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대학평가의 허와 실
신문사 대학평가의 허와 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9.06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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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선<한겨레교육ㆍ교육컨텐츠팀> 기자의 기고
내 동생은 경북의 한 2년제 대학에 다닌다. 지원할 때 내가 대학 선택을 도와줬는데 그때 유일한 기준은 ‘취업률’이었다. 우리는 그 대학이 취업률 97%라고 주장한 사실을 그대로 믿고 지원을 했고 동생은 합격했다. 그리고 취업 걱정은 안해도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남겨둔 지금 나는 그때의 무모한 낙관을 후회한다. 우선 이 학교에는 취업지원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 방학 때 인턴제도가 있지만 이번에 소개받은 곳에서는 하룻만에 같이 간 친구들 5명 가운데 2명을 잘라버렸다. 문제는 학교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교측에서도 싫다는 기업을 어르고 달래 억지로 학생들을 집어 넣은 모양이었다.  취업률 97%는 체계적인 취업 지원 시스템이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 만일 우리나라에 각 대학들의 취업 지원 시스템을 상세하게 비교 평가한 랭킹이 있다면 내 동생의 20대를 낭비했을까.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대학 평가의 제일 큰 문제는 ‘결과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취업률이라는 평가 항목만 해도 그렇다. 모든 학생들이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하는지 등의 취업 지원 시스템을 상세하게 밝히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돕는 ‘실용적인’ 지표다.

학교가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는데 학생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취업한 결과가 그 학교가 내건 취업률일 수도 있지 않은가? 취업률의 내용을 봐야지 결과만 봐서는 학교 교육의 질을 따질 수 없다.

 교수 논문 게재율이 평가항목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교수의 교육 활동은 논문 게재나 개인 연구활동을 넘어서는 것이다. 교수는 연구자이기 이전에 교육자다. 고등학교까지 획일적인 교육에 물든 제자들을 독려해 한 사람 한 사람이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도록 촉구하는 교육자말이다.

또한 제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의 멘토로 인생 선배로서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지도하는 구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학 평가에 그런 교수의 ‘과정적 교육 활동’을 평가하는 항목이 있느냔 말이다. 교수들이 이런 대학 평가 항목 때문에 논문 게재율을 높이느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활동을 소홀히 한다면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대학 평가인가?

로렌포프의 저서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을 보면 미국의 한 언론사가 발표하는 대학 랭킹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불만이 상세하게 나온다. “교수 연구실에 가면 줄을 서서 기다려도 얼굴 한번 뵙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강의는 주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조교들이 맡는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연구비를 대려고 등록금을 내는 게 아니다.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그들과 대등하게 지적인 교류를 하는 대가로 내는 등록금이 진짜 교육비로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나.

 대학 평가는 필요하지만 지금의 대학 평가는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고 더불어 학부모과 학생의 옳은 선택을 돕는 기준을 마련한다는 본래 취지가 무색하다. 따라서 교육 과정의 내용과 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평가항목을 개발하는 데 더 공을 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취업 지원 시스템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항목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보다 입체적으로 그 학교의 교육 과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대학 교육의 질적 성장이 가능하지 결과만 강조해서는 결과치만 높이기 위한 편리한 술수만 판치게 된다. 

 특히 현재의 대학 평가의 결과가 서열 다툼이 심한 서울에 있는 일부 대학만 ‘독려’하는 것도 문제다. 일부 언론사가 매체 영향력을 앞세워 하고 있는 대학 평가가 모든 학생, 모든 학부모가 선택하는 모든 대학이 경쟁하는 풍토를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2년제 대학은 그들의 평가 대상도 아니다. 우리나라 수험생의 3분의 1은 2년제 대학에 진학하는데 그들을 위한 진학의 기준은 누가 만드나?

 무조건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 평가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들처럼 우리는 지역의 대학들이 전통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고 학과나 전공을 중심으로 대학의 서열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 우리 실정에 맞는 우리만의 지표를 개발해야 하지 않나? 만날 대학 평가를 하면서 미국와 영국 사례를 들먹이며 그들과 어깨를 겨룬다는 식의 자화자찬은 사실 좀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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