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한대신문 문예상 가작상
제38회 한대신문 문예상 가작상
  • 취재부
  • 승인 2005.12.06
  • 호수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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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잿빛 담장

                                                               김인숙<교육대학원 국어교육 04>

 1.
 호진은 뚜걱뚜걱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어....... 4번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요?"
 그녀는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다, 입구 쪽 책상 앞으로 다가가 첫마디를 내뱉었다. 곁방살이하는 아낙처럼 약간의 아부와 주눅이 묻어 있는 어투였다. 딴에는 강단 있게 한 마디 던진다고 힘을 주었음인지, 말을 뱉을 때 그녀의 이마에 약한 힘줄이 들어섰다 이내 사라졌다. 눈부신 하얀 빛살이 맞은편 창문을 그대로 통과해 교무실을 속속들이 비추고 있었다.
 출입구 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남자가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땀 때문인지 몰라도 그리 세련되지 않게 찍어 바른 파운데이션이 지저분하게 번들거리고 있는 호진의 얼굴이 보였다. 남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재미없는 사람과 함께 지낼 때 발생하는 따분함을 호진에게서 맛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갑자기 몰려온 지루함 같은 것이었다.
 남자는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한 듯 하품을 씩 했다. 그리고선 대책 없이 쩍 벌어졌던 입을 틀어막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계산하지 못했던 행동이 한 순간 쏟아져 나온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호진은 난처하고 불쾌한 듯 얼굴을 붉혔다. 도대체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다. 남자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겸연쩍은 웃음을 어색하게 지어 보였다.   게다가 자신의 평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시선을 끊어버리려는 듯 다급하게 대답을 들이대었다.
 “아, 저 쪽 창가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자리가 빈 것 같은데요….”
 경솔한 행동에 비해 꽤나 세련된 어투였다. 어쩌나 하는 어감까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비루하고 천한 느낌이 든다고 호진은 생각했다. 사회 생활에 닳고닳은, 게다가 삶의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의 세련됨은 이끌리는 만큼 다가갈 수 없는 냉정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불결했다.
 기계처럼 꾸벅 인사를 한 호진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장승처럼 서 있는 목련 나무에 꽃봉오리가 볼쑥볼쑥 올라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참새 서너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포릉포릉 날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불안하게 뒤뚱거리고 있었다. 똑바로 걷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듯했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고 있지 않은 듯한, 어딘가 허둥대는 걸음걸이였다. 남자의 무례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호진은 이미 남자를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드디어 창가에 도착했다. 햇살이 자욱하게 내려앉아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낯빛은 아주 딱할 정도로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어머, 어디 편찮으세요?”
 누군가가 근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아, 아뇨. 그냥 성격이 좀 그렇고 그래서….”
 “네에..... 편하게 생각하세요. 근데 박 선생님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인데, 좀 기다릴 수 있겠어요?”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는 쪽을 바라보며 호진은 말을 주고받았다. 갈색이 돌 듯 말 듯 염색을 한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십 대 후반쯤 돼 보이는 여자가 그 곳에 앉아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네의 컴퓨터에는 반채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 저기 배회하듯 두리번거리는 호진을, 그녀는 한참 동안 쳐다보기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그녀는 길거리 행인에게 길을 안내하듯 그렇게 몇 마디 툭 뱉고 나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하던 뜨개질을 계속했다. 그녀와 호진은 거울 속 풍경처럼 근접할 수 없는 거리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 붙박혀 있는 듯했다. 그네들 사이를 꽉 메우고 있는 것은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은 햇살뿐이었다. 따사롭지만 나른한 봄볕이 소복소복 쌓여 있었다.

 
2.
 호진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불안이 뒤섞인 그녀의 작은 눈알이 좌우로 왔다갔다했다. 다닥다닥 붙은 책상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게다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벽 여기저기 칠판과 게시판 그리고 장식들이 낡은 무늬처럼 얼룩덜룩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면밀히 살피려는 듯 미간을 좁혀 낱낱이 훑었다. 역시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경험한 듯도 한 낯섦이었다. 부단히 적응하려 했지만 결국은 적응할 수 없었던 곳에서의 경험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곳은 왜 그렇게 나를 주눅들게 했을까. 무서워 찍 소리를 낼 수도, 고갤 들 수도 없었던......불안했으.......나는 정말 옴짝달짝 할 수 없어.... 아,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 자리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는 일이야...... 그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호진의 얼굴은 식은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금니를 꾹 물었다. 화장과 땀이 범벅 돼 약간은 부담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 아가씨들이 으레 갖고 있을 매력은 눈곱 찌꺼기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외형이었다. 그런 그녀는 이십 대 같기도 했고 삼, 사십 대 같기도 한,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나이로 보였다. 섬세하지 못한, 그리고 감각적인 것을 밝히는 남자라면 충분하게 얕잡아 볼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박 선생님, 이 번에 맡은 교생 나이가 꽤 있나보던데, 봤어요?
 낮은 음성이 호진의 시간 속으로 슬쩍 비집고 들었다.
 그녀에게 자리를 가르쳐 줬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소리나는 쪽으로 호진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을 때, 남자가 턱짓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박 선생에게 쑥덕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근데, 왜요? 뭐 특수 취급이라도 해야되는 교생인가요?
 뭐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하지만 어쩐지 어딘가 좀….
 남자가 난처해진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곤 뭔가 못마땅한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박 선생은 넙데데한 남자의 상판을 별 의식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맑고 선량했으며 순수해 보였다. 그는 마음씨 좋게 미소를 머금은 채 호진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때까지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듯한 시선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교생이시죠?”
 박 선생의 물음에 호진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아, 안녕하세요? 이호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낯선 어른 앞에 선 아이처럼 약간 경계를 하며 박 선생에게 답례했다. 긴장을 했음인지 그녀의 목청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매 순간 맞닥뜨리며 살아야 하는 단순하고도 일률적인 일을 처리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반응이었다. 호진은 아직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박 선생이 그녀에게 모교 출신이냐는 질문을 건조한 톤으로 내뱉었다. 그러자 호진의 얼굴빛이 어둡게 변했다.
 그 순간 먹구름 덩어리 같은 매연이 뭉게뭉게 밤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잿빛 모자를 쓴 많은 사람들이 소녀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심한 이방인처럼 보였다. 어여, 엄마인데 순대 사서 면회 오라 캐야겠다. 집에서 사 먹던 순대 생각이 간절했던 명자는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처럼 쫑알거리며 걷고 있었다. 순대, 떡볶이, 핫도그가 먹고 싶다고 손가락을 꼽던 명자.
 “모교 출신인가요?”
 박 선생이 재차 물음을 던졌다.
 “아, 아뇨.... 다른 지역에서 다녔습니다.”
 호진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말을 더듬으며 어물쩍 대답했다. 머릿속에는 과거의 영상이 밀물처럼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저승처럼 낯설었던 곳. 사방은 온통 회색 벽뿐이었지. 군데군데 난 창문이 쇠창살과 비닐로 밀봉돼 있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곤 했더랬어. 윙윙 칼날 돌아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던 곳.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곳이었어.’
 아, 박 선생님 오셨군요. 아까부터 교생 선생님이 기다리시던데….
 반채영의 목소리. 그리고 뭔가를 귓속말하듯 수군거렸다.
 손님이 찾아와서 말입니다.
 박 선생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호진은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멋모르고 철없는 아이처럼 박 선생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어디서 본 적은 없었을까 하는 눈빛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는 검은 뿔테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삼십 대 후반 같았고, 또 어찌 보면 불혹을 가까스로 넘긴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어딘가 쑥스러워하는 듯도 했고, 꼭 그렇지만 않은 듯도 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회탈 같은 상이었다. 그 모습은 아직도 동정을 가진 숫총각 같기도 했고, 바람기 있는 유부남 같기도 했으며, 뭔가 좋은 일을 앞 둔 사람 같기도 했다. 촉을 갓 내밀기 시작한 고구마 싹처럼 얼굴을 붉히는 그에게는, 파손되지 않은 순수함이 떡고물처럼 살짝 살짝 붙어 있었다. 그러해서 성인치고는 꽤나 부드럽고 유연한 이미지를 풍겼다.
 그녀는 자기 몸에서 빠져나갔을, 도둑맞은 순수를 생각하며 넋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혹 어디 불편하세요?
 다시 박 선생의 목소리.
 아, 아뇨. 그냥 첫날이라 좀 긴장을 해서요.
 그녀는 평범해지려고 무지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결코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뭔가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경조사서 좀 주실 수 있는지요?”
 라고 각도를 돌려 말을 이을 때, 호진의 목소리는 분명했고 명쾌했다. 얼굴에는 비로소 혈색이 돌고 있었다. 죽음의 구덩이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처럼 안도의 빛이 얼굴 전면에 번지고 있었던 것이다.
 “혹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리고 그건 월요일 드릴게요. 수련회 기간 동안 해야할 것도 좀 있고요.”
 그는 학생들을 이끌고 수련회를 떠나야 했다. 박 선생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학생들을 파악하려는 심사에서 호진이 환경 조사서를 요청하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캐비넷 정리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무를 처리하며 쪽팔려 명찰 달기 싫다는 실업계 학생들과 같이 지냈던 한 달이 불현듯 머릿속을 헤집고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가졌던 교육에 대한 신념이라든가 열정은 고목 나무에 붙은 곰팡이처럼 헤식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젊은 시절이면 으레 갖기 마련인 꿈이나 열정을 이제는 회한 속에서 떠올리는 나이가 되었다고 박 선생은 생각했다. 이런 박 선생을 호진은 직장 상사처럼 응시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까지 들통 나 괜히 촌스러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리적 불안감까지 안고 있었다.
 “네….”
 그녀는 간신히 대답한 후 엉거주춤 돌아섰다.


