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
  • 하동완 수습기자
  • 승인 2010.05.29
  • 호수 1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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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인들을 만나다
비가 내리던 지난 22일 오후 서울역, 말끔히 정돈된 대리석 위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 뒤로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인들이 보인다.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서 잠을 청하거나 역 중앙에 있는 대형TV를 보고 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노숙인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성일이(가명) 아저씨는 몇 년 전 부터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길에 내몰리기 전에 아저씨는 한 달에 며칠을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했다. 그 일로 하루 일당 53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부인과 함께 두 아들을 두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재작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공사장 일거리가 줄어 아저씨를 부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큰아들은 뇌종양으로 쓰러졌다.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수 천 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감당할 길이 없었던 아저씨는 집을 팔고 부인과 작은아들을 친척집에 맡긴 채 거리로 나왔다. 그 뒤로도 타워크레인 일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직업소개소에서 얻은 일용직 일당으로 고시원과 쪽방을 전전했다. 그렇게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 뒤로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저씨의 왼쪽 팔에는 아직도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이제는 노가다로도 써주질 않어” 애써 웃으며 말하는 아저씨의 눈에는 희망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밤이 되자 비바람이 한층 거세졌다. 비를 피하기 위해 더욱 더 많은 노숙인들이 서울역 역사 안으로 몰려 들어온다. 겉옷에선 비를 맞아 물이 떨어지고 손에는 무료로 배급받은 도시락 이 들려 있다. 몇몇은 한데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몇몇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어수선한 노숙인들의 무리 속에서 진태(가명) 아저씨를 만났다. 식사 하셨냐는 물음에 빈 도시락 통을 들어 보인다. 어느 교회에서 저녁마다 무료로 도시락을 배급한다고 한다. 아저씨의 하루일과는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한 뒤 지하철을 무임승차해 이곳저곳 돌아다니거나 역 안에 있는 TV를 보는게 전부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공장 근로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경제위기로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로 전락했다.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노동부를 찾아가 실업급여와 실업교육을 알아봤지만 까다로운 조건에 복잡한 서류까지 요구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허사였다. “이젠 마음 접었어”라고 말하며 한숨 짓는 아저씨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또 다른 아저씨가 찾아왔다. 노숙인에게 돈을 주고 신상정보를 사는 ‘상놈’들을 찾는 중 이라고 했다. 서울역 같이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그런 일이 많다고 한다. 노숙인들은 돈을 주겠다는 말에 자신의 명의를 알려준다. 그렇게 모인 신상정보는 범죄 집단에 팔려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만드는 데에 쓰인다. 이 대포폰과 대포통장들은 보이스 피싱, 대출사기와 같은 범죄에 악용된다.

“그 놈들에게 명의도용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여” 아저씨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는 이 일을 항의하려고 직접 휴대폰 대리점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자신의 명의가 도용당한 사실을 알아낸 아저씨는 대리점 직원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이 일로 대리점 직원이 경찰에 신고해 경찰서까지 다녀와야 했다. “우리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 걸걸한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답답함이 묻어나왔다.

노숙인들은 길거리에서 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편견을 짊어지고 산다. “쓰레기 보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질려버렸다”고 아저씨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들은 순박하고 평범했다. 단지 사람들의 무관심과 편견 속에 지쳐 누워 있을 뿐이다. 거리에서 만난 아저씨들의 털털한 웃음은 이웃집 아저씨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역을 떠나기 전, 뒤를 한번 돌아 봤다. 아저씨들은 변함없이 누워서 잠을 청하거나 TV를 보고 있다. 그 옆을 사람들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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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05:14
이 글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노숙자들의 어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순박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상적인 사람들과 다름 없는 존재이며,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에 대해 아쉽게 느꼈습니다. 노숙인들과 사회 간의 이해와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런 글들이 더 많이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