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낮술」
영화 「낮술」
  • 박성환 기자
  • 승인 2009.05.24
  • 호수 19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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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무리가 술자리를 갖고 있다. 그 중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혁진은 실연을 당해 마음이 심란한 상태다. 다음날 그는 친구들의 여행 약속 불이행과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식당으로 다가간다. 강원도 정선에서 이른 시각에 그가 벌이는 낮 술판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름다운 강원도를 등지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또 길 가는 도중 안면 있던 커플 사기단의 꾐에 넘어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다. 세상을 너무 모르는 그의 순진한 성품은 현세에 물든 우리가 보기에 안타까워지는 행동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일어난 일은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물질에 눈이 어두운 우리 내면의 정곡을 찌른다.

음주는 그의 시름과 근심을 달랠 수 있는 수단이다. 영화에서는 낮이라는 이른 시간적 배경을 덧붙여서 영화에서 남자가 갖고 있던 낮술의 의미와 시련들을 표출시킨다. 강원도라는 구석진 지역에서 낮술을 즐기는 혁진을 보고 있노라면 바쁜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가둬진 일상을 탈출 하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벌거벗고 있던 혁진에게 히치하이킹을 허락한 트럭운전사는 그에게 연민의 정 이상으로 애정을 보인다. 혁진은 그런 행동들을 증오한다. 영화는 금기시 된 동성애적 코드를 영화에 은근히 삽입하면서 영화 「왕의 남자」같은 과감한 스토리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혁진이 트럭운전사의 행동을 완강히 거부한 것은 우리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호모 기피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강원도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이상한 여자들과 만난다. 혁진이 겨울바다에 갈 때 만난 란희는 버스에 같이 있는 내내 그를 귀찮게 하고 욕을 하는 등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이후 그는 그녀가 꿈에 나오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란희를 무서워한다. 란희의 존재는  상호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역시 이상한 여자가 출현한다. 또한 이상한 여자들이 혁진에게 계속 출몰하는 현상은 반복적 일상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는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석권한 작품이다. 한 평론가는 “기이한 여행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이 별난 경험 역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추억이라기보다 낮술의 객기처럼 속내를 다 드러내는 유치함과 창피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만한 일들을 그려낸 영화 「낮술」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사람에게 치인 상처를 술로 달래는 것을 반복하는 혁진의 모습과 더불어 이성을 향한 욕망을 술과 연관시키려는 그의 이중적인 행동은 꽤 해학적이다. 이번주는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마음을 뜨겁게 하고, 현대인의 애환을 담아 더욱 공감가는 「낮술」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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