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패막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방패막이가 아닙니다
  • 김규범 편집국장
  • 승인 2010.10.09
  • 호수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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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문화 가정을 다루는 TV프로그램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외국에서 온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을 봅니다. 며느리가 서툰 한국말로 흥정을 하자 이를 보고 시어머니가 ‘우리보다 흥정을 잘해요’라고 말합니다. 고부간에 흐뭇한 한때를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장면입니다. 과연 시어머니가 말한 ‘우리’란 누구였을까요. 문맥상 촬영 중이며 한국인이었을 VJ와 자신을 뜻하는 말이었겠지요. 흥정을 잘하던 며느리를 타자화 한 말이었습니다. 물론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 사랑이 극진한 분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가장 큰 힘을 이 ‘우리’라는 단어로 꼽는다면 과장일까요.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라가 흔들릴 때 한국을 지탱해준 힘은 언제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나 금융위기 등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우리’를 지켜온 국민들의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단어인 ‘우리’라는 말이지만 이를 방패막이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편을 가르고 책임을 떠넘길 때 흔히들 ‘우리’를 씁니다. 자신의 잘못인데 이를 공동체의 책임으로 묶어 자신의 책임을 줄이는 행위입니다. 지난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 그 같은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작 책임이 있는 쪽은 조용하고 국민들이 나서서 피해복구에 열을 올렸지요. 요즘 우리학교에서도 그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전학대회가 파행 뒤 열린 중운위의 회의록에 따르면 총학생회에 전학대회 파행에 대한 책임 추궁이 또다시 이어집니다. ‘우리’는 잘못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총학생회, 분명 잘못 했습니다. 여타 회장님들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플랜카드 하나 내걸고 그 이상 전학대회 홍보를 하지 않았지요. 마땅히 사과문을 내걸어야 할 만큼 아주 큰일입니다.

그동안 회장님들께서는 무얼 하셨습니까. 총학이 조그만 플랜카드라도 내걸 때 여러분이 하신 일은 무엇이 있는지 답변해주세요. 혹시 전학대회는 총학의 주관이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그럼 그 자리에 참석하시는 여러 회장님들께서는 손님인가요.

전학대회 추진은 중운위에서 결정한 사항입니다. 대회 개최 일자, 장소부터 논의할 안건들까지 모두 중운위의 동의를 구한 뒤 열리는 게 전학대회입니다. 그 자리에서 결정된 방안이 바로 여러분이 질타하시던 그 조그만 플랜카드일 겁니다. 설마 아예 논의를 안 하신건 아니시겠지요. 이미 여러 번 전학대회 무산을 겪으신 회장님들께서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습니다. 학생회가 아닌 언론사에 있는 제가 봐도 예상되는 위기상황인데 대처할 방법을 제기하지 않으셨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백번 양보해서 1차 전학대회 준비 중운위에서는 홍보방법을 미처 논의 못할 수 있습니다. 큰일을 하다보면 어떤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까요. 그럼 2차 전학대회 준비 기간에는 어떤 논의를 하셨습니까. 회장님들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공지를 하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떳떳하시다면 당당히 전학대회 성원의 명단을 공개해서 각 단대별 출석률을 알려주세요. 과연 회장님들께서는 그 작은 플랜카드가 아닌 어떤 방법으로 공지를 했는지 그 결과를 한번 봐야겠습니다. 회장님들께서 ‘우리’라는 표현을 써야 할 때는 책임을 발뺌할 때가 아니라 사과문을 쓰실 때입니다. 총학은 이미 확운위 이후 사과문을 발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사과문에 회장님들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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