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간 얽히고 설킨 국경 문제의 이해
한·러 간 얽히고 설킨 국경 문제의 이해
  • 최형규 수습기자
  • 승인 2010.05.29
  • 호수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화 시대와 통일을 대비한 오해 해소 필요
한국이 을사조약 이후 단절됐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한지 20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두만강 주변 국경에 대해선 근대에 조선의 영토를 약탈했다는 식의 오해의 소지가 존재한다.

우리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는 지난 18일 박종효<모스크바 국립 대학교ㆍ한국학센터> 교수를 초청해 「한ㆍ러 관계사의 재해석」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박 교수는 장기간 연구 활동을 통해 신뢰성 높은 러시아 측 사료를 정리한 자료를 설명하며 “고대 한국의 영토였던 우쑤리 지역 및 녹둔도를 러시아가 강탈했다는 오해가 풀리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또 박 교수는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이며 거울이 될 뿐 현재 정책과 직접적인 연결이 되지는 않는다”며 한ㆍ러 국경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ㆍ러 국경 문제는 1858년 러ㆍ청 간에 체결된 아이훈 조약에서 시작된다. 이 조약에 따라 헤이룽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좌측은 러시아 영토, 우측은 청나라 영토가 됐다. 다만 우쑤리강 동남쪽 지방은 청 왕조의 조상이 살던 지방으로 신성시해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출입을 금지한 봉금지대다. 때문에 이 지대는 러ㆍ청이 공동관리 하기로 했다. 하지만 1960년 러ㆍ청 북경 조약으로 봉금지대마저도 러시아에 양도하고 이때 두만강을 조선과 러시아 간의 국경으로 설정했다.

시간이 지나 두만강이 홍수로 인해 토사가 쌓여 녹둔도가 러시아 영토와 연결되고 대신 조선 쪽으로 흐르는 강줄기가 하나만 남게 됐다. 그 결과 북경조약에 명시된 ‘해상에서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정한다’는 조문에 의해 녹둔도는 러시아의 영토가 됐다. 당시에는 산과 강을 경계로 영토를 나누는 식이었기에 정확한 측량이 없어 영토 구분이 애매했다.

또 조선 내부에서도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라 조정에선 적극적으로 국경문제 해결을 제기하거나 영토회복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박 교수는 “당시 국제적 상황과 조선 정부의 나약함이 국경문제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었다”는 견해를 보였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도 러시아와 중국의 북경 조약만 있을 뿐 우리나라와는 국경 조약이 없었다. 결국 이 모순을 알게 된 모스크바 동방학연구소에서 외무성에 이 사실을 보고해 1985년 북한과 소련이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미비한 점을 2008년에 합의했다. 종합적으로 러시아가 녹둔도를 약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결론이다.

실제 1900년 이전 러시아는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보다 극동에서 평화를 유지하려는 입장이었다. 그 예로 1896년 조선에 파견한 러시아 뿌쨔따 대령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은 3면이 바다라 외부로부터 침략 받기가 쉽고, 러시아 아무르 군관구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어 조선을 점령해도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기록이 있다.

강연 끝에 박 교수는 “국제화 시대엔 국경이 무의미하고 왕래가 쉬워져 구시대적 영토개념을 탈피한 자유로운 경제 유통권이 형성된다”며 “때문에 오해보다 전통적 우호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