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적 가치에 관심 기울어야
내면적 가치에 관심 기울어야
  • 취재부
  • 승인 2005.12.04
  • 호수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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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대중 매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몸값’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예전에 노예에게나 사용되었을 법한 단어가 이제는 최대한 높여야한 하는 일생의 목표로서 자리 잡았다. 사람마다 다양한 능력과 인성과 같은 값으로 평가하기 힘든 가치에 화폐의 단위를 부여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 가고 있으며,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현대 사회는 실로 ‘못하는 것이 없는 사회’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으며, 자본주의는 모든 것에 값을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가치 체계를 정립한 현대인들은 자본을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며 자본을 추구한 결과 현대인들은 현재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에 바탕을 둔 가치 체계 때문에 현대인들은 풍요로움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돈이 될 수 있는 것’많이 가치있게 여겨지는 와중에, ‘돈이 될 수 없기’에 버려지는 것들이 진정한 가치를 내재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돈’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있다. 존경심, 우애, 우정, 배려심 등 우리 마음의 덕이 되어야 할 여러 윤리적인 것들이 너무 바쁘고 돈이 될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둘러싼 의혹들을 계기로 윤리에 대한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여기서 우리는 황우석 박사에 대해서 비난을 하거나 그를 옹호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그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윤리적 의식이 약해졌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황우석 박사 사건을 계기로 한 기관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생명관련 실험을 하는 많은 실험자들이 윤리적인 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연구에 관련하여 어떤 윤리규범이 있는지도 모르는 연구원들도 있는 것으로 조사 되어졌다.

 이것은 생명에 관련한 실험들을 하는 사람들에 제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윤리는 이제 너무 고리타분하고 나약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또한 한때 우리 조상님들이 ‘덕’이라고 부르고 지켜야 한다고 여기던 가치들을 간과하고 살고 있다. 그런 가치들을 지키기에는 너무 바쁘고 피곤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윤리적인 가치들은 과거에 말하던 그것과는 다르다. 현대에 맞추어진 현대인들이 지킬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물론 그런 것들을 지키지 않고도 돈을 많이 벌수 있고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그러나 그 얼마나 허전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보자. 아무리 많은 부를 가지고 명성을 가졌다고 하자. 그래도 존경하는 사람도 없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가 가진 부와 명성을 쌓는데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일을 했다면, 얼마나 마음이 공허한 삶이 될까 생각해 보자.

 이런 의견이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없나 한번 둘러보자. 부모님의 지친 손을 보지 못했나, 사랑하는 사람의 쓸쓸한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나, 어렵게 계단을 올라가시는 어른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나 한번 생각해보자.

조금만 더 내면적인 가치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만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좀 더 포근하고 인정 많은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다연<언정대·광고홍보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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