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여 분노하라, 희망을 만들자”
“20대여 분노하라, 희망을 만들자”
  • 김규범 기자
  • 승인 2009.09.06
  • 호수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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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언정대·신문방송학과> 교수를 만나다

시대 고민이 없다
몇 달 전, 충대신문에 기고한 ‘너희는 희망이 없다’라는 제목의 글로 행동하지 않는 20대 대학생들을 사정없이 비판했던 그였다. 그래서 20대에게 냉소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만난 그는 오히려 20대가 안타깝다며 애정 어린 걱정을 내보였다.

“20대가 기만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20대는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순응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건 20대는 그런 방법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20대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물론 이 말이 화염병을 던지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은 그런 방법이 통할 리도 없을뿐더러 분명히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희망을 만들자
그가 지금의 현실의 책임을 20대에게만 떠안긴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현 정권과 사회에 대한 책임은 뒤로한 채 유독 20대 대학생만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오해’라고 한다. 그의 비판은 기성세대는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라 20대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란다.

“기성세대가 현실에 순응하고 자본과 사회 구조 속에서 함몰돼가는 기성세대와 사회를 개선해야 하는 게 20대의 역할인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20대 대학생을 비판했다. 물론 20대 중에는 훌륭한 능력, 투철한 시대정신을 갖춘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20대가 소수이며 그들이 담론형성과 저변 확대에 힘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희망이 없다는 말은 절망이 아니라 무망이다. 없는 희망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 희망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사람은 이제 20대다”

‘시작’부터 시작하자
취업난처럼 20대가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않으면서 비판만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주지도 못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그는 발등의 불을 가장 잘 끌 수 있는 건 본인이라고 역설한다.

“20대는 자신들의 현실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당면한 문제인 등록금 인상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20대가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은 기성세대가 주축이 된 시민단체들이다. 지금 교육관련 시민단체 중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다. 당사자인 20대가 나서서 요구해야 한다”

지금은 20대의 조직화가 힘들어서 많은 여론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사회적 관심 자체가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작은 움직임도 중요하며 우선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2003년에 서울광장에서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다수의 시위대에 맞선 소수의 시위대였다. 분명 소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신문에는 양 쪽 목소리가 대등하게 실렸다. 이렇게 아무리 작은 움직임도 그 상징성은 클 수 있다. 시작은 어렵지만 그 후의 일들은 상황이 저절로 해결해 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20대가 그런 작은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20대
그는 지금의 10대들에게 큰 희망을 건다고 글에서 밝혔다. 성인인 20대보다 통제를 더 많이 받고 있는 그들이지만 적극성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고2학생인 그의 조카도 벌써부터 적극성을 띠고 있을 정도라고 전한다.

“얼마 전 학교 내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고등학생을 뉴스에서 접한 적 있다. 촛불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학생회장에 출마하지 못하게 한 학교의 방침에 맞서 싸우는 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적극성을 보인다면 20대가 돼서도 어떤 행동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10대가 20대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10대들의 분노를 억압하는 현 정권이 10대들을 단련시켰다고 한다. 10대와 20대가 성장해온 시대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 두 집단의 특성까지 달라졌다는 말이다.

“지난 두 정권의 10년간 국가권력은 갈수록 작아졌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분노를 억압하는 장치도 작았다.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막고 있는 벽이 약하니 마음껏 그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다. 시위대 한명이 사망하면 곧바로 대통령의 사과와 경찰총장의 사퇴가 있던 시대였다. 당시 10대였던 지금의 20대가 적극성을 갖추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마디로 20대는 분노를 표출할 만한 기회가 없었던 시대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깨자
취업난이라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고 시대적 어려움이 있다.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만든 것도 전적으로 20대의 책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불합리한 사회에 스스로 적응해나가는 20대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386세대가 현실에 순응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데 과연 20대는 그런 비판을 피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지금의 20대가 이타적 태도가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하기에는 기성세대의 잘못도 크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지난 기간 동안 자본에 순응하고 현실에 안주해온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라면 그런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온 프레임을 깨고 이타적 사고를 해야 한다”

행동에는 보상이 꼭 따른다
역사적으로 이타적 행동에는 언제나 개인의 희생이 있었다. 지금 행동에 나서는 20대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취업난이라는 현실에서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걱정을 안고 사는 게 현실이다. 어려움에 처한 20대에게 그가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지금 20대 중에는 이타적 행동 때문에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에는 중앙대 진중권 교수 재임용 탈락에 반발한 학생들에게 징계가 내려질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지금의 희생이, 이타적 행동이 결국은 보상받을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권을 침해받고 빨갱이로 몰리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결국 지금 그 경력을, 용기를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해주고 있다”

20대여 분노하라
지금 20대의 실력은 어느 세대 못지않게 훌륭하지만 그 능력만큼 강한 분노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20대라면 혹은 대학생이라면 때론 분노를 맘껏 표출해도 된다. 이런 주장에 혹자는 ‘분노의 표출은 너무 감정적이다’라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사회는 20대의 감정 표출을 용인할 준비가 돼있다. 사회와 역사는 그 분노 덕분에 진보해왔다”

20대에게 분노와 더불어 이타적 사고를 갖기 당부했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본인이 아닌 사회와 역사를 위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 20대의 훌륭한 능력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여기에 ‘공익’이라는 이타적 사고가 있으면 좋겠다.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그 분노를 표출시키는 일은 이타적 사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80년대에도 시위를 한다고 학점을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20대는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분노 했고  그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가 성립됐다. 지금 20대는 분노해야 한다”    

사진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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