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존재 가치
지식인의 존재 가치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5.31
  • 호수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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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보다 진리에서 가까운 것도 없지만,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학생과 시민 등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 선봉에는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념과 이론으로 민중의 행동을 촉구했고, 독재 권력을 몰아낸 자리 위에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 권력의 빈자리에 섰을 때 유혹이 없었을까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지식인들의 언행일치였고, 지조를 지키는 일이었으며, 존재 가치였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작가 황석영의 ‘변절’을 둘러싼 논란은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거론될 만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사회 참여적 지식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 논객이 어느 순간 MB 정부를 ‘중도실용주의’로 규정하며 ‘광주 사태’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언행을 돌아볼 때,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극명한 변화요, 반전임에 틀림없다.

황석영이 자신의 말처럼, MB가 잘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우려 했던 것이라면 굳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언행으로 MB를 옹호할 필요는 없었다. 황석영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 만큼 MB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사실도 그의 변절을 의심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황석영이 MB를 ‘부패연대세력’이라며 맹비난하던 지난 대선 때와 비교했을 때, MB에게 달라진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실망스러운 국정 운영에 지지율은 20~30%대를 달리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결국 달라진 것은 황석영의 말이요, 그의 이중적 태도인 것이다.

단지 그가 권력을 탐하는 듯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지식인만큼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도 드물 것이다. 문제는 지식인의 ‘변절’이다. 무릇 지식인이란, 날선 문제의식과 성역 없는 비판으로 대중을 일깨우는 데 그 본령이 있다. 그런 지식인의 펜촉이 권력에 물을 들이는 순간, 시나브로 무뎌지게 됨을 우리는 선험적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권력에 가까워져 가는 지식인의 모습은 늘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이다.

황석영은 자신의 장기가 월경이고 작가는 사회적 금기를 깨는 사람이라며 변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넘은 것은 지식인으로서 지켜야 할 권력과의 ‘안전거리’였고, 그가 깨뜨린 것은 지식인의 지조였을 뿐이다.
권력의 단맛에 취해 비판의 칼날이 녹슬어진 지식인은 더 이상 지식인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그저 지식만 많은 사람이라면 그에겐 ‘전문가’라는 다른 이름이 더 어울리는 까닭이다. 

노승욱<경상대ㆍ경영학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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