3.
 뒷자리에는 반채영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책상 위로 실 한 올이 일상을 깨뜨리는 비수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호진은 어딘가에 홀린 듯한 시선으로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반채영이 의무감에 짓눌린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참, 교생 선생님, 아까 그 ‘4번 선생님’이란 말 있잖아요. 그건 ‘4번’이 아니라 ‘4반’이에요. 여긴 학교잖아요.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머물렀다. 처음부터 호진을 쭉 지켜보기라도 했다는 의미를 지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마네킹을 연상시키는 생명이 없는 허한 미소였다.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던 호진은, 자신이 뱉었던 ‘4번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아, 맞아!”하는 표정으로 떠올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하기 그지없는 표현이었다. ‘4번 선생’이라니!

 4번. 청량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식당에서 써빙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단란주점에서 일했던 미옥이라는 아가씨와 안면을 트고 지냈었다. 일터에서 생기는 일을 그녀에게 푸념하면 마음이 얄궂을 정도로 후련해지곤 했었다. 그런 미옥이 빚에 떠밀려 청량리로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 호진이 그녀를 찾아갔던 것은 불과 3년 전이었다.
 대학을 둘러싼 담벼락 안쪽과 바깥쪽을 동시에 서성이며 학업과 학비를 감당하고 있을 때였다. 한 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생활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 쪽에는 평화와 휴식뿐만 아니라 고상한 품위와 견고한 권위의 결정체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쪽에는 매 순간 악다구니가 들끓고, 메마른 톱밥냄새가 염치없이 풀풀 풍기고 있었으며, 정밀하게 유지되고 있는 권위 앞에서 비실비실 쓰러지는 허약한 수수깡 병정들이 뜨내기들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움푹 패인 땅덩어리였다. 안과 밖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두 개의 나라였으며, 도저히 밀어붙일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 강압적인 힘이 잿빛 담장이 돼 그 사이에 떠억 버티고 서 있는 듯 했다. 그 정체는 왕조시대 신분 질서를 가름하는 족보와 약삭빠르고 민첩한 사람들이 혼란기를 틈타 재빠르게 얻어 걸친 자본을 발판으로 쌓아올린 허황된 지식의 담장 같은 것이기도 했다. 절대로 깨어질 것 같지 않은 그 담장은 호진에게 엄청난 공포감과 절망감을 안겨주곤 했었다. 어쩌면 세상은 두 개의 나라뿐만 아니라 스펙트럼처럼 층층이 분산돼 있고, 그 통로는 허위과 위선으로 막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미옥이라도 곁에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었다. 아랫배를 가득 채운 가스를 뿜어내지 않는다면 소화불능의 골이 깊어져 마침내 큰 병을 얻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진도 삶의 배설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또, 젊음을 담보로 삶을 도박하지 않았다면, 미옥처럼 생존의 바닥에서 허덕였을 수도 있었다는 끔찍한 생각이 이따금씩 들기도 했을 때라서, 호진은 자신이 거머쥔 패가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반드시 확인 받고 싶기도 했다. 허약한 허영심이 일상에 꽉 차 있었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그 시점에 그녀가 미옥을 찾아갔을 때,     
 “야, 4번! 너 동성애하냐? 누가 찾아왔어!”
 라고 앞가슴을 훤하게 드러낸 여자가 쪽문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자 정성껏 화장을 한 미옥이 “동성애라니?”라고 반문하며 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미옥’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통하지만, ‘4번’으로도 통했던 모양이었다.
 속눈썹 가닥가닥 마스카라를 칠한 미옥이 개개풀린 눈알을 말똥거리며 벌레 씹은 사람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호진을 쳐다보았다.
 “난 또 누가 왔나 했네! 그래, 학삐리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웬일이셔?”
 그녀는 귀찮다는 듯 하품을 씩 해대며 용케도 자신을 찾았다는 투로 한 마디 찍 뱉어냈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발바닥 떨어져라 국수를 날라대는 그녀를 ‘학삐리’라고 조소하던 미옥은 갈 곳이 없었다. 고작 다른 룸살롱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게 이동반경의 전부였다.    더 이상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도 실상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힘도 의지도 꿈도 희망도 새로움도 없는 공간에서 이름도 모르는 남정네의 정액을 받아내며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삶의 피상적인 측면에서는 자신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호진을, 미옥은 가까이 두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안다는 옛말이 틀린 것은 아닌 모양인지, 호진은 그런 미옥의 마음을 손금 보듯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냐?”
 그녀는 늘 그랬듯이 동문서답 식의 대꾸를 자연스럽게 뱉었다.
 “왜? 그대도 오늘부로 취직하려고? 가만 보니 몸피에 살집도 없겠다, 한 번 붙으면 사죽 못 쓸 놈팽이들이 득실거리겠어. 어디 한 번 해 보시려우? 내 삼춘이나 왕언니인데 말씀 올려주랴?”
 미옥이 눈도 깜짝 않고 입을 움직여대는 통에 호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닥에서 나뒹굴어도 나름의 체면과 교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미옥이 자신의 그런 노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말을 씹어 뱉는 통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탓이었다.
