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운동의 딜레마에 놓인 학생 선수들
공부와 운동의 딜레마에 놓인 학생 선수들
  • 차진세 기자
  • 승인 2010.03.13
  • 호수 13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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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운동선수’ 정책 추진… 엘리트 체육과 겹쳐 이중고

지난 5일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폐막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수로 종합 5위, 메달 전체 개수로 종합 7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메달을 따낸 선수들 뒤에는 초ㆍ중ㆍ고ㆍ대학교를 거치며 훈련에만 집중해온 ‘엘리트 체육’의 시스템이 있다. 실제로 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 대부분이 아직 고등학교나 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들이다. 간혹 경찰, 교사 등의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도 있는 외국과는 많이 다른 광경이다. 물론 외국에도 학생 운동선수도 있지만 대부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엘리트 체육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선수 육성 시스템은 학교에 다니는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중ㆍ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선수는 학교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회가 평일에 열리는 경우가 많고 훈련 스케줄 또한 수업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선수들의 학업성적이 하위권에 놓이는 현상과도 연결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중학교 학생선수의 75%, 고등학교 선수의 97.8%가 학업 성적이 하위 2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각종 조치를 내놓고 있다. 작년부터 초ㆍ중ㆍ고 축구리그는 주말리그 제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올해는 야구리그 및 대학 축구리그에도 주말리그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정상민<교육과학기술부ㆍ학생건강안전과> 과장은 “초ㆍ중ㆍ고 축구주말리그의 경우 지도자 및 학부모의 80%가 찬성하고 있다”며 “주말리그제와 더불어 지역별 리그제(홈 앤 어웨이제), 운동선수의 쳬육계열 진학 의무화 등도 시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운동선수에게 일정 학점 이상 취득해야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세우고 수업 참여를 의무화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학교는 대회 성적을 학점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운동부 선수들끼리 전공수업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건국대는 한발 더 나아가 교양수업까지 운동부 선수들끼리 듣도록 하고 있다. 한편 연세대는 △체육특기자 선발에 수능 최저등급 적용 △운동선수 전담 학사관리사 운영 △일대일 학습 등의 정책을 통해 일반학생과 운동선수와의 학업적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학생 운동선수에게 ‘학업’과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도록 강요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학교 배구부 안요한<생체대ㆍ체육학과 09> 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하는 대학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며 “전공수업은 운동부끼리 듣고 교수가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는 데 비해 교양수업은 그런 배려가 없어 학점을 따는 데 불리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세대 운동선수 A는 “훈련의 강도는 줄지 않았는데 수업의 부담까지 겹쳐 숙소를 이탈한 적이 있었다”며 “엘리트 체육을 비판하지만 되레 학업성적과 대회성적을 모두 요구하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김기태<체육부실> 직원은 “우리나라는 프로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면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프로 구단 진출을 목표로 삼는 대학운동 선수들에게 학업 수준까지 요구하는 것은 자칫 희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김 직원은 “운동선수에게 학업적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며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와 프로로 진출하지 않을 선수를 구분하여 학업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프로리그에 진출하는 학생 선수의 비율은 높지 않다. 작년 8월에 열린 프로야구 2010년 신인 선수 지명 회의(드래프트)에서 8개 구단은 749명의 신청자 가운데 10.1%에 불과한 76명만 뽑았다. 프로구단이 고졸 선수를 상대적으로 선호하기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한 선수로 대상을 한정하면 그 비율은 더 낮아진다. 고하은<체육과학연구원ㆍ정책개발연구실> 연구원은 “입단 후 언제든지 방출될 위험이 있는 프로스포츠의 특성상 지명된 선수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근 몇 년을 기점으로 금메달 지상주의, 선수 인권 침해 등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체육의 문제를 비판하고 생활체육으로 체육정책의 방향을 수정하는 과정이 이뤄지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엘리트 체육의 실적지상주의가 개선되지 않아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건국대는 작년 일반 학생과 운동부 학생의 동등한 교육을 요구하는 학부모의 항의에 엘리트 운동부를 해체하고 사회체육 중심으로 재편하려다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또 프로 지망생과 비지망생에게 일률적으로 동일한 학업량을 요구하는 것도 동일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김 직원은 “어릴 때부터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의 종류가 많고 대학스포츠의 인기 또한 높은 외국의 학업병행제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무리”라며 “사회체육의 저변확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체육 및 학원체육을 효과적으로 활성화시킨 일본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일반 학생의 스포츠 활동 참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1989년에 운동부 활동을 교육과정으로 인정하자 7년 뒤 일반 학생의 스포츠 활동 참여율이 중학생 74%, 고등학생 49%로 높아졌다. 현재 일본은 4천여 개에 이르는 고교 야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팀 수가 50여 개에 불과한 우리나라 고교 야구 실정과는 대조되는 현상이다. 고교 야구 외에도 사회인 야구ㆍ수영ㆍ볼링 등 사회체육 기반이 완비돼 있어 프로스포츠로 대표되는 엘리트 체육과 사회체육이 상호 보완하는 효과를 낸다.

고 연구원은 “마지막까지 성공한 1% 이외의 99%의 학생선수들이 1%를 위한 소모품이 돼서는 안된다”며 “프로 선수로써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는 없더라도 운동선수들이 언제라도 사회인 및 사회체육인으로써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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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11:02
이 글은 엘리트 체육의 시스템과 운동선수들의 학업권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리면서도 학업과 운동 병행의 어려움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운동선수의 권리를 보장하고, 대학에서는 학업과 운동을 동시에 고려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지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사회체육 정책을 모범사례로 들어 학업과 운동의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