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노숙인,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0.05.29
  • 호수 1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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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늦은 밤 지하철역을 지나면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종이 판자를 바닥에 깐 채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벽을 마주보고 이들이 줄지어 드러누워 있다. 그들이 풍기는 악취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사람들은 자기 몸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닿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다. 그들의 삶은 현재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채 거리의 일부가 돼버린 듯하다. 거리의 낯선 이웃,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봤다.

사회구조 모순의 희생자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전국의 노숙인 추정 인원이 5천 4백여 명에 달했다. 전국 노숙인 숫자는 97년 외환위기로 급증해 99년 2월 6천 3백여 명을 정점으로 경기회복 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다가 다시 그 수가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최근 국가적 경제 위기로 인해 위태로웠던 빈곤층이 실직,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해 노숙인으로 전락했음을 나타낸다.  

이에 남기철<동덕여대ㆍ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 문제는 가정 해체와 같은 개인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결합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 내 열악한 주거 구조와 왜곡된 주택관련 조세 체계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남 교수는 “주택 보급율이 100%가 넘지만 재개발과 뉴타운 건설 등으로 저가주택이 줄어들고 있다”며 “사회구조 상 구성원의 일부는 주거취약계층의 극단인 노숙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엔 길거리 노숙뿐만 아니라 월세 보증금도 마련하지 못해 일정한 거처 없이 찜질방, PC방, 만화방과 같은 비주거용 거주지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가 비주거용 거주지에서 생활하는 120명을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은 5년 이상 이러한 생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박철수<햇살보금자리 상담보호센터ㆍ현장지원팀> 팀장은 “겉으로는 빈곤이 드러나지 않지만 거리의 노숙인과 다르지 않은 수많은 주거상실 차하위 계층이 존재한다”며 “이들의 빈곤이 수면 위로 노출돼 나타나는 것이 노숙인”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노숙인을 위해 △응급 쉼터 △부랑인 복지시설 입소 △자활의 집 프로그램 △공공임대주택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설보호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수혜 받을 수 있는 노숙인이 극히 적다.

남 교수는 “정부는 노숙인들이 시민들에게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복지시설 입소 등 비가시화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이는 정책 간의 연계성이 부족해 노숙인의 실질적인 자활에 연계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남 교수는 “정부는 노숙인 문제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문학에서 발견한 희망
정부의 구조적 문제 개선과 함께 민간단체에선 노숙인에게 지속적인 정신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에서 설립한 성 프란시스대학은 지난 6년 동안 미국 빈곤층에게 실시했던 인문학 교육과정 클레멘트 코스를 도입해 노숙인에게 인문학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 노숙인 지원동아리 H.P.A 회원들의 활동모습


매 학기 마다 25명의 노숙인을 모집하고 △철학 △문학 △글쓰기 등 이와 관련한 대학 교수를 섭외해 강의를 진행한다. 강의는 주로 교수와 학생들 간의 토론으로 이뤄진다. 노숙인의 자존감과 사회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인문학 과정은 강의를 듣는  노숙인들에게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강의를 수강한 많은 노숙인들은 노숙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해가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려한다.

실제로 인문학 1년 과정을 수료한 한 노숙인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획득해 도움을 받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사로서 노숙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종수<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ㆍ성 프란시스 대학> 실장은 “노숙인들은 경제적인 빈곤도 문제지만 오랜 시간 동안 노숙을 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감, 존재성,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도 절박하다”면서 “노숙자들도 인문학과 철학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자기 변화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H.P.A 회원들의 상담 프로그램 지원모습


이주연<산마루 교회> 목사 역시 교회 안에 강의실을 마련해 ‘노숙인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목사는 자신이 대접하는 아침을 먹기 위해 교회를 찾아왔던 노숙인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처음 교회 근처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강의를 계속해서 듣고 싶은 노숙인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근처와 화장실을 청소해 노숙인 대학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며 “노숙인들을 이웃으로 인식하고 편견을 거두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숙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대학생들
H.P.A(Homeless People Aids)는 수많은 대학동아리 중 유일하게 노숙인을 지원하는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의 동아리다. 현재 사회복지학과 학생 5명으로 이뤄진 이 소규모 동아리는 매주 1회씩 서울역 노숙인을 만나 그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이들의 상담의 목적은 노숙인들이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이 쉽게 사회에 복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98년부터 매년 학내에서 ‘헌옷 모으기’ 행사를 진행해 노숙인들에게 이를 전달하고 있으며 노숙인들과 함께 농촌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또 노숙인들이 행정절차가 복잡해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파산신청,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신청 등을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H.P.A 동아리 회장 최치욱<성균관대ㆍ사회복지학과 07> 군은 “많은 대학생들이 노숙인들의 삶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긴 보단 거칠고 게으르게만 보이는 노숙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며 “동아리 외 학생들이 노숙인 지원 관련 봉사활동에 대해 지속적인 참여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알코올 의존증이나 정신장애를 갖고있는 소수의 노숙인을 보고 전체를 판단해선 안 된다”며 “우리 사회 빈곤계층의 극단인 노숙인을 통해 사회구조가 가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사진제공 : 동아리 H.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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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06:52
이 글은 노숙인 문제에 대해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숙인들의 어려움과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으며, 민간단체가 제공하는 인문학 교육 등의 지원 방법도 소개되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숙인 지원에 대한 정부의 한계와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사회구조 개선과 함께 더 많은 인식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