 호진의 등허리가 촉촉하게 젖어왔다. 적어도 나는 너와는 다르다구, 라는 말이 구역질처럼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삼킨 채 호진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꾸역꾸역 말을 받아냈다.
 “........농담두. 나 원 참.”
 “농담두? 농담 좋아하고 자빠졌네. 왜 이런 일 하는 사람은 마빡에다 방이라도 써 붙여 놓고 산다던? 밑구녕에다 도금칠이라도 해 놔 닳지를 않는다던?”
  이십 대 중반을 가까스로 들어섰을 미옥의 말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단란 주점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배배꼬이진 않았었다. 
 호진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오빠, 놀다 가. 놀러 온 거 아냐? 내 잘해 줄게. 응?
 그때 한 여자의 애띤 목소리가 침묵 사이를 가르고 들려왔다. 침묵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짧은 순간 주변의 어둠을 껴안았다.
 “에이, 개똥같으니라구. 이 나란 정말 미쳤어!”
 호진이 침묵을 깨며 뇌까렸다.
 그녀는 대학 안을 생각했던 것이다. 울창한 숲 속 곳곳에 들어선 건물은 우람했고, 그 앞으로 새들이 날아다녔고 꽃이 철마다 피었다 졌다. 이 곳 저 곳에는 젊은 남녀가 마주 앉아 사랑을 속삭이며 청춘을 고민했고, 책갈피를 넘기며 자신들이 비집고 들 미래를 생각했다.    언젠가는 허망하게 흩어질지라도 아직은 깨지지 않은 그들의 꿈은 젊음이고 한 나라의 비전이었다. 그들은 모두 축복 받은 청춘이었다. 그래서 정교한 질서만큼이나 아름답고 눈 부셨다.
 호진은 강의실 뒤쪽에 앉아서 젊은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는 행복에 겨워 까무러칠 듯한 표정으로 강의에 열중이었다. 고통이나 고뇌의 그림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얼굴이었다. 분명 삶의 오르가즘을 맛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강의 내용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다만 젊은 총각 앞에 선 처녀처럼 가슴이 설레는 것 같기도 했고 형편없이 쪼그라드는 것 같기도 한, 어처구니없게도 난처한 감정이 앞을 가로막곤 했을 뿐이었다.
 ‘저이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다면…. 만약 내가 저이와 사랑이란 걸 하게 된다면….’
 호진의 얼굴이 붉어지며 정신이 흐물흐물해졌다. 교수는 갓난아기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언어의 구조를 설명했다. 그녀는 몸까지 노곤해졌다. 맨 앞줄에는 세 명의 여대생이 다소곳이 앉아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네들은 모범생 같기도 했고 거대한 지식의 힘 앞에 합리적으로 굴복한, 그래서 더욱 비굴한 창녀 같기도 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도 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존경’으로 은폐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네들은,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창녀촌으로 찾아드는 남정네의 돈주머니를 미끼로 생활의 출구를 꿈꾸는 미옥처럼, 그를 발판으로 보다 괜찮은 자리에 비집고 들 삶의 안정을 꿈꾸고 있을 뿐이었다.
 호진에게도 그의 모습은 삶의 요람처럼 평온했고 지상에서 가장 안락한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심어주었다. 그와의 사랑을 통해 귀족이 될 수만 있다면 미옥처럼 눈웃음을 흘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한 명문대 학생과, 그것도 미인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캠퍼스에 풍운처럼 떠돌고 있을 무렵이었다.
 호진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화장 떡칠 해 교수 앞에 앉아 게슴츠레한 눈웃음 흘리며 왈츠 출 줄 안다고 까발리는 년들 사이에서, 언어가 어떻고 문학이 저떻고 해쌌는 강의 듣자마자 기저귀 벗어 던지기가 바쁘게 원어민 스피치로 고물고물 잼잼 해제끼는 집구석으로 헐레벌떡 달려가 침 튀겨가며 과외 하다 보니, 나는 왜 그런지 니 생각이 다 나더라. 야, 니나 나나 그렇고 그런 집구석에 태어나 별 볼일 없는 학교 나와 사는 삶이 종신형이지 어디 가겄냐? 그러니 너무 박대하지마.......”
 호진의 목청에는 물기가 배어 있었다.
 “......”
 “근데, 너 지금 내가 씨부려대는 단얼 알아듣기라도 하냐? 엉?” 
 그녀는 적수라도 만난 듯 되는대로 지껄여대고 있었다. 이젠 눈알까지 벌겋게 충혈 돼 있었다. 그리곤 멍하니 앉아 있는 미옥과 찻집이라도 가서 막힌 체증을 끝까지 풀어내고 싶다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담인가, 왕언닌가 하는 사람이 “장사 할 준비 안 하냐?”고 냅다 소리를 지르니까 미옥이 그녀를 어거지로 떠밀다시피 쫓아냈던 것이다. 수갑 찬 죄수가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호진은 순간적으로 미옥에게서 받았다. 아니 젊은 교수의 합리적 권위와 자본의 손아귀 안에서 정신없이 놀아나야 하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처절한 아픔이었다.
 떠밀려 나오는 호진을 향해 미옥은 한 마디 더 뱉어냈다.
 “하룻밤 정분 사이도 아닌데 찾아오고 지랄이야!”
 

4.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순대를 정신없이 먹어대는 명자. 소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 그러다 그네의 어머니께 묻는다. 저어, 아, 아주머니, 바깥은 좋나요?   하지만 물음은 소리를 만들지 못한 채 입안에서 뭉그러졌다. 그네의 어머니는 허겁지겁 순대를 먹어대는 명자의 모습만 묵묵히 바라보며 “아이구마. 걸신들린 거 맹키로 먹어쌌는데이.”라고 말하며 눈물만 글썽인다. 눈물 한 방울이 쪼글쪼글 주름진 그네 어머니의 손등으로 똑 떨어진다. 짧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면회 시간이 끝났다. 그러자 명자가 눈덩이를 붉히며 훌쩍인다. “쉬는 날 집에 올 수 있제? 마음 단단히 묵고 살고….” 그네의 어머니가 마지막 말을 남기며 일어선다. 치맛자락이 찬바람에 섞여 서그럭 소리를 낸다. 소녀가 덜덜 떨며 그 옷자락을 눈길로 잡는다. 옷섶에 파리처럼 찰싹 붙어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 탓이다. 주변은 온통 회색 담장으로 꽉 둘러 싸여 있다. 소녀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지 못한다. 바깥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바깥은 어떤 곳일까.

