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타 고시 맞먹는 연예고시 시대
여타 고시 맞먹는 연예고시 시대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04.13
  • 호수 1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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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비리에도 연예 입시생 ‘북적’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그나마 쉬는 시간은 잠시 인터넷 서핑 또는 TV를 보며 처지를 잊을 때다. 이때 연예뉴스나 브라운관을 통해 본 스타들은 항상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쟤는 연기도 못하는데 돈도 잘 버는 것 같네, 나도 연기나 한 번 해볼까”
불과 한 달 전 연예계의 비리를 폭로한 ‘장자연 리스트’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지망생의 하루는 여전히 치열하다. 미래 연예인을 양성하는 연기학원과 각종 연습실은 오늘도 입시생으로 북적인다.

박 터지는 연예 등용문
연예기획사 연습생이 되기 위한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공채4기 연습생 오디션은 약 7천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1월 한 달간 전국 예선을 거쳐 지원자 2만여 명 중 33명이 선발됐고, 이들 결선 진출자는 10개 팀으로 나뉘어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2주간 훈련을 받았다. 최종 선발된 연습생은 고작 3명이었다.

대형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최근에는 ‘연예고시생’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연예고시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별을 꿈꾸는 아이들’의 회원만 해도 8만 2천여 명으로 자체 오디션을 열 정도다. 또 방송연예 관련 학과는 전국 136개 대학에 개설돼있고, 입학 경쟁률도 성황이지만 한 해 졸업생만 해도 1만 400여 명에 이른다.

JYP 오디션 가수부문에 참가했던 지방 대학생 A는 오디션 며칠 전부터 주변 친척집에 상경해 연습을 해왔다. 어머니는 참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해주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꿈을 위한 훈련과 동시에 신학기 준비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A는 “비록 지난 오디션에선 탈락했지만 다음 기회를 꾸준히 노리고 있다”며 “가수 준비를 하는 대신 성적을 떨어뜨리지 않기로 부모님과 약속해서 오전에는 열심히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엔 거의 연습실에서 산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시험기간이 닥쳤어도 A에게 쉴 틈은 없다. 지하철에서도 틈틈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전공 공부를 한다. 오후 6시 연습이 끝나면 안산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오후 11시까지 홀로 연습을 계속한다.

꿈을 좇는 마라톤
최근 연예인은 ‘4D’직업으로 일컬어진다. ‘Difficulty, Dangerous, Dirty’에 ‘Dream’이 추가된 형태다. 연예인이 되기는 어렵고 활동하기는 위험하며, 때로는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 공연해야 한다. 한편 무대를 통해 관객들이 꿈꾸는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의 꿈도 실현할 수 있다. 배우의 경우 이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배우 자신은 역할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A는 “처음엔 호기심 반 욕심 반으로 가수를 꿈꿨지만 노래를 배울수록 내 길이라고 확신하게 됐다”며 “학업과 연습 병행이 고되지만 데뷔할 날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생들이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방법은 곧 촬영을 시작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주ㆍ조연 배우를 선발하는 오디션에서부터 3초 안에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다는 길거리 캐스팅, 미인대회를 비롯한 각종 선발대회, 기획사의 자체 오디션까지 각양각색이다. CF와 패션계 모델도 연예계 입문의 발판이 되는 추세다.
임지현<예술학부ㆍ연극영화학과 07> 군은 “우리 과에서 연기를 공부하는 친구들의 90% 정도가 배우를 지망한다”며 “주로 연극 또는 영화배우를 희망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통해 데뷔하거나 케이블ㆍ공중파TV 공채 오디션을 거쳐 브라운관에 입문하곤 한다”며 “나도 다음 주에 고등학생 역할의 오디션을 보러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막연한 꿈만으로 불가능한 그 곳
실제로 연예인 지망생 중에는 단순히 연예인을 동경하는 차원의 학생들이 절반 이상이다. 그러나 연기공부를 며칠 하다보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모든 여유시간을 투자해야함은 물론 학원 선생님은 지각하려면 나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

스타란 철저한 상품이다. 그들이 데뷔 전에 했던 피나는 노력과 연습은 스타마케팅으로 가려질 뿐이다. 스타의 초라하고 우울한 모습은 관객이 원치 않으므로 숨겨지기도 한다. 배우는 객관화된 점수도 등수도 없다. 지망생들은 끊임없이 오디션을 봐야 하고 떨어져도 왜 떨어졌는지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다. 1년이 지나면 앞이 깜깜한 이 길을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방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우가 되려고 이 길에 들어섰건만 단역으로 서는 일조차 2년 내지 3년이 걸린다. 연예계의 진입장벽은 높다. 실력과 외모를 비롯해 운도 좋아야 한다. 때로는 불공정한 순간도 감수해야 한다.

이정수<MBC아카데미연극음악원ㆍ성인탤런트과> 강사는 “연습생 중 대학생 비율이 50%를 웃돈다”며 “아이돌 스타들이 급부상하면서 막연한 핑크빛 꿈으로 연예인이 되려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동시에 “연예인은 단순히 재밌고 멋있어 보여서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벼락스타는 전체 지망생의 1%도 안 되니 그들을 동경하기보다 무대 뒤의 피나는 노력과 기다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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