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맹목
당신의 맹목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4.03
  • 호수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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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교육과학중심의 경제도시’로 수정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격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간에 상이한 입장 차이를 서로 설득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의 단호한 판단만 내리려 함으로써 첨예한 대립은 날로 격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토론과 논의 없이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어떤 것이 옳든 간에 상대를 설득시킬 수 없다거나 상대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적어도 현실 정치에서 그것은 옳은 일이 될 수 없다. 여당 내에서 벌어지는 원안과 수정안의 갈등이 폭력적인 것은 그 이면에 정치권력의 파워 게임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어떠한 타협의 노력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타협하지 않는 주장이나 설득의 노력이 없는 힘은 일방적인만큼 폭력적이다.

지난 겨울. 졸업식 뒤풀이는 결국 ‘사건’이 되고 말았다. 가학적이고 충격적인 졸업식 뒤풀이 영상이 인터넷을 달구면서 경찰이 개입되고 결국 ‘사건’이 되고 말았다. 관련 학생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관행이고 전통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온 사회가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그 충격의 심층에는 옷을 벗기고 케첩을 뿌리고 물에 빠뜨리고 알몸으로 얼차려를 시키는 등의 선정적인 영상과 음란한 판타지 그리고 그러한 폭력에 노출될지도 모르는 자녀들에 대한 염려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왜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 누구도 어처구니없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전통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반항적이고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되는 그 또래의 학생들이 그토록 일사분란하게 일방적인 폭력을 묵인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사고와 판단에 의한 자기만의 의견보다는 획일적인 전체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기형적인 입시제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평가 받아온 학생들에게 합리적 판단이나 객관적 사유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 객관식에는 선택을 강요할 뿐 그것에 대한 의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의문이 허용되는 순간 문제의 권위는 붕괴된다. 세종시 논란이 안타까운 것은 다른 어떤 의견도 허용하지 않고 보스의 판단에 따라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양측의 일사 분란한 선택이 또 다른 맹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백성이 근본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다양하고 숱한 백성들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 서로 다른 것들이 존중되는 가운데 끊임없이 타협과 설득의 과정이 있다는 의미다. 타협과 설득이 없는 주장은 졸업식 뒤풀이처럼 가학적인 폭력이거나 극단적인 파시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어떠한 의문이나 이의 없이 졸업식이 끝나면 뒤풀이를 해야 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당했듯이 후배들에게 해주면 그뿐이라는 단호한 맹목, 그 맹목이 졸업식 뒤풀이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읽히는 ‘지금 이곳’의 맹목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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