 담장 바깥은 일상의 피곤과 우울이 변태와 탈피를 거쳐 나방이 돼 훨훨 날아갈 수 있는 평원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의 편린이 진눈깨비 내리는 청량리 거리를 질펄질퍽 적시고 있었다.  
 거리의 바람은 거셌다. 우산도 쓰지 않은 호진의 머리와 어깨 위로 궂은 겨울비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미옥을 찾아가지 못했다. 틈틈이 생각은 했었지만, 그녀의 말버릇처럼 정분을 준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럭저럭 생활 속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그 사이 청량리 588도 불법이 되었고, 그 곳에 진을 치고 있던 그네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딘 가로 떠나갔거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고 매스컴에서 이모저모로 비췄던 것을 호진은 떠올리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네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호진이 과외를 끝내고 집으로 갈 때, 허연 넓적 다리를 꼬고 앉아 젖가슴을 드러낸 술집 작부를 번번이 보기도 하는 터였다.
 어젯밤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술집과 여관이 딱지딱지 붙은 거리를 지나 자취방 골목길 어귀에 이르렀을 때였다.
 호진은 버릇대로 <춘화>를 흘끔거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낯익은 얼굴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아니, 이게 또 누구셔? 그 학삐리 선상님 아니신가?..... 재수에 옴이 붙으려니 별 게 다 눈에 띄네. 그래, 꼴란 대학인가 머시긴가 갔다고 그 잘난 얼굴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 자꾸 내 앞에 나타나 알짱거리실까...... 여튼, 재수없는 년 같으니라구! 장사도 안 되는 판국에 바다 건너라도 확 떠나버리든지 해야 저 궁상스럽게 더러운 꼴 안 보고 살려나. 에이, 퉤이!”
 바로 미옥이었다.
 호진은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그녀의 욕설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바로 미옥이 살고 있는 술집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옥의 생활 반경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돈 좀 벌어보겠다고, 나잇살이 먹어서도 책가방 짊어지고 학교 문턱 들락이며 교생실습까지 나가야 하는 자신은 영락없는 미옥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5.
  호진은 약간은 열적고 무안한 표정으로 반채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교생은, 아니 적어도 학교 선생은 창녀촌의 ‘4번’과는 달라야 한다는 신념이라도 불어넣으려는 듯, 반채영의 지적에 공감의 표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반채영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해마다 교생들이 들이닥쳐 분위기를 흐리고 가는 통에 아주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호진은 뭔가가 미안해진 사람처럼 그녀의 시선을 비켜섰다.
 실오라기 한 가닥이 서랍 안에서 삐죽 튀어나와 반채영의 책상 위쪽을 향하고 있는 게 호진의 눈에 띄었다.  

 어머니도 털실로 스웨터를 짰었다. 어머니는 가슴 바깥쪽으로 손을 재빠르게 움직여 작은 원을 그렸다, 그 반대쪽으로 돌리기를 반복했다. 까치발걸음으로 쫑쫑 움직이는 어머니의 손가락을 호진은 그림자처럼 바라보곤 했었다. 어머니의 손놀림은 갈수록 빨라졌다. 게다가 입술까지 달싹거렸다.
 해가 가면 오실 꺼나. 달이 가면 오실 꺼나. 고운 님 우리 님….
 대바늘에는 군데군데 손때가 까맣게 묻어 외관상 꾀죄죄해 보이긴 했지만, 바로 그 곳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고 아홉 살 짜리 꼬마 호진은 생각했다. 
 엄마, 분네네 뒤란에 부춧꽃이 피었대.
 그러다 호진은 기갈 들린 짐승 물 삼키듯이 허겁지겁 말을 해댔다. 그러면 어머니는 흥얼거리던 입을 문어처럼 꾹 다문 채 붉은 실오라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털옷 짜기에 여염이 없었다.    
 아이쿠, 이런! 또 코가 빠졌네.
 어머니는 호진의 대답에는 아랑곳없이 혼잣말을 하더니 실을 풀기 시작했다. 풀린 실오리가 갓 끓여 낸 라면처럼 굽실굽실 쌓였다. 겨드랑 밑까지는 좋게 짰을 거라고 생각했던 털옷이 금새 풀려 새끼손가락 정도의 아랫단밖에 남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신이 정해놓은 틀에 따라 다시 단을 짜기 시작했다. 계율을 따르는 신도처럼 어머니의 손놀림은 일정했고 엄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분네네 뒤란에 부춧꽃이 또 피었대두.
 호진이 답답하다는 듯이 암팡지게 다시 말을 뱉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벙어리처럼 대답이 없었다. 
 부춧꽃은 하얗게 뿌려진 소금처럼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어머니는 가을걷이가 바빠지면 아버지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호진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이야기 속에만 등장하는 듯한 아버지와 하염없는 어머니의 모습은 꼬마 호진에게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기 그 자체였다.

