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마! 당신을 체포 한다”
“꼼짝마! 당신을 체포 한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09.19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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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요인부터 현실성까지, 수사드라마를 해부하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형사들이 현장으로 출동해 수사를 시작하지만 제대로 된 목격자도, 결정적인 단서도 없다. 몇몇 용의자들을 심문해도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형사들은 수사를 원점으로 돌린다. 처음부터 다시 퍼즐을 맞추다 보니 새롭게 떠오른 유력한 용의자도 생긴다. 수사 도중, 결정적 증거가 우연찮게 발견되고 사건은 종결된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사드라마의 전형적 이야기 구조다. 수사드라마는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지만 매 회 주인공들의 사연 또는 다양한 볼거리를 넣어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한다. 매력적인 주인공들과 화려한 액션, 감동 혹은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결말에 빠진 시청자들이 수사드라마 ‘폐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성공한 수사드라마들의 요인
지상파 방송국은 물론 수많은 케이블 방송국이 있는 미국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드라마가 방송된다. 그런만큼 장르도 코미디, SF, 멜로, 스릴러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형사 혹은 수사요원이 주인공인 수사드라마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재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수사드라마는 「CSI」, 「NCIS」, 「멘탈리스트」다. 이 드라마들은 미국 본토에서 지난 시즌 드라마 시청률 1ㆍ2ㆍ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멘탈리스트」의 경우, 같은 방송국ㆍ같은 시간에 방영됐던「NCIS」의 혜택을 받아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3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보였다. 미국에서 수사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은 다양한 수사드라마들이 ‘범죄사건 해결’이라는 큰 틀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세세한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톰비트’라는 필명으로 미국드라마에 대한 포스팅을 통해 2008 파워블로거에 선정된 임진오 씨는 “형사들이 직접 발로 뛰며 범인을 잡는 정통파 수사 드라마에 ‘과학’이라는 소재를 덧붙여 논리적인 매력까지 더한 「CSI」이후 다양한 종류의 수사드라마가 나왔다”며 “요즘엔 「NCIS」처럼 ‘해군’에 관련된 사건만 다루는 특이한 단체를 배경으로 하거나 과거의 미해결 사건만을 수사하는 「콜드케이스」, 최면이나 심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멘탈리스트」처럼 좀 더 구체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수사드라마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지만 수사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는 장르를 가진 드라마 수는 적은 편이다. 형사나 수사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는 있지만 그들의 생활을 온전히 다룬 드라마는 드물다. 하지만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수사반장」부터 잠시의 과도기를 거친 후 한국형 수사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준 「히트」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수사드라마의 제작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그 중 「히트」는 ‘한국형 수사드라마의 절충 답안’이라는 평단의 찬사는 물론 시청률도 높게 나온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직 몸만을 사용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범죄의 범인만을 잡던 지난날 우리나라의 수사드라마와는 달리 국제적 갱단의 음모를 파헤치고 헬기는 물론 온갖 첨단 장비를 이용해 범인을 추격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땀 냄새 풀풀 풍기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빠지지 않는다.

강명석<매거진t> 기획위원은 “「히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미국드라마로 단련된 시청자들의 ‘볼거리에 대한 욕망’을 과학적 수사 장면을 통해 충족시켜 주면서도 우리나라의 정서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수사는 직접 뛰어가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만족시켜 주고 단순한 정의감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나 생계를 위해 수사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미드 vs 한드, 수사드라마의 차이

「히트」가 우리나라의 정서를 고려해 드라마를 만들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드라마를 보면 각 나라 국민의 정서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와 미국의 수사드라마도 이야기 구조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크게 드러나는 차이점은 바로 ‘공과 사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같은 직장 내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로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사드라마 대부분은 항상 주인공들끼리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결국 연인으로 발전한다. 「히트」에서도 검사 김재윤과 강력수사팀 팀장이었던 차수경이 결국 연인이 되고, 이들이 연인이 됨으로써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나라 수사드라마의 시초이자 전 국민적 인기를 누린 「수사반장」에서도 탤런트 조경환이 맡았던 역할의 형사가 로맨스에 빠지기도 했다. 또 다른 수사드라마인 「달콤한 스파이」, 「경찰특공대」등에서도 주인공들의 로맨스는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반면 미국드라마의 주인공은 애매한 관계는 유지하지만 연인으로 발전되는 경우는 드물다. 5번째 시즌 방영이 확정된 「본즈」에서 주인공 브래넌과 부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둘의 행동은 ‘연인’과 다를 바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너네 혹시 사귀는 것 아냐?”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우린 그냥 파트너일 뿐이야!” 이런 장면은 비단 「본즈」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NCIS」에서도, 「Law & Order」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드라마평론가 오지혜 씨는 “우리나라는 공동체 문화를 중시하고, 또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의 가치를 중요시하기에 같은 집단 내에서 동고동락하는 사이라면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생각한다”며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함께 동고동락하는 관계에서의 로맨스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반면 미국에서는 공과 사가 확실하고 우리처럼 공동체 문화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으므로 ‘우린 그냥 파트너에요’라는 말이 시청자들에게 먹힐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본즈」를 시청하는 우리나라 애청자들로 하여금‘제발 이제 본즈(주인공 브래넌의 별명)와 부스를 연인으로 만들어라!’는 볼멘소리를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현실 같은 수사드라마, 실제와의 차이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수사드라마 「수사반장」이 종영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소재고갈과 모방범죄의 가능성 때문이다. 드라마 기법이 더욱 더 발전한 요즘, 현실과 혼동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수사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범죄기법도 상세하게 설명되는 추세다.

“이 여성은 큰 고통을 느끼며 죽었어. 이 칼이 바로 살해 무기네. 이 날카로운 칼로 이 여성의 배를 헤집었어. 이렇게 말이야.” -「NCIS」중에서

드라마가 너무 현실 같이 만들어지다 보니 모방범죄의 위험성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수정<경기대 대학원ㆍ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수사드라마 중 실제 사건 비슷하게 재연하는 드라마는 해악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범행수법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묘사하는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사드라마도 결국 드라마이기에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례로 ‘CSI효과’를 들 수 있다. CSI효과란 드라마 내에서 과학 수사의 결과가 나오는 기간이나 법정 판결의 기간이 지나치게 짧게 묘사돼 사람들이 현실에서 실제 사건을 겪었을 때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냐”고 투정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과학 수사 결과가 나오는 기간이나 법정 판결은 몇 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드라마에서 이를 지나치게 짧게 묘사해 사람들에게 혼동을 준 것이다.

또 드라마적 효과를 위해 경찰이나 수사요원들이 사용하는 장비들이 실제보다 훨씬 좋은 경우도 많다. 「CSI」에서 극중 과학수사요원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는 드라마를 위한 소품일 뿐, 실제 장비와는 차이가 있다.

「히트」도 실제 주인공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지만 실제와 많은 차이가 있다. 불법 카지노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되는 장면이나 수사 과정에서 총을 사용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히트」에서 강력수사팀 팀장을 맡은 ‘차수경’의 실제 모델인 김화자<서울강동경찰서ㆍ조직폭력팀> 팀장은 “드라마에서는 헬기를 동원해 범인을 추격하지만 실제 헬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실제 검거 과정에서는 안전상의 문제와 피의자의 인권 문제로 인해 총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수사드라마는 의학드라마로 대표되는 다른 전문직 드라마와 달리 가장 날것의 ‘정의’를 쫓는 드라마다.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고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형사들을 지켜보는 당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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