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급조절과 학습된 낙관주의
완급조절과 학습된 낙관주의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9.06
  • 호수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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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중 <의대·의학과> 교수
  지난 한달 동안 명사인 ‘비(雨)’가 현재진행형의 동사로 되었다가 기분을 나타내는 형용사로 변할 수도 있음을 체득했다. 복잡한 연유로 자의반 타의반 입원을 한 후에 어두운 조도의 병실 안에서 창문을 통해 녹음을 적시는 빗줄기를 보는 것은 묶인 몸에 대한 말없는 위무가 된다.
첫사랑과 헤어질 때, 아버지를 입관할 때 직접 몸을 적셨던 비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외부자극의 수용에 따른 감정의 해석이란, 결국 내밀화된 개인적 습관의 토대 위에 구축된 가변성의 총화로서, 표출되는 양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은 불가능해 어찌하면 신속히 해소해서 가슴에서 털어버릴지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첩경이련만, 나를 둘러싼 외부상황에서 온전히 벗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무념무상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어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힐 때 느끼는 불안감과 좌절감에 대한 회피 또는 공격(flight-or-fight) 반응은 생존을 담보하는 자기방어기제로서 이 때 드러나는 감정과 행동의 분출은 그를 그답게 만드는, 먼 옛날 파충류 시절부터 뇌 변연계에 존재한, 단절된 다위니즘의 구현이다. 알아서 기어야 하는 상관 혹은 죽도록 미워하는 누군가가 있거나, 까닭모를 피해의식에 시달리거나, 착한 남편과 아들로 살아야만 하는 숙명을 체감할 때면 무의식적인 세뇌활동에 길들여진, 마치 성대가 제거된 아파트 강아지가 된 기분이다.

평생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왜 암에 걸렸는지 억울해하던 지인을 보며, 그래서 암을 키운 거라고, 너무 고분고분 살아서, 아무 말도 않고 순종해서 스트레스를 키워 그런 거라고 해석을 해주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그러려니 하는데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사회를 이 따위로 만든 데 이미 어느 정도 일조하기 시작한 기성세대로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할 말 다하며 자기주장 강한 신인류, 1982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나 밀레니얼 제너레이션(Millenial Generation)이라고 불리는 M세대는 물리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개나 고양이를 물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다. 

포커페이스로 위장해 감정을 포장하며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분출함으로써 앙금을 깨끗이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쿨하고 쉬크한 스트레스 제로의 현대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는 일차원적인 인간은 곤란하다. 시의 적절하면서도 표현력 풍부한 감정표현이 되려면 완급조절에 이은 카운터 펀치 한 방이 필요하다.

일단 터미네이터의 눈으로 사태를 파악한 후, 후천적으로 학습된 낙관주의를 활용해 모든 상황을 통제 가능하도록 구미에 맞게 재단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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