 호진은 생과부 딸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돌아올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아버지는, 그녀가 고향을 떠날 때까지 코빼기도 비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던 어머니가 그녀 앞에서, 아버지가 돌아올 리가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돌려 “서방 복 없다.”로 말을 시작한 것도 호진이 열 네다섯이 됐을 무렵이었다.
 내 아무리 서방 복이 없기로서니 그깟 지집의 머리끄뎅일 싹둑싹둑 잘라 굿을 한 판 못 칠꺼나. 멱살을 잡고 끌고 와도 시원찮을 그 인사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그 잡귀는 언제쯤이면 물러 갈 꺼나….
 어머니의 한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농가에서 마른 고추를 사서 넘기는 중간 소매상인이었다. 광대처럼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던 아버지가 발걸음을 끊은 것은 호진이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 그리곤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 말마따나 그녀는 서방 복이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임종할 때까지 조강지처인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마을에 정착해 새 가정을 꾸려버렸다던 아버지. 세 살 박이 꼬맹이와 아낙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야 했을 아버지의 운명 또한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호진은 아버지와 화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과 아낙을 버리고 간 사람에게 사랑을 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을 혐오한다거나 ‘그만 기다려라!’고 한다면, 그건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형벌이겠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끈질긴 집념을 견딜 수 없어 했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서 가출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저렇게 젊은 여자가 도대체 뭘 뜨고 있을까.’
 호진은 삐죽 튀어나온 실오리를 바라보며 반채영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네의 뜨개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뜨개질이란 홀로 남겨진 자가 감당해야 하는 결핍의 몸부림이었을 테니까. 실타래에는 생활의 찌꺼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야 했다.
 어머니는 요즘도 뜨개질을 하고 있노라고 동네 일가 친척 아주머니가 귀띔을 해주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못내 걱정스러워 어머니의 보살핌을 친척에게 따로 부탁하고 있는 호진이었다. 그네는 호진이 어릴 때부터 한 동네 살았던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원삼과 족두리 걸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기에 믿음이 가는 사람이기도 했고, 호진을 대견하게 여기는 구석이 있기도 해서 그녀의 부탁을 귀찮게 여기지는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날이 궂으면 뜨개질을 하는 거 같으이. 그럴 때면 영락없이 아무도 못 알아본다니까. 에휴, 팔자도, 팔자도 박복하기도 하지.....치매라기보다는 마음이 병인 게지.....   그나저나 사는 것도 힘들 텐데, 이 쪽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하는 일이나 야무지게 하고 사소. 객지서 혼자 그렇게 꾸려가기도 힘들 텐데.
 호진은 친척의 말을 떠올리며 반채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수업을 마치는 벨 소리가 울렸다. 호진은 그 해 겨울 담장 안 만큼, 교무실이 갑자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온통 하얗기만 했던 벽. 알 듯 모를 듯했던 장소.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누구나 가는 곳이라고 믿었던 곳. 밀폐된 미궁 속에 갇힌 것처럼 껄떡껄떡 숨을 몰아 쉬면 오싹한 공포와 불안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고는 했었다. 거대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목을 꽉 조이는 것 같아 호진은 숨을 재대로 쉴 수도 없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일상의 패턴과는 사뭇 다른 삶의 공간 같기도 해서 적응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었다.
 하지만 호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정말 그렇네요. 제가 그만 실언을 했나봐요. 여긴 학굔데….”
 반채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주변과 격을 두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진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재빠르게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6.
  전철 안에 서 있는 호진의 머릿속은 저녁 거미줄처럼 온통 엉켜 있었다. 어젯밤에 또 어머니의 전화가 왔었다. 사나흘만에 한 번씩은 멀쩡한 정신으로 전화를 해 이러저러한 사변적인 얘기를 늘어놓곤 하는 어머니였다.
 “아휴. 넌, 나이 곰백이 되도록 그렇게 있어 어쩔 작정이고? 참말로 야로다, 야로. 무다이 고생하지 말고 더 늙기 전에 배필을 만나야 내 근심이 뚝 끊어지제. 천 날 만 날 책가방만 짊어지고 다닌다고 되는 게 아이다. 인생은 순리대로 사는 게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카는 것만 알아놓커라.”
 어머니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제가 언제 손이라도 내밀었어요?”
 그녀는 뭔가 분명히 해야한다는 듯이 발끈하는 투로 또박또박 말을 받았다. 늘 있는 일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거리는 어머니가 안쓰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넌, 어째 말을 그리 야박스럽게 해쌌노? 서방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카더이만…. 옛말 그른 게 하나도 없다카이.
 기어이 서방복과 자식복 타령이 또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닦고 또 닦는 거울처럼 선명한 어감으로 어머니는 툭툭 내뱉곤 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역사가 어머니의 신세타령보다 더 길고 지루할까. 그녀는 어머니의 삶보다 그런 어머니가 더 끔찍했다.
 이젠 사진 속의 아버지처럼 나이를 먹어버린 그녀에게, 어머니는 ‘서방 복과 자식 복 타령’을 습관처럼 되풀이 언급했던 것이다. 이미 삼켜버린 여물을 끈질기게 되새김질하고 있는 늙은 암소와도 비슷한 삶이었다.
 “그래, 아즉 만내는 사람도 없냐? 방패가 없으면 여자는 팔자가 드세진다카이. 시집을 훌러덩 가야 내가 한 시름 놓을 거 아이갉. 더 늦기 전에 후손도 봐야할 나이고….”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긴 한숨이었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했을 때, 아버지의 또 다른 여자는 한 장의 부고를 어머니에게 전해주었다.
 어머니는 흙과 태양에 그을린 갈퀴 같은 두 손을 파들파들 떨며 “다아, 그년 때문이야!" 라고 앙칼지게 내뱉으며 두 눈을 부릅뜨고 먼 허공을 쏘아보았지만, 눈물은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때 호진에게 찾아 든 것은 슬픔이 아니라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이었다.
 사진 이 외에는 본 적도 없는 아버지가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자체가 그녀에게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그녀의 뿌리를 얄금얄금 갉아먹는 치부였다. 환경 조사서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아요, 라고도 ‘아버지 사망’이라고도 쓸 수 없었던 부친의 존재는 표현하기 곤란한 대상이었다. “아버지는?”이라고 묻는 질문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얼마나 떳떳하고 행복한가. 어쩌면 그녀는 그런 자리를 사춘기 시절 내내 꿈꿔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망한 눈빛으로 멍하니 서 있다, 연이어 “쌍년!” 이라며, 재빠르게 표정을 바꾸어 숨겨둔 비수처럼 날카롭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지상을 떠났다 해서 어머니와 그 여자 사이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언어는 갈수록 과감했고 거칠어졌다.
 남의 서방 가로챈 그 화냥년 두고 나는 죽어도 눈 못 감는데이. 원통해서 참말로 못 감는데이.
 어머니의 감정은 세월이 흘렀어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입버릇이었던 생과부의 한을 그 여자에게 진이 빠지도록 퍼붓고 있는 듯했다. 바람났던, 그리고 이젠 지상을 떠난 아버지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여자에 대한 어머니의 끈질긴 증오는 당신의 삶을 연장시키는 생명수 같은 것이었다.
 “그 지집이 아즉도 목심을 지탱하는 건 다아 그 놈의 뒷바리지가 있었기 때문인 거여. 그 놈의 명을 가로챈 것이나 진배없어. 암, 분명히 그럴 것이다. 두고 보거래이. 남의 서방 가로챈 그년은 장수가 아니라 오수를 하고도 남을….”
 늘 그랬듯이 호진은 소리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어머니의 전화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하고 우울했다.

 개미떼가 이동하는 것처럼 출근길은 붐비고 있었다. 멈추었다 움직이고 또 다시 멈추었다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갈아치우던 전철이 몽촌토성을 지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역사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역사를 벗어난 그녀가 어머니의 음성을 제치고 병사를 태운 말처럼 뛰었다. 자꾸만 손목시계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호진이 허겁지겁 교문 앞을 지나치려할 때,
 “이제 출근하세요?”
 라고 누군가가 아는 척을 했다. 반채영이었다. 밀려드는 학생 속에서 그녀는 소녀처럼 배낭을 메고 있었다.
 짬짬이 이뤄지고 있는 듯한 그녀의 뜨개질 탓이었을까. 연푸른 청바지를 입은 반채영의 화사한 모습에서 한 번쯤은 맛사지를 해줘야 할 정도로 균열된 삶의 각질을 보는 듯했다.  
 눈언저리에 잔주름이 미세하게 내려앉은, 그러해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에도, 또 사랑한다고 매달려 애걸하기에도 너무 늦은 삼십대의 체취가 어색하게 묻어 있는 듯도 했다. 그것은 지핫방의 검푸른 곰팡이에서 풍기는 눅눅하고 쾌쾌한 냄새 같기도 했고, 이젠 뒷방으로 물러나 시간을 죽이고 있는 늙은이의 무료한 고통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패물도 삶에 대한 응집도 없는 삼십 대의 허무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호진은 그 냄새에 숨을 허걱 들이켰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활기 차게 말했다.
 “수련회 떠나시나봐요?”
 하지만 삶이 허망하다고도 허망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는 나이를 훌쩍 먹어버린 그녀의 농후한 목소리가 아침 공기 속으로 울려 퍼졌다.


