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교육인증의 불편한 진실
공학교육인증의 불편한 진실
  • 김상혁 기자
  • 승인 2010.05.15
  • 호수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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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ㆍ교수ㆍ학생, “껍데기는 가라”

74.11%. 본지가 공학인증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우리학교 공대생 총 30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필요 없다’고 대답한 학생들의 비율이다. 같은 인원을 대상으로 공학인증 프로그램에 참여 여부에 대해 묻자 약 43%만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하단 도표 ①, ② 참고)

 

 

공학인증이란 사단법인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이하 공인원)이 자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인증된 프로그램을 이수한 졸업생이 공학 실무에 효과적으로 종사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학생은 공학인증 과정을 수료했으니 전공 교육을 충분히 받은 검증된 공학인이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재 우리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의 적극적 장려 하에 서울캠퍼스 13개 학부와 ERICA캠퍼스 10개 학부가 참여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학생을 비롯해 교수들조차 호응이 시원치 않다. 학생들은 △노력 대비 낮은 실효성 △개인의 수업 선택 자율성 침해 등을 문제로 지적했고 교수들은 △학과 특성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 △평가 기준의 모호함 등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하나의 사실은 존재한다.  공인원에서 제시하는 공학인증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형식을 강조해 ‘껍데기’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학인증은 입사 통행증인가
서울캠퍼스 공학교육혁신센터장 김용수<공대ㆍ원자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공학인증 참여의 필요성에 대해 △설계 능력의 배양 △학문의 기본적 지식 함양을 언급했다. 하지만 실제 참여를 선택한 학생들의 이유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공학인증 참여자 총 136명을 대상으로 참여 이유에 대해 묻자 87명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답변을, 27명은 취업 시 예상되는 효과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오른쪽 도표③ 참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모호한 답변은 뒤로하고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취업 시 예상되는 효과’에 대해 살펴보면, 실제 공학인증 수료로 입사 시 가산점을 주는 기업이 분명 존재한다. 지난 2006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공학인증 가산점 부여를 결정한 삼성전자를 비롯한 총 16개 계열사를 포함해 LG-노텔, NHN, 안철수 연구소 등 총 8곳은 면접 시 우대, 서류 전형 시 우대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학인증에 참여하는 대학의 수가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오히려 상위 공대에서는 공학인증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공학인증의 유무만으로는 실력 있는 학생들의 분별이 어려워졌고 기업들도 취업 시 혜택 제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2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공학인증은 현재 총 56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수도 463개로 늘었다. 한편 현재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공학인증 프로그램에 전혀 참가하지 않은 상태며 서울대와 고려대 역시 절반 정도의 학과만이 참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ABET(미국의 공학인증 명칭)의 경우 미국 내 유수 대학은 대부분 동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총 2천487개의 4년제 대학 중 584개의 대학만이 인증받는다. 전체 대학의 약 23%만이 인증받는 미국과 비교하면 총 4년제 대학의 수가 158개에 불과한 한국은 35%가량의 대학이 인증받는 셈이다. 그만큼 거품이 끼었다는 의미다.

NHN의 인사담당자 A는 “공학인증 자격 충족 시 채용에 가산점이 부여하는 것은 맞지만 학점을 포함한 기타 자격 요건에 비해 그 비중이 작다”고 말했다. 어렵게 공학인증 프로그램에 참여해 학점 평점을 낮추느니 교양 수업 하나 더 들으면서 학점 관리하는 게 취업에는 유리한 것이 솔직한 현 대학가의 모습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공학인증의 태생 과정과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공학인증은 미국의 ABET에서 들여왔다고 볼 수 있는데 양국의 시작 배경은 많이 다르다. ABET은 공학 종사자들이 모여 1932년 시작됐다. 산업계 측 사람들이 모여 학생들에게 엄격한 훈련과 교과과정을 실시해 발전한 것이 현재의 ABET이다. 탄탄한 역사를 바탕으로 학계와 산업체 간 원활한 교류 덕분에 도입 후 7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업계에서도 이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공학인증은 산업계가 아닌 학계가 그 태동을 주도했으며 준비 기간도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학계 내부에서조차 졸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공학인증 도입 초기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한 명지대 김인택<공대ㆍ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미국의 ABET을 그대로 베껴 교육 현장의 교수들에게 획일성을 강조하다보니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아무런 호응이 없다”고 전했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인원과 산업계간의 교류는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공인원 운영위원 126명 중 산업체 종사자는 단 3명에 불과하다. 각 대학 방문평가단의 평가위원의 구성 역시 비슷하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이보인<성과확산팀ㆍ국제협력담당>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평가단에서 산업체 측 인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정도지만 우리나라는 10% 정도”라고 말했다. 그나마 공학인증 자체에 대해 의지를 갖고 참여한 평가단은 드물다. 김인택 교수는 “산업체 쪽의 평가위원들은 쉽게 말해 구색 맞추기용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결국 산업체의 호응을 얻지 못한 공인원 덕분에 상대적으로 애꿎은 공학인증 수료자들이 손해 보고 있는 셈이다.

공학인증은 계륵이다
공학인증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공학인증 프로그램을 ‘계륵’이라고 표현한다.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은 적기 때문이다. 공학인증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윤세원<공대ㆍ미디어통신공학전공 08> 군은 미참여 이유에 대해 “실효성이 의심되고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이 너무 빡빡하다”며 “전공과 관련도 없는 과목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공학인증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묻는 설문에서 총 332명 중 52%가 △노력대비 낮은 실효성을, 45%가 △개인의 수업 자율성 침해를 지적했다. (위 도표 ④ 참고)

수업의 자율성 침해는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던 문제다. 공학인증을 받기 위해 이수해야 할 학점 자체가 많고 교양과목조차 지정된 과목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그 이유다. 현재 공인원은 공학인증을 위한 최소 이수 학점으로 108학점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108학점 안에는 학과에서 수료해야 하는 전공 외의 학점도 포함돼있다. 졸업을 위한 필수 이수 전공학점과 공학인증을 위한 필수 이수 학점을 채우다보면 듣고 싶은 교양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 학생들의 불만이다.

