창의력이 참신한 공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며 대학로 특유의 공연 인프라가 개성 있는 연극 상연의 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2007년 이후 대학로의 극장 개수는 100개를 초과했고 현재는 160여 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극장 수의 증가는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서울 연극협회 남기웅 사무국장은 “일부 낮은 수준의 극이 범람해 극장에 대한 수요가 늘긴 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연극으로부터 관객을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됐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이는 미비한 연극 문화 기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권용<예술학부ㆍ연극학전공> 교수는 “우리나라의 근대적 연극 형태는 일본의 신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이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 연극 문화는 자체적인 제작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며 “연극을 예술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오락물로 여기는 세태와 이런 관객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해 제작되는 연극 자체의 문제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권 교수는 “점점 흥미만을 추구하는 연극이 주를 이루게 되는 것이 최근 연극계의 아쉬운 사정”이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연극이 살아남는다

대학로 연극이 작품성보다 상업성을 중요시 하게 된 사례로 ‘스타 마케팅 시스템’이 있다. 최근 대학로 연극의 ‘스타 마케팅’은 침체된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종종 ‘스타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는 연극은 호응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 최근 스타연예인들과 그렇지 않은 배우를 더블캐스팅 해 상연한 연극들이 그런 문제를 겪는다. 스타연예인의 공연 날에는 전석이 매진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배우의 공연 때에는 표를 잘못 구매한 관객이 환불 요구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부 관객들도 이런 상황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아마추어 연극 동호회 ‘엔씨어터’의 운영자 임지숙<서울시ㆍ양천구 29> 씨는 “최근 대학로 연극이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공연문화의 정착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을 지닌 큰 극단에 비해 홍보 등의 체계가 열악한 작은 극단들이 살아남기가 어려워지고 이는 곧 여러 실험적인 극의 출현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동호회를 통해 극을 창작하며 이런 아쉬움을 해소한다는 임 씨는 “대중을 끌어들인 큰 극단들은 대중이 원하는 바를 실현해야만 하는 실정인 게 사실”이라면서도 “결과적으로 흥미 요소만 부각돼 연극계 전체적인 질적 저하가 우려되는 게 요즘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학로 연극의 실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 추구를 통해 이슈가 된 연극이 있다.

연극연출가로 유명한 오태석<서울예대ㆍ공연창작학부> 교수의 「만파식적」, 신예 연출가인 서재형 연출가의「죽도록 달린다」는 완성도 높은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연극 「만파식적」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 남북의 뿌리 깊은 대립은 물론 남한 사회 내에서의 갈등을 오 교수 특유의 고전적 요소와 함께 해석해냈다. 각종 음향 효과는 물론 말 그대로 죽도록 몰아치듯 달리는 시각 효과를 보여주는 연극 「죽도록 달린다」 역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많은 호응을 얻었다.

청춘의 모습을 드러내는 흐름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연극 「청춘 18대 1」은 일제 강점기 일본 고관들을 테러하려는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청춘들의 이야기다. 댄스파티에서 춤이 완성되어갈 수록 이들의 명은 재촉되지만 청춘이라는 상징적 은유를 통해 삶의 절실함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의 대학로 연극은 대학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학생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으나 「청춘 18대 1」과 같은 청춘 연극은 물론 ‘젊은 연극제’ 등 대학생 연극 행사의 명맥을 유지하며 이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이뤄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