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모순에 반기를 들다, 변화를 모색하다
대학 모순에 반기를 들다, 변화를 모색하다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0.05.16
  • 호수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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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자퇴 선언 이후 대학 사회변화 가능성

2010년 3월 10일, 고려대 교정에 붙은 대자보 하나가 시대의 양심을 찔렀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최초 대학거부 선언문이었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씨는 대자보를 통해 ‘대학이 더 이상 큰 물음도 큰 배움도 주지 못한 채 자격증 장사 브로커로 전락했다’며 ‘대학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되길 거부한 채 기꺼이 대학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김예슬 씨 자퇴 선언 이후 수많은 언론들이 이를 보도했지만 두 달이 지난 현재 자퇴 선언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 김예슬 씨가 지적했던 대학 사회의 모순과 이에 따른 움직임을 알아봤다.

자퇴 선언이 만든 대학생 움직임
‘김예슬 자퇴 선언’ 이후 대학가에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7일 심해린<이화여대ㆍ경영학과 07> 양은 ‘김예슬 선언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붙였다. 심 양은대자보를 통해 “‘오늘 나는 교수직을 그만둡니다. 아니 거부합니다’라는 ‘교수님들의 선언’을 기다린다”라고 밝혀 대학사회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교수들의 고민을 요구했다. 이어 3월29일에는 채상원<서울대ㆍ사회과학 08> 군 또한 학내에 대자보를 게시해 ‘김예슬 양의 선언을 지지한다’며 ‘학내에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성균관대에서도 지난 3월23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에 의해 부착된 대자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짧은 내용의 대자보에서는 ‘잘 팔리는 너나, 팔리지 않는 너가 아닌 그냥 너인 너를 볼 수 없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장승준<국민대ㆍ러시아학과 08> 군 또한 대자보를 붙였다. 장 군은 지난 4월 7일 ‘나는 왜 내 인생을 살 수 없을까’ 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꿈꾸고 생각하길 외면한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뛴다면 세상을 떠날 때 여한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라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어부를 만드는 법은 고기를 잡는 법이 아닌 바다를 그립도록 꿈꾸게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지속되지 못한 채 금세 가라앉았다. 김예슬 자퇴 선언을 공론화하기 위해 고려대 내부에선 김예슬 선언에 대한 토론회도 진행됐다. 하지만 동아리 연합회 회장 박현석<고려대ㆍ국제학부 08> 군은 “학내에 토론 장소를 마련했지만 40여 명 정도 밖에 참여하지 않았다” 며 “사실상 학내에선 큰 이슈를 끌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김예슬 자퇴 선언이 대학생의 현실에 대한 전세대의 공감을 형성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생 연합 20’s party 대표 김성환<중앙대ㆍ국제관계학 전공 04> 군은 “김예슬 씨 자퇴 선언과 릴레이대자보는 개인의 싸움에 그쳤지만 대학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20대와 기성세대에게 각성할 수 있는 계기”라며 “대학생 정치 참여의 보편적인 방법을 기획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쳥년실업의 근본원인>




































자퇴 선언에서 인식해야할 문제
사회동향조사연구소에서 발표한 「2010 지방선거 대학생 의식지형조사」에 따르면 9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청년실업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국내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져 있어 고용위축 또는 축소가 장기적으로 불가피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 중 29.4%, ‘정부의 고용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4.7%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이 문제는 김예슬 씨 자퇴 선언 직후 대안교육현장과 대학사회 내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제기됐다. 지난 4월 7일 고려대 내에서 이뤄진 토론회 ‘김예슬 선언으로 바라 본 대학의 기업화와 20대의 현실’에선 대학이 하나의 영리기관처럼 운영되고 또한 기업의 인력 공급을 위한 수단으로 전략해가는 대학의 기업화 등이 논의됐다.

한 토론자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사회를 학생들이 피부로 느껴 왔다”며 “이에 각 대학들이 취업에 가장 적합한 노동력을 생산하는 것으로 대학의 존재 이유를 바꿔왔다”고 주장했다.

동아리 연합회 회장 박 군은 “성장자본주의가 이어져 개인의 능력이 상당히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대학 사회에도 적용됐다”며 “다수의 학생들이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고 있지만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는 불안 속에서 스펙 쌓기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청년실업 문제 해결 근본 방안>




 

 

 

 

 

 

 

 

 

 

 

 

 

 

 


제2의 자퇴 선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대학의 위기가 논의되는 현재 대안 대학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인문학 중심의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풀뿌리 사회지기학교는 2005년 이 학교의 교장인 이신행 교수가 자택을 기증해 만든 대안대학이다.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 `사회지기’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로, 현재 80여 명인 교수를 ‘가르칠 이’, 10명인 학생은 ‘배울 이’로 부른다.

등록금은 120만원으로 한 학기 5과목을 배운다. 교육 과정은 3단계로 이루어지고 ‘터닦기’ 와 ‘길찾기’ 과정에서는 토론 위주로 학습하고, ‘사회지기’ 과정에서는 관심 진로를 지역 사회와 연결시키는 1 대 1 방식의 도제식 교육을 실시한다.

대학의 위기가 논의되는 현재 대안 대학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인문학 중심의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풀뿌리 사회지기학교는 2005년 이 학교의 교장인 이신행 교수가 자택을 기증해 만든 대안대학이다.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 `사회지기’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로, 현재 80여 명인 교수를 ‘가르칠 이’, 10명인 학생은 ‘배울 이’로 부른다. 등록금은 120만원으로 한 학기 5과목을 배운다. 교육 과정은 3단계로 이루어지고 ‘터닦기’ 와 ‘길찾기’ 과정에서는 토론 위주로 학습하고, ‘사회지기’ 과정에서는 관심 진로를 지역 사회와 연결시키는 1 대 1 방식의 도제식 교육을 실시한다.

김종남<풀뿌리 사회지기 국제연대> 사무국장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진로로 진출하려고 할 때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만들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풀뿌리 사회지기 학교는 실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남 함양의 온배움터는 국내1호 대안 대학이다. 온배움터에서는 생태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상균<온배움터ㆍ학부 교양과정> 디렉터는 “소모적으로 많은 과목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학문들의 그 핵심을 스스로 배우고 삶에 녹여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라며 “학문 추구라는 대학 본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어떤 주제라도 그것의 정확한 의미와 더불어 그것과 연계된 다양한 부분들과의 고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라고 전했다.

대학은 별도의 시험 대신 3일간 학교에서 합숙하는 체험 면접을 통해 결정된다. 등록금은 국립대 수준으로 한 학기에 160만원이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 15%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더 내거나 덜 내거나 할 수 있다. 교육은 기초 과정 2년, 연구생 과정 2년, 전문 과정 2년으로 이루어진다.  자급자족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기 때문에 기초 과정 학생 전원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이론과 노동을 병행하는 수업을 받는다.  캠퍼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성된 3만평 규모의 생태마을 ‘청미래 마을’은 온배움터 학생들의 실습지다.

대안 교육관련지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씨는 “대안 대학은 전체 대학 중 아주 작은 부분이기 때문에 전체 대학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며 “하지만 대안 대학이 김예슬 씨와 같이 기성 대학에 염증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자료제공 : 사회동향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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