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 비우기
휴지통 비우기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11.08
  • 호수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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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린 비로 베란다 창문에는 여기 저기 빗방울이 촘촘한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간의 먼지는 씻겨 진 듯 옥상 저 멀리 하늘 속에서 이지러진 구름들이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있는 듯하다. 시선이 명확하다. 내 마음도 저 하늘 너머 청량한 저 빛과 같으면 좋으련만…. 이지러진 구름들이 나와 함께 친구하자며 다가오는 듯하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니 심란하단 표현이 더 맞겠다. 창문안쪽에서 널 부러진 재활용 쓰레기 더미가 내 마음 한 켠을 더 누르고 있는 듯하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순간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토요일, 재활용이 날이다. 게으른 육체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으나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는 널 부러진 재활용 쓰레기를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막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엄마는 무거운 것, 찬준이는 가벼운 것.”
“찬준아 뛰면 안 돼, 넘어지면 아야 해.”
“넘어지면 안 되니까 조심해서 잘 걷고 뛰면 안 돼.” 잉잉거리며 짧은 다리를 팔짝 거리고 달려오는 아들 녀석이 걱정스러워 멀지 않은 재활용장소까지 몇 번을 쉬고 갔는지 모르겠다. ‘종이는 종이대로, 페트병은 페트병대로, 병은 병대로, 미리 정리해서 왔으면 쉽게 끝났으련만.’ 라는 생각으로 하며 혼자 투덜대며 재활용 작업을 한다. “웬 맥주병이 이리도 많나? 그래도 삼주분량이니까.” 맥주병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3살짜리 막내아들 녀석과 재활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베란다를 바라본다. 조금 전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흔적은 이내 사라지고 없다. 순간 생각 한 조각이 나의 뇌리를 스친다. ‘그래, 비우니 가볍구나.’

재활용장에서 돌아올 때의 가벼움. 집에 돌아와서 텅 빈 베란다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삶의 가벼움. 이건 과연 무엇일까? 그간 나를 누르고 있었던 내 마음의 짐들. 재활용 폐품들. 그 것들도 이내 버리고 나면 가벼워지고 상쾌해지리라. 그래. 이번에는 내 마음속과 내 머릿속에 널 부러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자. 버리고나니 가슴이 시원해지는구나. 돌덩이가 누르던 머리도 이젠 상쾌해지는구나. 인생에서도 가끔씩은 휴지통 비우기를 해줘야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이 이런 것들이리라. 인생의 깊이를 알아가게 되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진다는 것. 아름다운 나이로 아름답게 늙어져가는 나의 인생을 그리며 한번 웃어보자. 당신, 오늘은 휴지통 비우기 안하셔도 되겠습니까? 꽉꽉 채워지기 전에 버리세요. 상쾌함이 당신과 함께 할 겁니다. 나에게 보내는 휴지통 비우기.    
     이은애<안산배움터 학생생활관ㆍ운영팀>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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