7.
 박 선생에게 서류를 받아 챙긴 호진은 교생실로 들어갔다. 교생실은 몇몇의 사람만 남아 있을 뿐 고즈넉했다. 같이 온 동료는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려대고 있었다. 호진은 학교에서도 그네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강의실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캠퍼스를 오가며 종종 마주친 적이 있어서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자기 안에 어떤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적당한 고상함과 교양으로 삶의 너절함을 뒤덮고 싶어하는 그녀의 욕망과 호진은 간간이 만나곤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뭐 해?”
 호진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네는 침묵했다. 뭔가에 깊이 빠진 사람 같았다. 호진은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그네는 메일을 쓰고 있었다. 별반 호기심이 일지 않아 호진이 눈길을 돌리려 했을 때, 그네가 입을 열었다.
 “저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네요. 영원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인데….”
 침울한 그네의 표정 탓에 호진은 섣부르게 입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그네의 내밀한 편지를 엿봤다는 오해를 살 것 같은 께름칙한 마음이 든 탓도 있었다. 그래서 호진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네가 말을 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온전하게 갖지 못한 것 같았어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는 제겐 늘 허전했던 분이었거든요. 매 순간 아버지가 떠나버릴까 두려웠지요. 갈 곳이 또 있었던 분이었어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전 늘 공중에 붕 떠서 사는 것 같아 불안해요. 내가 서 있는 땅엔 중력이 없는 것 같아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휴우.”
 그네는 늙은이처럼 짧게 한숨을 쉬었다.
 호진은 아버지의 또 다른 아들을 생각했다. 가슴 가장 밑바닥에는 그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보내 드리지 그랬어. 만약 나였다면, 내가 먼저 집을 박차고 나와버렸을 거야.”
 “어머, 무슨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거죠?..... 전,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평범하지 않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알기나 하세요?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도 않구요.”
 그네가 약간 발끈하며 쏘아붙였다.
 “불이익이라니?”
 호진은 반문했다.
 “삶의 상황이 달라져 옹색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에요. 정신없이
허둥대는 사람들 보면, 내가 시장판에 섞여 있는 것 같아 숨통이 막힐 때가 많아요. 기운 누더기처럼 사는 게 너절해진다구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진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곁에 있다면 그런 상황과는 맞닥뜨리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중간 중간에 낯선 것이 툭 튀어나와 복잡해지고 싶지 않다는 건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고 복잡한 것인지…. 이제 와서 그 쪽 집에서는 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인지. 그래도 씨가 같으니까 남매처럼 지내자는 둥 어쩌자는 둥…. 도대체 골치가 아파 죽겠네요.”
 어머니가 멈췄던 뜨개질을 다시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였다. 부고장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뜨개실을 꺼내놓고 그 옛날처럼 다시 뜨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얼굴빛은 그 때처럼 초조해 보이지 않았다.
 고운 님 우리 님 언제 또 오실 꺼나….
 낯설지만 익숙한 노랫말이 어머니 입에서 거짓말처럼 술술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한순간 호진은 유년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망연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뚝 그치고 그녀를 마주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호진을 아주 똑바로 응시했다.
 “아니, 정순아, 니 언제 왔더노?”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의 입에서는 낯선 이름이 엉뚱하게 튀어나와 버렸다. 호진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정상과 비정상을 오고가며 처녀 시절의 행동을 이따금씩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정신이 말짱해져 아버지의 또 다른 여자를 헐뜯으며 시간을 이어갔다. 충격과 상처 입은 자의 일상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어머니는 그렇게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혼란스러워 죽겠군요. 어떤 마음인지 언닌 모르실 거에요.”
 호진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또 다른 아들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몰랐다. 철저한 부인이야말로 그의 존재를 역으로 입증한다는 측면에서 그러했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버지와 그 여자의 아들이 맏상제 노릇을 톡톡히 해냈을 거라고, 훗날 어머니는 뭔가 부럽다는 듯이 툭 내뱉을 정도로 그들의 존재를 염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두 여자와 배 다른 두 명의 자식을 흔적으로 남겨 놓고, 그들 가슴에 각각 다른 모형의 상흔을 새긴 후 지상을 떠나신 셈이었다. 품고 살기에도 그렇다고 잊고 살기에도 고통스럽기만 했던 상흔을 견디기 위해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며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료 교생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알아.”
 호진은 짧게 대답했다.  


8.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빛줄기가 지하로 새어 들어왔다. 호진은 스탠드만 켜놓은 채 정신없이 환경 조사서를 훑고 있었다. 낯모르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께름칙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체 불명의 무엇과 전투라도 벌이는 듯 정신없이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 호진이 한순간 눈길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뚫어지도록 그것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어요. 아빠랑 할머니와 사는 데, 허드렛일 하던 아빠가 작년에 간암으로 앓아 누웠어요. 집이 갑갑하고 힘들어요.』

 깨알같이 적힌 학생의 글씨 밑에 “재정 지원.”이라고 대충 휘갈겨 놓은 흐릿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박 선생의 필체인 듯했다. 호진은 머릿속이 텅 비면서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몽롱해졌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컵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나의 줄기에 잎이 나 또 다른 줄기를 만들고, 또 그 가지의 촉에서 새로운 싹이 뾰족 눈을 내밀어 우렁우렁 줄기를 뻗어가다 잎이 시들면 바로 그 옆에서는 새로운 이파리가 생겨났다.
 호진은 기억했다. 허연 뿌리를 물 속 깊이 내린 고구마의 푸른 줄기에 조롱조롱 매달린 잎사귀가 초창기에는 제 씨앗처럼 붉은 빛을 띠었다는 것을.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녀는 식물이 그러하듯이 사람 역시 씨앗의 운명을 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씨종들 때문에 내 가슴에 홧병이 도지겠다고, 가슴을 툭툭 내치며 자신의 삶을 감당하지 못했던 어머니 밑에서 호진은 평범한 고등학교 진학을 꿈꿀 수 없었다. 선택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판단할 줄 아는 게 어른의 삶이어야 한다고 호진은 생각했지만, 그런 삶은 집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호진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아버지를 보내지 못했던 어머니를 떠나고 싶었다. 그녀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어머니와 이별했었다. 그것을 자유와 독립이라 믿었을 때였다.

