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정신으로 투쟁 이어간다
전태일의 정신으로 투쟁 이어간다
  • 안원경 기자
  • 승인 2009.11.15
  • 호수 13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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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 39주년 추모제 풍경
 늦가을 비가 내린 지난 13일 아침, 사람들이 한 병원 정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유난히 쌀쌀한 날이었지만 사람들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이들은 모란공원에서 진행하는 39주년 전태일 열사 추모제를 참여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모란공원은 민주화 운동과 노동 투쟁을 하다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들이 추모제에 참여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다.

한 어머니는 전태일을 민주화 운동을 하다 죽은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한 할아버지는 같이 일했던 친구 전태일을 추억하기 위함이다. 매년 전태일 열사 추모제에 참여한다는 한 여성은 “자신도 평화시장의 여공이었다”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뒤 자신도 지속적으로 노동운동을 했고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후대에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윽고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라는 푯말이 붙은 버스가 도착했다. 차에 오르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부터 대학생, 베레모를 쓴 중년 아저씨, 엄마를 따라온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보였다.

두 시간을 달려 모란공원에 들어서자 낯익은 이름의 묘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문익환 목사, 많은 이들에게 민주화 항쟁의 불씨를 집혔던 이한열, 박종철 열사의 이름이다. 그들의 묘지 앞에 놓인 시들지 않는 꽃은 빛바랜 사진의 세월을 무색케 한다. 공원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전태일 묘지를 찾아가자 ‘열사 정신계승, 진보시대 만들어가겠습니다’, ‘전태일 정신으로 오늘의 위기를 타파하자’라고 쓰인 글귀가 눈에 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는 빗물이 떨어지는 전태일의 동상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 낸다. ‘비정규직 철폐’라고 적힌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동상 앞에 서니 39년 전 그가 평화 시장 앞길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자에게도 인권을 달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박계현<전태일 재단> 사무총장은 “당시 전태일 열사는 옷 안에 솜을 넣고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려 더 잘 타오를 수 있도록 했다”며 “청와대와 정부에 근로조건 개선을 끊임없이 청원했으나 근로 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마지막 수단이었던 분신을 택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추도식은 투쟁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를 부르며 시작됐다. 추모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담담하지만 강한 어조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 할머니는 한손에 지팡이를 짚고 완전히 일어서지 못한 채 노래가 나올 동안 아들의 무덤을 응시하고 있다. 한쪽에선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TV에서만 보던 유명 진보 정치인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느라 정신없다. 이전까지의 엄숙한 분위기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자신을 민주시민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전태일 열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추모식에 참여했다”며 “이기주의가 팽배해 노동운동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지금, 전태일 열사가 조직했던 ‘바보회’에서 추구했던 진정한 바보의 의미와 순수함을 되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여러 노동투쟁단체와 유명 정치인의 추도사가 끝난 후 이 할머니가 힘겹게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이 할머니는 노동투쟁단체와 정치인을 향해 “여기 누워있는 사람들의 목숨 값이 우습냐”며 “민주화와 노동운동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해서 분열되지 말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며 강하게 나무랐다.

어머니의 강단있는 성품이 노동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전태일에게 그대로 전해진 듯하다. 전태일은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아이들이 가여워 자신의 차비를 털어 아이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세 시간되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고 한다. 박 사무총장은 “전태일 열사의 결단있는 행동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투쟁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애ㆍ결단ㆍ실천ㆍ헌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했다. 추모식이 다 끝나고 공원을 나오는 길, 하늘도 불꽃처럼 살다간 그의 짧은 인생을 위로하는 듯 가을비가 연신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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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18:09
이 글은 전태일 열사의 추모제를 통해 민주화 운동과 노동 투쟁에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모제에 참여하는 이유와 전태일 열사의 희생적 정신이 인상적입니다. 노동자들을 위해 전태일이 보여준 연민과 사랑의 정신은 감동적입니다. 투쟁의 중요성과 인간애, 결단, 실천, 헌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