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9.20
  • 호수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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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학생들의 연구실 방문이 잦다. 요즘 방문은 무겁고 진지하다. 찾아오는 4학년들 의 손에 자기소개서가 들려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써놓은 내용을 점검 받고 싶은 모양이다. 외국어 공인점수는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하는지 어학연수는 필수이고 해외봉사 실적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늘 갖추어야 할 조건에 쫓기게 된다. 학생이 들고 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뒤에 잔뜩 붙어 있는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을 읽어보다가 그의 쫓기듯 달려왔을 대학시절이 문득 안타까워졌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학교에서 과제와 팀 프로젝트로 밤샘을 하면서 집안 사정으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던 그 학생들의 일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안다고 했는데, 외국어 점수와 각종 자격증은 물론 국내외 봉사활동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는 그의 자기소개서에는 정작 보여야할 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원 끝날 시간이면 부모들은 길가에 차를 대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자정이 다되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좀처럼 내일을 보기 어렵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속에서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대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그 경쟁을 내려놓으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무모한 일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일을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끝없는 스펙 경쟁에 내몰리는 대학생이나 실체를 알 수 없는 경쟁 안에서 갈수록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아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자기가 없는 자기 소개서와 내적 성장 없는 학습으로 우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그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과 부모의 조언보다는 아이폰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어플리케이션이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된 ‘지금 이곳’에서 우린 과연 진정한 삶의 자세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교육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행복에 다가설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편일률적인 언론사의 대학 평가 기준에 우리가 얼마나 부합하며 몇 위가 되는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다. 입학생 대비 재학생 비율이 평가 기준이 될 것이 아니라 그 학교 졸업생의 윤리의식이나 봉사정신 등이 평가의 기준이 되면 안되는 것일까? 우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언론사의 비교육적이며 폭력적인 평가기준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평가기준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더 나아가 세계 대학을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자기소개서 한 장에서 그 학생만의 차별성이 보이고 밤늦은 시간 학원이 아니라 각자의 자기 만들기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교육에서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은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일이 더욱 풍요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좀 더 알찬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가 변화다. 진정한 교육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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