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소가 된 대학과 인문교양의 의의
직업교육소가 된 대학과 인문교양의 의의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5.30
  • 호수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많은 대학들이 명운을 걸고 교육 시스템 혁신이라는 과제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유수 기업가가 최근 어느 대학을 맡아 고강도의 구조 조정을 밀어붙이면서 많은 말을 낳고 있다. `대학이 구청 문화센터 수준의 교양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지난 십여 년 간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이념으로 대학 교육이 수요자도 좋아하고 공급자도 편하게 수업할 수 있는 과목을 늘리는 것으로 변질돼 교양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뼈아픈 일침이다.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설강된 과목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키워내는 과목인가에 대해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이 전인 교육의 장이자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미 옛 이야기고  이제 대학은 직업교육소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대학이 직업교육소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일은 대학이 외면할 수 없는 직무다. 따라서 대학이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리고 위의 말이 그런 실패에 대한 지적이라면, 이것 역시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직업교육소에서는 오욕의 이름이 되고 있는 인문 교양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가. 과연 인문 교양 과목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훈련된 직업인들을 양성하는 일과는 무관한 과목들인가 생각해보고 싶다.

대학이라는 훈련소는 사회적 멀티 플레이어를 양성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잘 훈련된 사람은 약간의 적응만으로 상당히 다른 일들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있어야 한다.  대학은 이러한 인력들을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훈련소다. 이런 훈련소라면 어떤 일들을 가르쳐야 하겠는가.

기초적인 지적 훈련이 밑바탕되야 한다. 대학이라는 훈련소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보나 지식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찾아서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 교양 과목은 이러한 능력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학이 직업훈련소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내실 있는 교양 과목을 설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실 있는 교양 과목이 반드시 인문학이나 기초 학문 분야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나, 그렇다고 기초 학문 분야를 소홀히 하는 대학은 제대로 된 직업훈련소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특히 우리 학교가 최고의 명문대로 올라서기 위해서 명심해야 하는 점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