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분위기에 영웅 칭호는 필요 없다
추모 분위기에 영웅 칭호는 필요 없다
  • 김규범 편집국장
  • 승인 2010.05.01
  • 호수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LPGA에서 우승을 한 박세리 선수. 당시 IMF로 절망감에 빠져있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를 보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했고 영웅이라 불렀습니다.

예부터 비범한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성공하고 마는 영웅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곤 했지요. 그래서 깊은 절망감이나 슬픔에 잠겨있는 사회일수록 영웅을 원합니다. 때론 일반인을 의도적으로 영웅화하기도 하죠. 정부가 직접 나선다든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영웅이라는 칭호를 부여합니다.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미화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깊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만든다는 순수한 목적이라면 우리 스스로 그 영웅화를 묵인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영웅화는 도리어 우리 사회에 악영향만 끼치기 마련입니다.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대중에게 영웅은 완벽해야 합니다. 단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으로 치부되거나 미화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웅에 대한 건전한 비판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황우석 박사가 그런 경우입니다. 사실 그가 추락하기 오래 전부터 일부 과학계에선 그의 연구에 대한 지적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험윤리부터 시작해서 연구 성공 자체에 대한 꽤 논리적인 비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외면한 우리는 상처만 입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빗나간 영웅화는 영웅이 필요한 자들의 조작으로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영웅을 만들고 속된말로 ‘써먹고 버려’ 자신들의 배를 채울 생각으로 영웅화를 진행합니다. 황우석 박사는 당시 바이오의료사업이 흥행을 일으키기 위한 상징이었습니다. 대중에게 생소하고 어렵기만 한 바이오의료사업이 불치병 치료에 쓰일뿐더러 그 기술이 있다면 외화벌이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웅이었습니다. 실제로 종전까지 생소했던 새로운 의약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됐으며 순식간에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의약품, 신문, 책, 강연 TV프로그램 등 많은 상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이런 빗나간 영웅화는 때론 진짜 영웅들의 순수성까지 훼손하고 맙니다. 사람들은 영웅에 감격하기도 하지만 쉽게 돌아서기도 합니다. 너무 지나친 영웅화로 그의 이름이 공해 수준으로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서서히 반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대단한 성과를 거둔 뒤 방송 출연이나 CF 촬영을 하는 일반인들에 대해 쏟아지는 시기어린 눈초리들이 이를 보여줍니다.

결국 영웅이라는 팔기 쉬운 상품을 만들어 이익을 챙긴 자들은 어느새 숨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진짜 영웅들에게 남게 됩니다.

만들어진 영웅이 남긴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일까요. 요즘 천안함 희생 장병들에게 쏟아지는 영웅 칭호와 애도 분위기에 쉽사리 동참할 수 없습니다. 슬픔이나 애도 보다는 괜스레 의구심이 먼저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군 복무 중 발생한 일이기에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분위기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원인규명이 없다면 그들의 죽음은 의문의 사고로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영웅이란 칭호를 붙이는 건 진정 희생자들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왜 그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서 잠들어야 했는지 밝혀진다면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국민 애도 기간이 끝나더라도 국민들은 기꺼이 그들의 영전 앞에 국화 꽃 한 송이를 올려놓을 겁니다. 어서 하루빨리 국민들이 아무런 의구심 없이 애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