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의 토론 문화
대학에서의 토론 문화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11.08
  • 호수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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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근 우리나라의 대학은 거의 완벽하게 시장 원리에 종속된 듯한 느낌을 준다.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고 생산하는 장으로서의 직분과 의미보다는, 매우 특수한 가치 가운데 하나인 ‘환금성’에 사로잡혀버린 것이다. 물론 인간의 존재 조건 가운데 ‘자본’의 원리와 욕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대학은 바로 그 원리와 욕망이 어떻게 생성되고 전개되고 관철되는가를 묻고 성찰하는 ‘비판적 이성’의 보루로 존재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의 우리 대학은 이러한 자본의 원리와 속성에 대한 성찰 대신 그것의 끝없는 증식을 궁구하고 실천하는 전위에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우울한 판단에는 최근 불어 닥친 졸업생 취업난이라는 현실적 요인 말고도 ‘비판적 이성’을 반납해버린 대학 구성원들 사이의 수평적 의사소통 시스템 부재도 그 분명한 이유로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상대의 의사와 생각을 타진하고 서로 소통하는 토론 문화 역시 그 힘과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최근 대학은 취업지상주의나 경제 논리의 일방적 우위에 따라 현저하게 교양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됐다. 이에 따라 개인주의의 분위기가 커졌고, 공동체 문화의 한 형식인 토론 문화는 명분의 중요성과 관계없이 그 필요성이 격감했다. 최상의 수행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취업 논리는 대학을 삶의 현장이 아닌, 그 현장으로 나아가는 단계적이고 한시적 교량쯤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오히려 서로간의 무관심으로 토론 자체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대학 사회의 무기력을 키우고 있는 듯한 분위기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과 의식이 많이 신장됐고, 대중매체의 영향력도 정치권력의 그것에 비해서 전에 없이 커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사 교환과 결정 방식의 변화를 불러오는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 구성원들끼리 자신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 형식 그리고 실천 형식에 대해 고민과 힘겨운 모색을 벌여가는 것은, 시대의 추이에도 부합하면서 동시에 대학의 근원적 존재 이유와도 맞닿게 된다.

하지만 대학생들에게 문제되는 것은 토론의 빈곤이 아니라, 토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혼란에 있는 듯이 보인다. 토론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확인하고 비교하는 형식이 아니라 상호 상승하면서 새롭고 더 나은 의견을 도출시키는 생산적 과정이다. 그 점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할 만반의 준비가 된 상황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각종 공청회나 심포지엄은 ‘토론’이라 하기 어렵다. 또한 상대방을 설득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하고, 그것이 안 되면 결렬시키려는 태도도 토론에 임하는 그것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삶의 중요한 국면마다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순간들을 맞곤 한다. 일정한 논쟁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게 민주주의의 기율을 가르쳐주는 행위 양식으로서의 토론을 통해 우리는 ‘화자ㆍ청자’ 혹은 ‘지시자ㆍ수용자’가 아닌 수평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열린 타자들의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그 열린 타자들과 함께,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체감으로 불어 닥친 위기를 견디며 대학 본연의 위상을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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