 새롭게 맞이한 낯선 공간. 건전지를 금방 갈아 끼운 시계 초침처럼 짹깍짹깍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쁜 일상이 그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호진도 학교와 기숙사, 그리고 작업장을 오고가며 하루 일과를 채웠다.
 기상 벨 소리, 출근 점호 벨 소리, 청소 벨 소리, 학교 벨 소리, 소등 시간 벨 소리에 따라 호진은 움직였다. 그녀는 귓가에는 언제나 벨 소리가 따라다녔다. 그녀는 검은 가래를 뱉어 냈고, 그녀의 손금은 닳아 없어졌다. 만약 벨 소리를 놓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는 어김없이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럴 때면 담장 밖이 도달할 수 없는 나라처럼 아득해지곤 했다. 바깥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딴 나라였다. 호진의 심장은 기계처럼 딱딱해졌다.
 명자는 때때로 학교에 오지 않았다. 12시간 작업을 하게 되면 학교를 빠졌다. 등교한 학생들은 모두 엎드려 잠을 잤고, 선생들은 “까만 거는 글자고 하얀 거는 종이로다.”라는 반농담조로 학생들을 조롱하다 교실문을 열고 나갔다. 선생은 선생이 아니었고 학생은 학생이 아니었다. 학생은 선생을 인정하지 않았고, 선생도 학생을 인정하지 않았다. 존경도 보살핌도 없었다. 소녀들의 가슴은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그네들을 움직이는 건 오직 ‘벨 소리’뿐이었다. 벨 소리는 그네들을 내리비추는 탐조등이었다. 잿빛 담장이었다. 
 “저 누무 벨 소리 좀 안 듣고 살 순 없냐? 진짜 노이로제 걸리겠다카이.”
 명자는 벨 소리가 울릴 때마다 투덜거렸다.
 “담장 바깥에는 벨 같은 게 없을 기다. 이 곳을 빠져나간다면 그 소린 안 들어도 될 걸.”
 호진이 대답했다. 그러면 그들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그네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카면 벨은 도대체 누가 울리는지 아나?”
 명자는 한참만에 다시 물었다.
 “기숙사는 사감, 학교는 교장, 현장은 반장이 울리는 거 아이겠나.”
 사감, 교장, 반장은 모두 잿빛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까만 눈동자는 반들반들 빛을 내며 소녀들을 감시했다.
 사감은 때때로 말했다.
 “불온 사상이 깃든 책들을 읽다 발각되는 날에는 기숙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그러면 호진은 어깨를 움츠렸다. 불온 사상이 담긴 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기숙사를 나가야 한다는 사감의 말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또, 반장은 반장대로 생산량이 미달이라고 닥달을 했다. 그러면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기계를 세우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반장은 쉴 새 없이 현장 안을 순회하며 소녀들을 감시했다.
 호진의 눈에 띄는 것은 모두 회색이었다. 그 회색은 시간을 시체로 만들던 어머니의 빛깔 같기도 했고, 그녀의 목을 죄여오는 쇠사슬 같기도 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빛깔이었다. 회색이 주는 공포와 절망감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호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깔에 물들어갔다. 그러니까 그녀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삶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삶은 회색 담장 안에 갇혀 있었다.
 