단일 전공의 인증을 위한 최소 이수 학점이 108학점이다보니 다중전공이나 부전공, 복수전공 선택의 기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의 경우 이 문제가 예비인증과정에서 프로그램 참여를 포기한 하나의 이유가 됐다. 서울대 채만수<공대ㆍ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연계전공과 연합전공을 실시하고 있는 서울대와 정책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학교육혁신센터 관계자는 “공학인증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이 부담돼 타 학과의 전공 수업을 이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인원은 “필수 이수 학점은 그야말로 전공 분야의 심화 이해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학점을 일컫는 것”이라며 “학점 수 조정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한편 공학인증으로 포기해야 할 것도 있다. 국내외 대학으로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가려면 반드시 그 대학의 공학인증 실시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실시하지 않는 대학에서 이수한 학점은 인증 이수 학점 조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증 이수 학점이 모자라면 졸업이 되지 않는다. 김용수 교수는 “원칙적으로 WA(워싱턴 어코드)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의 경우 학점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WA란 타 국가의 공학인증 프로그램에 대해 상호 인정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국제 조약이다. 하지만 우리학교 자매 대학 중 WA에 가입된 국가의 대학 수는 총 140개로 전체 자매 대학 수의 5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공학인증을 하는 학생은 나머지 절반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과의 공학인증 지도교수들은 각자 재량을 발휘해 학점을 인정해 주기도 한다. 공학교육혁신센터 관계자는 “학생 편의를 위해 해당 대학에서 이수한 학점은 이수 과목과 공학인증을 위해 필요한 과목 간의 유사 정도로 결정한다”며 “이 경우 교수 재량권의 허용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아 교수들도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 우물’만 강조하는 공학인증
공인원 인증규정 중 제2장의 제4조 ‘인증의 단위’에는 “공인원은 교육기관이나 학사행정단위보다는 교육 프로그램 단위로 인증한다. 하나의 학사행정단위가 여러 개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에는 각각의 프로그램 단위로 인증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학인증이 단일 전공 중심의 프로그램임을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현재 공학계의 흐름인 융합학문의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학인증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학부의 대부분이 융합학문을 배우는 곳이거나 그 학과만의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학교의 정보시스템학과와 도시공학과가 대표적 사례다. 정보시스템학과는 공학계열이지만 인문계열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정보시스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는 학과다. 물론 공학인증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오현옥<공대ㆍ정보시스템학과> 교수는 “이는 학과 교육과정과 공인원 프로그램 간 방향성의 문제”라며 “공학인증에는 경영 과목에 대한 반영이 돼 있지 않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도시공학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창무<공대ㆍ도시공학과> 교수 역시 공학인증교육의 방향성을 지적하면서 “각 학과마다 특성이 다른데 공학인증 프로그램은 공학적 과목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고, 과목 배분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타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려대의 전기전파공학부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공학인증을 포기했다. 채 교수는 “인증원에서도 융합학문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일 전공을 강조하는 공인원의 방침이 자칫 공학인의 시야를 좁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학교 대학원생 홍준모<전자컴퓨터통신공학과 석사과정 2기> 씨는 “공학인증이 한 전공에만 심화돼있어 여러 전공을 통합해 배우는 대학원 교육에 도움이 될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공학교육혁신센터 역시 이 주장에 동감하고 있다. 김용수 교수는 “미국의 ABET같은 경우 다중전공에 대한 지침도 포함돼있다”며 “인증 자체의 철학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 내부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공인원의 노력이 뒷받침돼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이주희<인증사업팀> 팀장은 “프로그램 요구사항이 있으면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내용보다 ‘형식’ 위주의 운영 방침
김용수 교수는 공학인증에 관한 여러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으로 철학보다 형식을 강조하는 공인원의 방침을 지적했다. 김용수 교수는 “미국에서 ABET이 도입될 때 한국 사회 특유의 관료주위와 결합되면서 형식이 강조돼온 측면이 있다”며 “그 결과 탄력적 운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교수와 학생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형식을 중요시하는 공인원의 태도는 각 대학의 공학인증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잘 드러난다. 최성욱<교수신문> 기자는 「널뛰기 하는 평가기준이 문제」 기사에서 “전공을 불문한 일률적 평가기준과 평가위원의 주관적 평가기준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이를테면 평가단은 이미 교과과정에 필수과목을 지정하고 평가 시 이 부분은 왜 빠졌나, 시험문제는 왜 이렇게 출제했느냐에 대해 묻는다”며 “공인원은 확립된 틀 속에서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인증평가는 정량적 요소뿐만 아니라 정성적 요소들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공인원 평가 기준에도 맞지 않다.

너무 잦은 평가도 문제가 됐다. 우리학교 교수 A는 “연구중심대학인 우리학교에서 공학인증 평가를 준비하느라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짧은 평가 주기는 많은 표본 자료를 얻기 위한 공인원의 방침이다. WA 자격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WA를 얻으려 하다 보니 각 대학에 과도하고 집약된 업무량을 제공하는 것이다. 김인택 교수는 “ABET의 경우 CQI문서 평가가 도입돼 간단하고 편리한 평가 방식을 이용한다”며 “현재의 공인원 평가방식은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비판했다.

최 기자 또한 “현재의 무리한 업무량이 과연 대학의 각 학과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인원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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