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를 시작하는 시간 앞에서
나의 역사를 시작하는 시간 앞에서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3.06
  • 호수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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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영<사범대·국어교육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명문가의 고택들이 꽤 많이 보존돼 있다. 경북 영양에 있는 조지훈 시인의 종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의 고택, 해남에 있는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경북 안동에 있는 성애 유성룡의 고택,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의 고택, 그리고 강릉의 선교장 등. 역사나 문학에서 한 번은 들어보았을 이름들의 집이다.

우리 학과의 주요 행사인 학술답사 덕분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고택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전공의 수혜를 톡톡히 본 셈이다. 종택이나 고택을 둘러보면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그 중 하나는 적어도 몇 백 년의 전통을 가진 이러한 고택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명문가 이야기>를 쓴 조용헌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용헌은 현재까지 고택들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을 연구하면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역사성, 도덕성, 인물이다. 고택을 유지하는 가문은 역사의식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는 점, 또한 집안 나름대로의 철학과 신념을 지닌 점, 마지막으로 과거와 현재에 걸쳐 인물들을 배출하는 교육에 열성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속도와의 전쟁에 있는 디지털 시대에 길게 고택 운운한 것은 바로 오래된 공간에 ‘쌓여진 시간’ 때문이다. 신학기를 맞이하는 지금, 특히 새내기들을 맞이하면서 오랜 시간을 떠안고 있는 고택의 울림을 전하고 싶다. 고택의 시작은 한 가문의 사적인 생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장소는 오늘날 전통적 문화의 공간으로 우리 앞에 개방되고 있다. 그 고택을 유지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명예와 역사성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택의 시작 또한 매우 치밀한 준비와 노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 집안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택지를 선택하고, 목재를 구하고, 집안의 가풍을 담은 설계로 완성해야 하는 것에는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집이다. ‘나’를 내력이 깊은 고택으로 지을 것인지, 잠시 머물다 재건축을 해야 하는 집으로 지을 것인지는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다. 무엇이 ‘나’를 고택이 지닌 역사성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인물로 살아가게 할 것인지는 각자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새내기들은 이제 새롭게 ‘자신의 역사’를 시작하는 시간 앞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나의 역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이다. 명문가의 공통점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 역사의식과 시민의식을 키우는 것, 우리의 삶의 철학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제도권 밖에서도 우리를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하자. 새 학기는 모두 들뜬 분위기 속에서 보낸다. ‘나’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의 하루하루는 우리 역사의 한 켜가 되는 소중한 날들이다. 우리들은 모두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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