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복무제, 총 없는 평화의 가능성
대체 복무제, 총 없는 평화의 가능성
  • 안원경 기자
  • 승인 2009.09.13
  • 호수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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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협의 거쳐 만들어야”


한 청년이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훈련소에 입소하는 대신 병역거부의사를 밝혔다. 청년이 본 한국사회에서 군인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쫓아냈고, 국민의 목소리를 내는 시위를 탄압했다. 청년은 한국에서 병역을 거부하면 전과자로 낙인찍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국민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청년은 “한국의 국가 권력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에게는 의무만을 강요하고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봉사하고 있다”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 병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가톨릭 신자인 청년의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은 종교적인 이유나 강압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점점 미뤄지는 대체복무제 시행
우리나라는 징병제 국가로 사회 구성원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1년 8개월 동안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과 종교적 교리에 반하는 군사훈련을 받을 수 없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 병역을 이행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복지 시설 등에서 봉사함으로써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게 한 제도를 말한다. 현재도 실질적인 대체복무제에 해당하는 특례 보충역이 있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공익 근무를 하기 전에 실시하는 4주의 군사훈련도 거부한다.

현재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80개국 중 독일, 덴마크, 대만 등 41개국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그들이 가진 신념과 특성 때문에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며 1989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한국에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박찬운<법대ㆍ법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은 국제사회와 국제기구로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도 두 번에 걸쳐 대체복무제의 시행을 권고했다. 하지만 여러 인권단체에서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행을 미루고 있다. 지난 2007년 국방부에선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올해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윤설아<국가인권위원회ㆍ홍보협력과> 직원은 “국가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정부가 사회 각층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역설했다.

양심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
인권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해 평균 6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는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자신의 신념과 평화주의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21명뿐이다.

이들은 살생무기인 총을 들지 않고, 전쟁 또는 무장충돌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가치 추구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상원<언정대ㆍ광고학과 04> 군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양심이 있다”며 “개인의 양심 추구라는 이유로 병역 거부하는 것은 이기심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양심을 헌법의 의미대로 해석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 직원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이 추구하는 양심은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또 평화활동가 여옥은 “대체복무제의 시행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해는 서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체복무제 시행에 앞서 기본권 사이의 충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며 “양심의 자유는 절대적인 기본권으로 어떤 법률적 가치보다 앞선다”고 밝혔다.

대체복무제 시행 국가의 모습
41개국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 중 대만과 독일은 분단과 전쟁 등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어 좋은 비교 대상이 된다.   

독일은 1961년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했다. 현역 복무는 9개월, 대체 복무는 10개월 동안 진행된다. 대체복무자는 대부분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한다. 그 분야는 신체장애자 보호, 병원 엠블런스 운영, 구조봉사보조, 병원 간호보조 등 다양하다. 징집대상자의 50%가 대체복무를 하고 있으며 한 해에 약 12만 명에 이른다. 군 비상시에는 대체복무자도 비상 징집 대상자가 된다.

독일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자는 평화적 목적의 병역거부자보다 1년 더 복무해야한다.
대만은 대체복무제가 환경보호, 의료 등 사회 복지 부분에서 보안경찰, 교통, 순찰, 소방으로 확대돼 징집대상자의 60%를 차지한다. 현역의 복무기한은 1년 10개월이고 대체복무제를 지원한 자는 4개월 더 길게 복무를 이행해야 한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이행하고 분야에 따라 8주간 훈련을 받는다. 종교적, 양심적 이유로 4주간의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자는 현역 복무기한의 1.5배인 2년 9개월 동안 일을 해야 한다.

여 씨는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 나라들이 처음에는 여론을 고려해 복무 기한을 늘려 군복무와 형평성을 맞추려했지만 점차 복무기한을 줄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체복무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인권위는 대체복무제 시행을 위한 권고문에서 △대체복무제와 병무이행의 등가치성을 확보할 것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공정하게 판단할 것 △구제활동, 환자 수송 등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희생정신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것 △현역 복무자와의 형평성을 위해 대체복무기간을 현역복무기간의 1.5배로 할 것을 요구했다.

대체복무제를 두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우려하는 것은 병무이행과의 형평성과 병역기피자와 양심적 거부자를 구별할 수 있는가이다.

한명진<음대ㆍ피아노과 08> 양은 “음악하는 사람들은 2년 동안 악기를 다루지 않으면 실력이 떨어진다”며 “이런 실질적인 이유가 있어 대체 복무를 하지 않는 이상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것은 양심이라 보기 어려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박 교수는 “대체복무제를 수행하는 사람은 군복무를 하는 사람보다 더 힘들고 고된 일을 해야 한다”며 “병역기간보다 길고, 노인요양소에서 간병인 업무 같은 복무를 수행하게 되면 병역기피자도 악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체복무제를 실시하는 국가에서 대체복무자들은 △구제활동 △환자수송 △소방업무 △장애인 봉사 △환경미화 △청소년보호센터 근무 △문화유산 유지보호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여 씨는 “대만에서 처음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때는 쿼터제를 실시했다가 지원자가 줄어들어 쿼터제를 폐지했다”며 “초기에는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사회적 협의 과정을 통해 제도가 수정ㆍ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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