 호진은 환경 조사서를 다시 쳐다보았다. 소녀의 이름은 주연이었다. 얘가 누구였을까. 호진은 자신의 과거를 뒤지며 서류를 쏘아보다 말고 중얼거렸다. 창가 쪽에 앉아 창 밖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친구였나? 하지만 누군지 꼭 집어 낼 수 없었다. 여러 소녀가 지나갔다. 그녀는 가장 우울한 소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눈이 유난히 깊은 것 같기도 하고, 여드름이 듬성듬성 난 불량소녀 같기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눌리고 어딘가에 긁혀 상처 난 이파리를 연상시키는 소녀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소녀의 영상을 떠올릴 수 없었다.
 호진은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기모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마득한 천장까지 닿아 있는 거대한 기모기.   기모기는 주변의 모든 정적을 한꺼번에 삼켜버리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뿜으며 돌아간다.   갑자기 내리치는 천둥소리와 흡사하다. 소녀는 바짝 긴장을 한다. 포지를 감고 엄청난 굉음을 내지르며 돌아가는 그 소리는 아주 비현실적이고 생경하다. 소녀는 엉거주춤 뒷걸음질한다. 만약 저기 내 머리카락이, 아니 내 팔이 감긴다면 어떻게 될까. 우럭처럼 눈알이 불뚝 튀어나와 입과 함께 옆으로 삑 돌아가 살갗이 산산조각 날까. 롤러에 칙칙 감겨 돌아가던 포지에는 보풀 대신 붉은 핏물이 뒤범벅되겠지. 정육점 소고기처럼 잘 다져진 살갗은 온 사방으로 튈 거야. 소녀의 등허리에 식은땀이 쫙 흘러내린다. 소녀의 몸과 영혼이 쿠르릉 쿵쿵 돌아가는 기모기 소리에 제압된다. 소녀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순간 반장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은 온통 잿빛 벽이다. 소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하지만 출입구가 없다. 도대체 입구가 어딜까. 잿빛 작업복이 땀에 절어 눅눅해지기 시작한다. 온 전신이 땀에 뒤범벅이 될 때쯤이면 저 멀리서 작은 몸피를 가진 또 다른 소녀가 반듯하게 잿빛 작업모 뒤집어쓰고 자박자박 들어오는 게 보인다. 어머, 넌 도대체 누구니? 여기로 들어오지마. 하지만 잿빛 모자의 소녀는 호진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런 표정없이 기모기를 향해 차츰차츰 다가온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호진은 또 그 꿈을 꾸었다. 서류가 축축하게 적어 있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보냈던 고교시절의 경험이 이따금씩 나타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녀였다. 하지만 변함없이 자신의 심장을 느낄 수는 없었다. 교육은 사랑이 발판이 돼야 할 텐데, 담장 안의 공포 속에 갇힌 사람처럼 그녀의 심장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의 온몸에는 공포의 전율이 일었다.
 ‘주연아….’
 호진은 주연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잿빛 소녀인 것만 같아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바깥에는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9.
 아침이었다. 거리는 축축하게 젖었고 허공에는 아직 걷히지 않은 물안개가 자욱했다. 교정에는 이름 모를 붉은 꽃잎이 봄의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참새 소리가 들렸고, 봄볕과 밤새 비를 빨아들인 장미 넝쿨이 굼실굼실 줄기를 뻗어 생명의 경이로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똑 같은 교복을 차려 입은 학생들이 흩어진 검은 콩알처럼 교문 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개체를 구분할 수 없는 외양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환경 조사서를 통해 본 학생들의 차이가 바로 차별로 이어질 외양 안의 의미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호진은 세월이 흘러도 별반 달라질 것 없을 것 같은 소녀의 불길한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런 배려 없이 세상에 툭 내던진 생명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질곡이 골짜기 계곡처럼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세상은 능력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다른 사람을 등쳐먹고 살아가기가 바쁜 곳이었다. 인간의 순수는 자본과 환경에 의해 떡잎부터 싹둑 잘리기도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성인이 되도록 보호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호진은 알고 있었다. 인간 사회의 질서였다.
 학교로 들어선 그녀는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그녀를 힐끗 쳐다보던, 세수 대야처럼 얼굴이 넙데데한 출입구 쪽 남자가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먹이를 쪼는 참새처럼 다시 처박았다.
 호진은 그런 남자를 무심하게 지나쳐 스적스적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빨리 출근하셨군요.”
 박 선생보다 더 빠르게 반채영이 아는 척을 했다. 그녀는 짧은치마에 검은 반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 모습은 밝고 화사했으며 세련돼 보였다. 호진은 그녀에게 눈인사를 한 후,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과 어른들의 뻔뻔스러운 궁금증을 가득 머금은 눈초리로 그녀의 책상을 염탐꾼처럼 살폈다.
 “뭘 찾으세요?”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인지 반채영이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뜨개실요. 그저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니까, 저어.....제 어머니도....때때로….”
 “뜨개실요?”
 한 달 스치고 지날 뜨내기 교생이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뜻밖이라는 듯 반문했다. 그런 그녀는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올 약혼자를 위해 털옷을 짜고 있노라고 샐쭉 웃으며 덧붙였다. 
 “그가 귀국하는 날은 온 세상에 은빛 눈이 내렸으면 좋겠어요. 축복으로 느껴질 거예요.”
 그녀는 반채영을 새롭게 뜯어보았다. 밉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한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자기를 잃어버린 자가 지닐 수 있는 공백의 미가 묻어 있다고 해야할지.   
 “서류 대충 다 훑으셨나요? 요즘 학생들은 청소도, 공부도, 생활 방식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요. 까닥 잘못하면 뒤통수 얻어맞기 십상이죠. 글쎄, 한 순간이라니까요. 한 달 동안 바짝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애들이 워낙 밴들밴들해 놔서.”
 박 선생이 말머리를 돌려 회사 간부처럼 끼여들었다. 저 선생은 반 아이들을, 아니 아직 보이지는 않는 다음 세대의 질서를 어떻게 견딜까. 곪고 깨지고 병든 어른들이 뿜어 놓은 삶의 파편에 맞아 허덕이고 있을 한 소녀의 형상을, 호진은 간신히 떠올리며 최초로 가슴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호진은 침묵을 지켰다. 박 선생이 자신의 침묵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열망을 안은 은밀한 고요함이었다. 침묵이 길어져 외로워지려는 찰나였다.
 “아 참. 반 선생, 올 갈이나 겨울쯤에 국수 먹는다면서요. 이거 또 사모님 소리 듣는 거 아냐? 그나저나 미국 박사시라면서요.”
 입구 쪽 남자가 뭔가 부러운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교무실이 활기에 넘쳐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 참, 남 선생님두. 요즘은 길거리에 깔린 자갈처럼 흔한 게 박사예요. 뭐, 박사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요.”
 반채영이 가지런한 치아를 살짝 드러내 웃으며 말했다. 말의 어조가 부드러워 그런지 거친 표현이 오히려 겸손치레처럼 들렸다.
 “에이, 그래도 부러운 걸요. 집 있고 차 있고 여자 빼고 다 있는 처량한 내 신세에 비한다면야 서광이 내린 것 같은데요, 뭘.”
 호진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뜨개실을 바라보았다. 
 “박사도 좋지만 같이 살기에는 아무래도 교사가 적격이죠. 평생 직장이겠다, 방학 동안 시간 맞춰 외국 여행하기도 그렇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폭도 그렇고…. 요리조리 따지는 거 좋아하는 박사는 골머리만 아픈 거 아닙니까?”   
 옆에 앉았던 박 선생이 선량하게 눈을 반짝이며 급류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들의 대화는 은빛 은어떼가 물결 위로 팔딱팔딱 튀어 오르는 것처럼 눈 부셨다.
 “그렇죠. 여자 직업 선생이면 아무래도 살림살이 고달프지는 않겠죠. 남자라고 처자식 먹여살려야 된다는 낡아빠진 생각 먹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서도 자가용 한 대씩 굴리며 고만고만하게 집 평수 늘리기도 좋고, 자식 교육에도 좋고…. 이쯤 되면 일석삼조가 아니라 일석사존 사조에요.”
 출입구 쪽 남자가 말을 이었다.
 “허 참. 남 선생님도…. 허허허.”
 박 선생이 뭔가를 들켜버렸다는 듯이 무안해 하면서도 성격 좋게 허허 웃어댔다.
 “교생 선생님 때문에, 이거, 별 얘기가 다 나오네요. 어쨌든, 축하객으론 꼭….”
 반채영이 새 신부처럼 얼굴을 붉혔지만, 표정이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호진이 멀뚱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뭔가가 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또 사는 게 허망한 것 같기도 한 시선이었다. 이젠 서른을 훌쩍 넘겼는데, 여자는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변변하게 들이밀 명함 한 장 없었다. 그냥 머리 센 노인처럼 진짜 늙어버린 것 같았다. 남자와 나란히 거닐며 사랑이라도 속삭이고 싶었지만 이젠 가망이 없을 것 같았다. 호진은 그들 옆에 서서 기모기에 적응하지 못한 소녀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망간 엄마를 가슴에 품고 밤마다 끙끙거리며 살 소녀를 생각하던 눈빛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소녀에게 꿈을 가지라고도, 어른이 되면 파헤쳐진 땅덩일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고도, 언젠가는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초점 잃은 멍한 눈빛으로 떨떨 떨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은 털실 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 털실 위로, 돈에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미옥이 지나갔고, 기모기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녀가 지나갔고, 어머니의 눈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순대를 정신없이 먹어대던 철없는 명자가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은 과거였지만, 그녀에게는 예정된 시나리오에 따라 상영되는 영화처럼 생생한 현재의 삶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또 시간을 죽이고 있을 병든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연이어 아버지의 부고장이 지나갔다. 그리고 귀족을 동경하며 젊은 교수를 망연히 바라봤던 강의실 안의 자신의 모습이 지나가려는 찰나,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 이제 그만. 나 여기 이대로 갇히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정체 불명의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들을 모조리 차단했던 잿빛 담장이다. 언제 어떻게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적군처럼 음험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겹겹이 싸여 있는 이 담장은 정말 무섭고 우울하다. 나는 이 담장이 진절머리 나도록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리칠 수도 없는 곳까지 와 있지는 않는가. 게다가 뿌리조차 부정하고 싶은 어머니의 불운한 운명을 재현하려는 것은 아닐까. 나를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자, 보아라. 이 담장 안에 서 있는 한은 너(내)가 영원한 수인(囚人)이라는 것을. 여기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어머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걸 분명히 인정하자. 아, 오라, 나에게 오라. 잿빛 담장 안의 소녀여. 그리하면 비로소 우리 저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있는 저 담장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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