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10.31
  • 호수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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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경연대회로 가슴 속 영원히 자리잡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이 가을 한 번쯤 들어본 노랫말이다. 유재하<작곡과 81> 동문의 노래들은 왁스, 나얼 등 후배 가수에 의해 여전히 리메이크되고 각종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하지만 정작 그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한편 지난 주말엔 ‘제20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또 한 번 늦가을의 교정을 물들였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유 동문을 되돌아봤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가다
유 동문은 지난 1981년 우리학교 작곡과에 입학했다. 순수음악을 중시하는 당시 음대에서 그는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은 독특한 학생이었다. 그는 작곡ㆍ작사는 물론 편곡과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드럼 등 대부분의 악기에 능통했다.

그와 절친했던 동기 A는 “재하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교성 좋은 친구였다”며 “워낙 착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고 흥분하거나 화내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또 “음악에 대해서도 자기주장을 하는 일이 없었지만 재하는 엄청난 양의 음악들을 듣곤 했다”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입학 전 이미 전문가 수준의 내공을 지녔던 것 같다”고 전했다. 유 동문은 4학년 때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가요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 대중음악분야 아르바이트를 반대해 2달 여 만에 그만둬야 했고 대학 졸업 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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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년 3월엔 클래식의 화성학과 다양한 악기의 음색 등을 적용해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했지만 ‘음정이 불안하다’는 등의 이유로 수차례 심의에서 반려됐다. 음악평론가 나도원 씨는 “기존의 대중가요와는 다른 시도를 한 유재하의 노래가 당시 심사위원들에겐 이질감을 줬던 것 같다”며 “이밖에 이문세와 함께한 작곡가 이명훈 등 80년대 후반은 색다른 느낌의 작곡가들이 특히 많이 등장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또 “이같은 활동들은 결국 대중음악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주춧돌이 됐다”며 “곡의 완성도 또한 높아지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그해 여름부터 서서히 음악성을 인정받아 인기차트에 오르기도 했던 유 동문. 그러나 같은 해 11월 1일 그는 음주운전을 하던 친구의 차에서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못다 핀 그의 열정 음악경연대회로 남다
유 동문의 이른 사망 후 그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장의 앨범으로도 그의 음악성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가족, 지인을 비롯해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힘을 모아 유재하음악장학회를 결성했고 1989년 11월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열었다.

유 동문의 친형 유건하<유재하음악장학회> 대표는 “사랑하는 재하는 꿈을 못다 이뤘지만 그만큼 후배들에겐 양질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며 “경연대회를 통해서 좋은 뮤지션을 배출해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튼튼한 기반을 다지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생 대상의 여타 가요제들과 달리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대중음악계의 콩쿨로 일컬어진다. 노래의 흥행성과 인기보다는 음악인의 순수한 △예술성△음악성△작품성 등을 주요 심사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작곡, 작사, 연주, 노래 등 일체의 작업이 개인 또는 팀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곡의 화성과 전개, 가사 등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기에 음악계의 신춘문예로도 불린다.

나 씨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타 가요제에 비해 수상 기준이 명확해 다재다능한 수상자들이 다수 배출된다”며 “이들은 가수 뿐 아니라 작곡가, 프로듀서 등 다방면으로 진출해 실력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음악경연대회 출신 아티스트로는 조규찬, 유희열, 정지찬, ‘더 필름’, ‘은휼’, ‘스윗소로우’ 등이 있으며 작곡ㆍ작사가나 편곡가로는 심현보, 방시혁, 나원주, 박인영 등이 있다.

제13회 동상 수상자이자 가수 ‘더 필름’으로 활동 중인 황경석<신문방송학과 97> 동문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순수하고 보수적인 면이 매력”이라며 “유희열, 김광민, 김민기 등 역대 수상자들이 자부심으로 노 개런티 심사위원을 맡고 있고, 상업적 요소를 최대한 지양하기 위해 방송사의 협력 제의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련한 그의 숨결 후배들 가슴엔 영원하다

황 동문은 “유재하는 내 음악 인생의 어머니”라며 “중1때 처음 CD를 산 게 그의 앨범이었고 마치 김소월의 시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싱어송라이터들은 지난 7월 ‘더하고 나누기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조규찬, 정지찬, 이한철, 스윗소로우 등 26팀 총 34명의 아티스트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공연 수익 전액은 유재하음악장학회에 기부했다.

콘서트에 참여한 제15회 금상 수상 가수 은휼은 “유재하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감성으로 곡을 쓰게끔 하는, 존경하는 뮤지션”이라며 “‘더하고 나누기’는 이제 우리 힘으로 후배 양성을 돕자는 생각에서 역대 수상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라고 전했다.

한편 신인 아티스트들은 ‘원효로1가 13-25’라는 하우스 콘서트를 열고 있기도 하다. 이 공연은 은휼과 밴드 ‘미틈’의 멤버 김진춘, 인디 아티스트 김동규가 함께 사는 집에서 매달 열리며 게스트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싱어송라이터들이 출연해 우애를 다진다.

최근 가수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유 동문을 그리는 마음을 「Fan」, 「11월 1일」에서 드러낸 바 있으며 가수 이소라, 김태우, ‘스윗소로우’ 등이 개최한 ‘좋은콘서트-시월에눈내리는마을’은 유 동문의 기일 전후로 열려 「사랑하기 때문에」가 엔딩 곡으로 울려 퍼지기도 했다.

그가 떠나고 강산이 2번 바뀌었지만 유 동문의 뿌리는 더욱 깊고 넓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는 국내 싱어송라이터의 역사가 된 그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유다. 그는 갔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사진 박효은 기자
사진제공 : 은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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