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산타가 만든 크리스마스의 기적
‘진짜’ 산타가 만든 크리스마스의 기적
  • 안원경 기자
  • 승인 2009.12.31
  • 호수 13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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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아이들과 함께한 따뜻한 성탄절

다사다난했던 2009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선물을 전달했던 이들의 성탄절은 매년 연인, 가족과 보내왔던 여느 크리스마스보다 특별했다.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며 2009년을 마무리한 이들에게 2010년은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저녁, 직접 집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진짜’ 산타들이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 주변엔 한 사람도 지나가기 힘든 좁은 골목이 어지럽게 이어진다. 한 줌의 여유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한겨울에 부는 매서운 바람을 견디기 위해 조각나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벽을 막고 있었다. 간신히 바람막이가 돼 주는 벽엔 문패 대신 어설프게 집주인이 주소를 적어 놓은 종이가 붙어있다. 이곳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흘러나오는 화려한 불빛도 없었고, 거리에 울리는 캐롤도 들리지 않았다.

어두운 거리를 지나 아동복지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60여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손을 놀리며 선물을 포장하고 있다. 앳된 얼굴에 교복을 입고 있는 고등학생, 업무가 끝나자마자 바삐 달려온 직장인, 분주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자를 전해주는 아주머니까지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양하다.

이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공통점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송파시민연대에서 주최하는 ‘몰래 산타’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몰래 산타란 지역 주민과 지역 단체에 후원을 받아 자원봉사자들이 산타가 돼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사회 취약 계층 아이들을 찾아가는 활동이다.

참여자는 몰래 산타가 되기 전 ‘산타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해 크리스마스 캐롤, 마술 등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정지윤<송파시민연대> 사무국장은 2년 동안 몰래 산타를 진행해오고 있다.

“몰래 산타가 찾아가는 곳은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이에요. 평소에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없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몰래 산타’를 진행하고 있어요. 몰래 산타 참가자 중 다수는 일회성 자원봉사활동에 그치지만 몰래 산타를 계기로 지속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분도 많아요.”

9개 조로 구성된 몰래 산타들은 아이들에게 전할 선물을 확인한 뒤 혹시라도 아이들이 산타가 아니라고 의심할까 조바심 내며 산타분장에 분주하다. 바삐 움직이는 그들의 손과 상기된 얼굴에서 들뜬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수많은 산타들 중 기자에게 자신도 한양대를 다니고 있다며 소개하는 우리학교 학생 이호연<경영대ㆍ경영학부 02> 군을 만났다. 이 군은 매년 몰래 산타에 참여해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진짜 산타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웃집 형이나 누나가 산타가 돼줄 수는 있잖아요.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텅 빈집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저에게도 연인과 보내는 크리스마스보다 특별한 추억이 되기도 해요.”

각자 조별로 모인 산타들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노래를 간단히 연습했다. 노래도 율동도 조금은 어설픈 아마추어지만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겠다는 마음만큼은 프로다. 산타들은 큰 주머니에 선물을 담고 부푼 마음을 안은 채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길거리에 몰려나온 산타들의 등장은 사람들의 동심을 자극했고 사람들은 산타들을 향해 유쾌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기도 한다.

거리를 걷던 산타들은 첫 번째 선물을 줄 민수(가명)네 집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산타들이 “민수야 놀자”라고 크게 외치니 불 꺼진 집안에 밝은 불이 들어온다. 갑작스런 산타의 방문에 놀란 아이는 엄마 뒤에 숨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산타들을 보고 있다.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고 있다는 김윤심<서울시ㆍ강동구 50> 씨가 수줍어하는 민수에게 먼저 다가간다. 김 씨가 준비해 온 마술 도구를 꺼내 아이에게 마술을 보여주고 기다란 풍선을 불어 풍선 칼을 만들어주자 긴장했던 민수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김 씨 역시 마술을 보여주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아이들을 찾아왔어요. 매년 이 행사에 참가하는데 눈을 반짝이며 제 행동 하나, 손동작 하나에 눈을 떼지 않는 아이들을 잊을 수 없어요.  저는 선물을 주러 왔지만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로 인해 오히려 제가 더 큰 선물을 받아가는 것 같아요.”

몰래 산타들이 집안에 들어서자 냉랭했던 집안엔 온기가 돈다.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는 남루한 살림살이와 좁은 집은 아이와 엄마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말해준다.

▲ '몰래 산타'들이 지난달 24일 소외된 아이들을 찾아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하고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사진 최서현 기자
민수가 “산타할아버지”라고 크게 소리치자 검은 머리를 수염과 모자로 미처 숨기지 못한 산타가 커다란 주머니를 들고 들어온다. 긴장한 산타는 연습했던 노래 가사를 잊어버려 계속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부르고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붙인 수염은 자꾸 떨어져 어설프기만 하다. 이런 산타의 어설픈 모습에도 즐거워하던 민수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에 보답하기위해 앞으로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며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민수를 뒤로 하고 다른 아이에게 선물을 전달하러 가는 길, 몰래 산타에 같이 참가한 부부의 꽉 잡은 두 손을 보자 마음이 뭉클해진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참가했다는 부부, 아이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동행한 중년 아주머니, 몰래 산타 데이트를 통해 더 가까워진 연인,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선물 보따리를 나르던 루돌프 아저씨가 캐롤을 부르며 지나가자 한겨울 추위가 그대로 느껴지던 골목에 따뜻함이 퍼지는 듯 하다.

몰래 산타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며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닿지 않아 회색빛이었던 곳에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2009년 크리스마스를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사랑을 전했던 이들이 ‘진짜’ 산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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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15:07
이 글은 2009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몰래 산타들로서 아이들에게 선물과 사랑을 전달한 이들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감동적입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사회 취약 계층의 아이들을 위해 노력한 참가자들을 보면서 희망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런 자선 활동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사랑의 실천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이러한 따뜻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