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인간과의 로맨스를 꿈꾸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인간과의 로맨스를 꿈꾸다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0.05.16
  • 호수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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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에 담긴 철학적 담론

불가능할 정도로 아름답다. 피부는 대리석 같이 창백하고 얼음같이 차다. 자로 잰 듯 잘 다듬어진 얼굴에 황금빛 버터사탕 같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흔히 볼 수 없는 갈색 머리를 가진 그는 햇빛을 받으면 온 몸이 금빛으로 빛난다. 피아노 연주까지 수준급이니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트와일라잇」(이하 「트와일라잇」)을 펼친 여성들을 모두 매료시킨 뱀파이어 에드워드 컬린, 이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던 숱한 뱀파이어들에게 빠져보자.

순식간에 빠져드는 「트와일라잇」의 매력
「트와일라잇」은 고등학생 소녀 벨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벨라는 이혼한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와 살게 된다. 그리고 곧 다른 학생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도도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에드워드 컬린을 알게 된다. 벨라는 백짓장 같이 하얗고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종족’처럼 보이는 그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에드워드가 떠나 벨라가 외로워 할 때에 그녀를 위로해주는 늑대인간 제이콥스가 나타나고 전형적인 패턴인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자칫하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등장해 결투를 벌이며 피가 낭자하는 ‘호러소설’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트와일라잇」은 두 연인이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는 고전적 패턴의 로맨스 소설이다.

인간과 뱀파이어와의 사랑은 이전부터 단골 주제였다. 인간의 피를 빨아야 하는 뱀파이어와 피를 빨리는 인간 사이에는 탐욕과 복수의 생존게임뿐 아니라 유혹과 공포와 두려움을 동반한 성적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선정<서울대ㆍ영어영문학과> 교수는 학술지 「뱀파이어, 한번쯤은 되고 싶은」을 통해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은 음란하고 사악한 도발로 그려져 왔다”며 “인간과 뱀파이어 모두 파멸적인 이미지로 비춰진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은 기존 뱀파이어 문학과 차별화된 면모를 보여주고 인간과 뱀파이어와의 사랑을 아름답고 애틋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를 끌어들인다. 과거 뱀파이어들과 달리 인간의 피를 빨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진화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순정만화에 나온 듯 아름답다. ‘저항할 수 없이 달콤한 체취’,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황금빛 버터 사탕’같은 눈동자를 가진 에드워드는 벨라의 신변보호를 지상최대 과제로 여긴다. 이는 사랑하는 여성의 목덜미를 물어 자신과 같은 ‘종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시대의 뱀파이어와 다르다.

「트와일라잇」은 에드워드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자임에도 유독 벨라의 마음을 읽지 못하도록 설정해 에드워드와 벨라가 서로를 탐색해가며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들의 대화를 통해 막 사랑에 빠진 10대 청춘의 설렘을 담아낸다.

조 교수는 “「트와일라잇」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뱀파이어를 창조해 인간과 뱀파이어의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좁혀놓는다” 며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 마침내 인간이 뱀파이어 종족으로 입양되는 결말로까지 나아감으로써 기존 뱀파이어물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드라큘라에서 채식주의자 뱀파이어까지
동남부 유럽의 민간전설이었던 흡혈귀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출현한 것은 존 폴리도리의 단편소설 「뱀파이어」다. 이 소설은 훗날 거의 모든 뱀파이어 서사에 나타나는 기본 모티프를 제시한다. 뱀파이어 루스 벤 경의 이야기에 녹아있는 계급 갈등, 치명적인 사랑 등의 요소는 이후 다양하게 뱀파이어물에서 활용된다.

‘계급’과 ‘인종’, ‘성’이 버물어진 뱀파이어 모티브는 영국 고딕문학의 주류를 형성해오다  브람 스토커의 장편소설 「드라큘라」을 통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다. 소설 「드라큘라」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 루마니아 남부에 있었던 고대 왈라키아의 국왕 블라드 드라큘의 아들 블라드 째빼쉬다. 스토커는 그가 1456년부터 투르크 족 포로들을 잔인하게 말뚝에 박아 죽였다는 기록에 착안해 블라드 째빼쉬에 뱀파이어 모티브를 활용해 소설 「드라큘라」를 완성했다. 이 작품에서 뱀파이어는 인간세계를 위협하는 사악한 존재로 정형되다가 뱀파이어의 내면을 다룬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라큘라로 굳어졌던 뱀파이어의 이미지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루이와 레스터, 이들이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린 소녀 클로디아가 경험하는 자기혐오와 우울, 광기와 슬픔을 살아있되 죽어있는 자인 뱀파이어의 목소리로 묘사해 고독한 내면 세계를 드러낸다. 이후 뱀파이어 모티브는 미국 주류영화에 편입돼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종족 결투를 다룬 블록 버스트 액션물 「언더월드」로 탄생하기도 했다. 또 뱀파이어가 돼버린 철학과 대학원생이 고뇌 끝에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어딕션」같은 현학적인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뱀파이어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생산되고 있다.

이에 조 교수는 “뱀파이어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 이분법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다” 며 “뱀파이어물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경계에 대한 통찰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컨텐츠로 생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살아있으되 죽은 자며, 인간이되 흡혈을 통해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뱀파이어는 경계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를 끝임 없이 만들어낸다. 이에 뱀파이어 모티프에는 귀족과 평민, 남성과 여성, 아이와 어른, 인간과 짐승, 낮과 밤, 이성과 광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드러나고 뒤섞이고 분열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트와일라잇」의 벨라 역시 아이의 몸에서 어른의 몸으로 성장하는 경계지점, 즉 ‘여명(twilight)’ 속에서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인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사랑을 나눈다.  또 인간인 벨라, 뱀파이어인 에드워드, 늑대인간인 제이콥스와의 관계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과 뱀파이어, 늑대인간 종족은 이전부터 계속된 갈등으로 서로 화해할 수 없지만 이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이동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고정된 정체성보다는 이들의 경계성이 강조된다.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그동안 뱀파이어들이 담아왔던 철학적 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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