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 이다영 기자
  • 승인 2009.03.22
  • 호수 12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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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선생님”

스승의 날 편지 앞머리에 등장하는 단골 문구다. 우리는 순수하게 교수님과의 친목을 원하기도 하지만, 때로 어떤 일에 조언을 구할 때 또는 좋은 점수가 필요할 때 교수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교수님께 잘 보이면 A+는 따 놓은 당상”이란 말이 판치는 우리 세대에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뭘 외치고 있을까.

연극은 엘레나 세르게예브나 선생이 집에서 편지를 쓰고 명상하는 장면으로 막이 오른다. 그리고 네 명의 학생이 선생의 집에 방문한다. 졸업반인 이들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A학점. 엘레나 선생의 생일파티를 가장해 값비싼 선물을 전하고 성적을 올리려는 심산이다.

한없이 평온하던 거실은 학생들의 부탁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망친 졸업시험지를 조작할 수 있게 금고 열쇠를 달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차츰 열쇠를 노리는 짐승으로 변해간다.

극중 엘레나 선생은 도덕적이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선생이 사수하는 열쇠는 자신의 굳은 신념과 가치관을 대변한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옳고 숭고한 것이며 아무도 범할 수 없는 절대선이다. 그녀는 열쇠를 지키는 것으로 양심을 지키려 한다.

반면 학생들에게 열쇠는 욕망과 힘의 근원지이자 성공으로 가는 수단이다. 연극은 관객의 상식적인 경계선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학생들은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린다.

출구를 막고 전화선을 뽑는 건 물론, 술을 마시며 집안을 뒤지고 인질극을 벌인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학생들이 우습게 여기고 덤벼든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끝까지 선을 추구하고 학생들이 이길 수 없는 존재로서 중의적 의미를 띤다.

학생들이 꿈꾸는 달콤한 인생은 현대인의 거울 파편으로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러시아 극작가의 1980년 발표작이지만 대사의 힘은 30년 뒤 한국에도 통했다. 참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주는 학창시절 은사님과 함께 엘레나 선생님을 만나보자.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이달 29일까지 상영된다. 관람료는 전석 2만 5천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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