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문 기자들에게 말한다
대학 신문 기자들에게 말한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05.17
  • 호수 12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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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시사IN> 기자의 기고
기자는 판단을 하는 직업이다. 어떤 것을 기사화 할지, 어떤 부분을 취재할지, 어떻게 기사화 할 지, 끊임없이 판단해야 한다.

기자 개인의 판단뿐만 아니라 뉴스 선택 과정을 겪으며 남의 판단까지 곁들여진다. 결국 뉴스는 복합적인 판단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좋은 기사란 옳은 판단의 결과물이다.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 기자는 때로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거칠게 말해서, 불편한 판단을 감당하는 기자는 좋은 기자고 편한 판단에 안주하는 기자는 나쁜 기자다. 기자가 편해지려고 할수록 독자가 불편해지고 기자가 불편을 감수할수록 독자가 편해지기 마련이다.

좋지만 불편한 판단과 나쁘지만 편한 판단은 어떻게 나뉠까? 그것은 누구를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
독자를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 취재원을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 경영진과 데스크를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에 따라 질이 갈린다. 전자일수록 좋은 판단이고 후자일수록 나쁜 판단이다.

나쁜 판단보다 더 나쁜 것은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다. 판단을 피하는 것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고, 갈등을 피하는 것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논쟁을 피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기자는 판단할 때 판단해야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끝없이 되물어야 한다. 기자가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상식의 나침반이다.

상식은 과거의 경험이 빚어낸 총체적 결과물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약속이며 미래의 전제조건이다. 기자는 상식의 나침반에 합당한 판단을 해야 한다. 언론은 상식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판단의 관점에서 ‘대학 언론의 위기’를 짚어보자면, 대학 언론인들이 불편한 판단을 회피하면서 이 위기가 심화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학교 당국의 간섭과 총학생회의 압력 등에 대해 그때그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문제를 키웠고 간섭과 압력이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블로그 「고재열의 독설닷컴」을 통해 대학언론의 위기 상황을 짚어 본 적이 있다. 참담한 지경이었다. 발행인인 총장이 이미 발행된 학보를 수거하고 재발행하게 한 사례, 문제가 된 기사를 빼고 백지상태로 내보낸 사례, 총학생회까지 학보에 나온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훔쳐가서 폐기하는 사례까지 접할 수 있었다.

가장 황당한 사례는 학보사 기자가 수습기자로 들어올 때 ‘학내 비판보도는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들어오는 경우였다. 학보사에 들어올 때부터 언론인이기를 포기하는 선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사례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해가 갈수록 대학 언론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발행인의 통제가 당연시되고 주간교수의 간섭이 일상화 되는 가운데 학보사 기자들은 ‘자기 검열’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이런 아이템은 분란만 일으켜’ ‘이런 아이템은 어차피 기사화 되지 못해’라고 편한 판단에 안주하고, 독자인 학우보다 데스크 역할을 하는 학교 당국의 눈치를 살피는 나쁜 판단에 길들여지곤 했다.
물론 대학언론인들에게도 핑계는 있다. 대학 당국은 교묘한 방식으로 간섭을 정당화하고 있고 누대에 걸쳐 선배들이 방치한 문제라 이제 관행화 돼서 고치기 힘들다. 학내 언론독립 문제를 학우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동력도 없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는 ‘지금, 우리’라는 것이다.   

학내 언론독립 문제를 들여다보라는 것이 결단을 내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판단을 유보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문제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대학 사회의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 불편한 판단을 감내해야 한다.

이쯤에서 ‘눈을 들어 선배들을 보라’라고 말하고 싶다.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다 6명이 해직된 YTN 기자들을 보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MBC <PD수첩> PD들을 보라. 이들 외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직업 언론인으로서 더 많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런 역할을 피해야 할 수많은 핑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독자를 위한 불편한 판단을 유보하지 않았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다.

대학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인의 기본자세를 물어야 한다. 기자는 판단을 하는 직업이다. 독자인 학우들을 위한 불편한 판단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불편한 판단이 모여 대학언론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대학 사회의 상식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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