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바람은 반드시 역풍으로 돌아온다
억지 바람은 반드시 역풍으로 돌아온다
  • 김규범 편집국장
  • 승인 2010.05.29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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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주변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기꾼이 패스트푸드점에 전화를 걸어 경찰관 행세를 했습니다. 그 패스트푸드점의 여직원이 손님 지갑을 훔쳤으니 알몸수색을 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지점장이 여직원을 불러 알몸수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직원도 그 명령에 따릅니다.

지점장과 여직원은 왜 그런 행동을 했던 걸까요. 바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알몸수색을 명령한 사람이 경찰관이라는 상황이 지점장을 움직였으며, 자신의 고용주인 지점장이 알몸수색을 명령한다는 상황에 여직원도 순순히 응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상황이라는 건 사람의 행동을 바꿔놓습니다. 극한 상황일수록 사람은 본인 의지나 이성보다는 상황에 맞춰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일찍이 이런 인간의 특성을 이용한 마케팅이나 전략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 공포 마케팅이 대표적입니다. 입시제도가 바뀔 때마다 커지는 사교육시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바뀌는 입시제도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공포 마케팅의 결과입니다. 온갖 자극적인 광고문구들을 이용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지요.

정치인들도 상황이나 분위기에 쉽게 휩싸이는 인간의 특성을 자주 이용합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부각되는 이슈들이 정책이 아닌 특정 사건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 정책보단 두 단어가 더 중요 이슈입니다. 바로 ‘북풍’과 ‘노풍’입니다. 혹자는 이번 선거를 이 두 바람의 대결이라고 지칭할 정도입니다. 선거운동 시작일에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발표가 있으면서 이른바 북풍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또 그로부터 이틀 뒤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에 맞춰선 노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바람이 서로를 공격하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바람을 불게 만들고 부딪히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의 대외비 문서가 공개됐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라는 문건이었습니다. 사실 이 문건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이라면 짐작했을 겁니다. 중요한 선거 때 남북 간 이슈가 생길 때마다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이런 따가운 시선은 야권도 비켜나갈 수 없습니다. 정책보단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내세운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이미 노골적이기 때문입니다. 거리의 후보 홍보 현수막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찾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 돼버렸습니다.

이처럼 특정 상황을 이용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들이 많아질수록 정책선거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각 후보의 인물이나 정책보단 소속정당을 따르는 이른바 ‘묻지마 투표’가 성행하게 되지요.

또 각 정당들이 선거에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이용하다보면 그들의 명예마저 훼손되기 마련입니다. 굳이 정부 발표가 아니더라도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은 누가 뭐래도 추모 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1년 전 국민들이 슬픔 속에 보냈던 만큼 서거 1주기를 맞은 지금 마땅히 추모를 받아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떠나보낸 그들을 욕되게 할 만큼 도를 넘은 말이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이 가는 길이 슬프지 않도록, 욕되지 않도록 선거 전략에 그들을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선거와 동떨어진 이슈들에 휘말리기보다 정책에 맞는 선거를 치르는 게 나라를 위해 살다 간 그들을 위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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